202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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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영성의 샘을 찾아서 - 유럽 수도원 순례] (5) 성모 공경의 구심점으로 세워진 에탈·아인지델른 수도원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는 성모자상 앞에/ 무릎 꿇은 순례객들 기도 이어지는데 …/ 에탈 수도원은 성모신심 순례지로 각광/ ‘검은 성모상’ 안치된 아인지델른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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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은 하느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흔히 ‘사랑의 학교’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교회 역사 안에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한 이가 바로 성모 마리아이다.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마리아를 공경해왔다.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과 순명의 자세, 구원 역사 안에서 묵묵히 진리를 실천해온 신앙의 모범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 돌아볼 독일 에탈과 스위스 아인지델른 수도원은 유럽 베네딕토회 수도원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성모신심 순례지로 꼽힌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을 통해 하느님께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순례객들의 발걸음은 수도원 설립 후 10000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해발 900m 높이의 계곡 마을을 향해 굽이굽이 산길을 돌다보면 어느 틈엔가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에탈 수도원(Stift Ettal)이 눈앞에 성큼 다가선다. 가로 세로 각각 100m 길이로 둘러싼 대형 건축물이다. 특히 수도원은 규모와 아름다움 뿐 아니라 그 역사적 의미에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어두움이 내려앉아 성당 문이 잠길 때까지,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는 듯한 성모자상 앞에 무릎을 꿇은 순례객들의 기도는 끝날 줄 모른다. 이 성모자상이 바로 ‘에탈의 마돈나’이다.

에탈 수도원은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방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알프스 산자락 암머 계곡에 위치한다. 암머 계곡은 중세시대 독일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이탈리아 베로나를 오가는 상업적인 길목이었다. 독일이 이탈리아로 영토를 넓히기 위해 활용해야 할 주요 거점이기도 했다. 바이에른의 황제 루드비히 4세는 성모 마리아에게 전구를 청하던 중 이곳에 수도원을 짓겠다고 약속, 1930년 이곳에 수도원을 세워 봉헌하고 에탈이라고 이름지었다. 에탈은 ‘약속의 계곡’이란 뜻이다. 그리고 이탈리아 피사에서 가져온 이른바 ‘에탈의 마돈나’를 기증했다.

수도원은 처음엔 순수하게 수도생활을 위해서만 봉헌되진 않았다. 루드비히 4세는 이곳을 베네딕토회 수도자들 뿐 아니라 기사수도회 회원들과 그 부인들까지 함께 거주하고, 전략적 요충지로도 활용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꾸몄다. 하지만 1347년 루드비히 4세 선종하자 기사 수도회는 이곳을 떠났고, 이후 수도원은 베네딕토회 영성의 샘터로 깊이 뿌리내렸다. 15세기부터는 성모신심 순례지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최근엔 해마다 200여만 명의 순례객들이 찾고 있다.

수도원 대성당은 1330년부터 40년간 지어 봉헌됐지만 1744년 화재로 전소됐다. 고딕과 바로크 혼합 양식으로 지어진 현재 성당은 1762년 완공됐다. 이 성당에 들어선 순간, 순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또 하나의 걸작은 1769년에 제작된 천장 프레스코화다. 이 프레스코화에는 성 베네딕토의 가르침을 따라 산 성인들과 남여 수도자 400여 명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 대성당 왼쪽 구석에 있는 작은 문을 밀면,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현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소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대 뒷면은 대형 유리벽과 스테인드글라스로 빛을 발하고, 제대는 세계 각국 언어로 ‘빛’이라고 쓴 유리 조형물이 떠받치고 있다. 평일미사와 기도는 이곳에서 봉헌된다.

타 수도원에 비해 젊은 수도자들이 많은 에탈 수도원에서는 현재 학교는 물론 농장과 양조장, 인쇄소, 게스트하우스 등을 활발히 운영 중이다.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발발한 이후 스위스에서는 제네바를 중심으로 칼뱅이, 취리히를 중심으로 츠빙글리가 새로운 종교개혁을 이어갔다. 이후 개신교가 강세를 보인 때도 있었지만, 현재 스위스 전체 인구의 40 이상은 가톨릭신자로서 복음화의 뿌리를 지켜오고 있다.

아인지델른 수도원(Stift Einsiedeln)은 지금도 스위스의 대표 성모신심 순례지로 유명하지만, 10세기에는 스페인 콤포스텔라와 심지어 이탈리아 로마와도 우열을 다툴 정도로 이름난 곳이었다. ‘검은 성모상’은 그 명성의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검은 성모상’은 9세기 중반, 호엔촐레른 백작 집안 출신의 마인라트 성인(St.Meinrad, ?~861)이 에첼산 속에서 은수생활을 할 때 취리히의 힐데가르트 수녀의 요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마인라트 성인이 선종하고 80여 년 후 그의 은거지에 성당과 수도원이 세워지면서 ‘검은 성모상’에는 순례객들의 줄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목각 성모상이 검은 색을 띠는 이유도, 순례객들이 쉼 없이 촛불을 켜서 생긴 그을음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대성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은총의 성모’ 경당 앞에 서게 된다. ‘검은 성모상’이 안치된 곳이다. 수도자들은 이 ‘검은 성모상’에 매달 다른 나라의 전통의상을 입힌다. 가톨릭신문 순례단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엔 마침, 한국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 수녀들이 만든 붉은 자수 옷을 입고 있어 반가움이 더했다.

아인지델른 수도원 대성당은 18세기에 지어진 스위스 바로크 건축물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금빛과 연분홍빛 등으로 화려하게 꾸민 대성당 내부 색감도 압도적이다. 성당 곳곳에 그려지고 조각된 천사상만 해도 1000여 개가 넘는다. 또 수도원 도서관은 그레고리오 성가 필사악보와 라틴어 고서를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쓰여진 양서 23만권을 소장하고 있다.

이 수도원은 50여 년 전만 해도 회원 수가 200여 명을 넘어서는 대규모 수도공동체였다. 하지만 성소자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현재는 70여 명의 수도자들만이 남아 수도원과 사립대학, 신학대학, 직업학교 등을 운영 중이다. 그래도 수도자들의 찬송만큼은 1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웅장하게 수도원을 채우고 있다. 특히 살베 레지나(Salve Regina, 성모찬송) 시간이 다가오면 수많은 순례객들과 인근 지역 주민들이 성당으로 모여든다.

매일 오후 4시30분 성모찬송이 시작된다. 제대 주변에 둘러서서 기도하던 수도자들의 행렬은 살베 레지나 막바지에 이르자 성모경당으로 이어진다. 그 행렬이 지나가는 성당 지하에는 수도자들의 시신을 안장하는 카타콤바가 자리한다. 수도자들은 매일 이 카타콤바 위를 걸으며 죽음의 의미를 되새긴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부활, 영원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삶과 죽음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매일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 삶의 의미를 더욱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답답한 규율에 매인 것처럼 보이는 수도자들의 삶이 그 누구의 삶보다 자유로운 것은, 영원한 삶을 향해 올곧게 나아가기 때문임을 되새기는 시간이다.



 
▲ 살베 레지나 행렬은 수도자들의 합송하는 그레고리오 성가소리와 함께 대성당 제대에서 입구쪽에 자리한 성모경당까지 이어진다.


가톨릭신문  201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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