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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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남수단에서 온 편지] (47) 배구와 축구

- 7월 한달간 아강그리알에서 실습한 이승진(대건 안드레아) 신학생 글 (2) / 운동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법·보디랭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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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남수단에서 온 편지’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내용 중 하나는 이곳 아이들의 배구하는 모습이었다. 키가 커서 배구를 잘 하고, 네트를 사이에 둬 몸싸움이 벌어지지 않아서 여기 아이들이 하기 좋은 운동이라고 글을 통해 소개됐는데, 직접 와보니 그 말이 쉽게 이해됐다.

오후 6시경이 되면 어김없이 아이들은 학교와 사제관 사이에 있는 넓은 공터로 모여든다. 한쪽에서는 배구를, 한쪽에서는 축구를 하는 모습을 매일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볼 수 있었다. 운동을 무척 좋아하고, 신학교에서 체육부장을 맡고 있는 나의 스포츠 혼이 여기에서도 불타올랐다. 기회를 보던 어느 날, 드디어 아이들이 내게 배구를 하겠느냐고 묻는다. 당연히 좋다고 말하고 신부님께 말씀드린 다음 배구를 하러 나갔다.

나의 역할은 수비, 곧 리시버. 공격을 받아내고, 공격할 수 있는 위치까지 공을 토스해주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들도 내 작은 키에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 같아 보였지만, 나름 안정적이고 민첩한 몸놀림에 그럭저럭 공을 받아내고, 나가는 공을 살려내기까지 하니 그 시선이 달라졌다. 같이 배구를 하던 용희형은 상대편에 있었는데, 나 때문에 구박을 받았다. ‘왜 쟤는 잘하는데 너는 그만큼 못하느냐’고 아이들이 핀잔을 주는 듯했다.

그렇게 한참을 배구를 하며 여기 사람들의 탄력과 높은 키가 정말 배구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을 했다. 집중력과 민첩성은 약간 떨어지는 듯하지만, 훈련을 하면 정말 배구선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종종 배구를 하다가 문득 배구 코트 옆에서 펼쳐지는 축구도 하고 싶어, 하루는 배구를 안 하고 축구를 하러 갔다. 아이들이 내게 축구를 잘하냐고 묻기에 잘 못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패널티라인에서 슛을 한 번 해보라고 한다.

가볍게 찬 공이 골대를 벗어나자 낄낄대며 웃는다. 나도 멋쩍게 웃고 나서 들어가는데, 다시 한 번 차보라고 한다. 장난기가 발동해 “오케이. 리얼 슈팅”이라고 한마디하고, 정확히 발등으로 때려 맞췄다. 공은 직선으로 힘차게 날아갔고, 골대 뒤편에 있는 나무를 맞추고 튕겨 나왔다. 그러자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놀라움의 탄성들! 그렇게 나는 슈팅 하나로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인정받았다. 정작 축구 게임에서는 한골도 넣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놀고 운동하며 점차 많은 아이들이 내게 다가왔고, 나도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음악과 운동을 통해 조금은 가까워진 아이들은 이제 매일 내게 묻는다. 오늘은 운동할 수 있는지. 축구를 할 것인지, 배구를 할 것인지. 그럴 때 하게 되는 대답은 “쏘리. 아임 투 비지. 넥스트 타임. 오케이?”

그들은 웃으며 ‘오케이’라고 대답하곤 운동장으로 달려간다. 운동하는 그들의 모습에 근심이 없어 보인다. 내가 그런 것처럼 그들도 운동을 통해 다른 근심을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운동은 내가 아는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자 최고의 보디랭귀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 남수단 아이들이 학교와 사제관 사이에 있는 넓은 공터에서 배구경기를 하고 있다.
 

※ 남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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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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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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