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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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남수단에서 온 편지] (37) 더딘 문명 속에서 얻은 깨달음

시계보단 해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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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뭅니다. 저 해가 떨어지면 어둠이 찾아오겠지요.

70년대 후반에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저는 전기가 없던 시대를 알지 못합니다. 아주 가끔 정전이 되어 촛불을 켜본 적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해가 낮에 빛을 밝혀주는 것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어두워지면, 또는 어둡다 싶으면 전깃불을 켜면 그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오늘 지는 해를 바라보며 문득 낮 동안 빛을 비춰주는 해가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 남수단에 살면서 이곳 사람들이 해에 의지해서 사는 모습을 발견하게 돼 그런가봅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진료소 일을 도우면서 재미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감기에 걸린 아이에게 약을 주고 ‘하루 세 번’ 먹으라고 설명을 해줍니다. 그런데 말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손을 이용합니다. 손가락을 쫙 펴고 손끝으로 동쪽을 가리키며 ‘니악 두르(아침)’라고 말하고, 다음 머리 위를 가리키며 ‘아칼(점심)’이라고 말하고, 서쪽을 가리키며 ‘테엔(저녁)’이라고 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에 약을 먹으라는 얘기지요. 그런데 매번 꼭 손으로 가리켜가며 설명을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제가 말로만 설명을 해주면 옆에 있던 다른 현지인이 손을 이용해 다시 설명을 합니다. 해가 떠있는 위치를 가리키며 설명하는 거지요.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며 ‘이 사람들이 교육을 받지 못해서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부정확해서 꼭 손으로 표현해야 하나보다’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아랍어, 영어까지 유창한 젊은이들이 서로 대화를 할 때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이들에게 해의 위치를 통해 시간을 확인하고 약속을 하는 일이 일상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됐습니다.

공소 방문을 하면서 교리교사들에게 하소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시간 때문입니다. 몇 시까지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방문을 하면 신자들과 함께 모여서 기다려주면 좋을텐데 제시간에 맞춰 가면 신자들은커녕 교리교사도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리면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 화도 나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시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맞춰진 시간은 제각각이고 중요한 것은 이들이 아직 시계보다 해에 의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몇 시에 가겠다고 교리교사에게 얘기하면 교리교사는 사람들에게 그 시간에 맞는 해의 위치를 가리키며 신부님이 오니까 해가 어디쯤 있을 때 모이라고 공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시간에 오는 사람은 없고, 인터넷과 TV를 통해 정확한 시간을 알고 찾아가는 저만 바보가 되는 거지요.

문명이 더딘 이곳이기에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일이지요. 하지만 이들은 이렇게 살아왔고, 또 이렇게 산다고 문제되지 않습니다. 이들의 삶이니까요. 가끔 해를 보시나요? 햇살이 따갑다고 불평을 하시나요? 저야말로 요즘 뜨겁고 따가운 햇살에 불만이 많습니다만, 오늘은 그런 해에게 고마움을 느껴봅니다.



 
▲ 남수단 사람들은 해가 떠있는 위치를 통해 시간을 확인하고 약속을 한다.
 
 
※ 남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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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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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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