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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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고 힘나는 신앙-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해설 (70) 8가지 참 행복 - 카리스마의 비밀

‘온유’, 자기는 빠지고 남을 내세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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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유? 나 그거 안 할래

나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여덟가지 행복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온유’의 행복을 꼽는다. 온유? 왜 하필 온유? 아마 얼른 동의가 안 되는 이들이 꽤나 있을 것이다. 모르긴 모르되 ‘온유’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그러지 않을까 여겨진다. ‘온유’하면 왠지 착해빠지거나 유약하거나 소신이 없거나 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러니 요즈음과 같이 강함, 추진력, 결단력 등이 최고의 덕목으로 꼽히는 시대에 과연 ‘온유한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렇게 저어되는 것이다.

하지만 깊이 알고 보면, 온유는 우리의 짐작을 뛰어넘는 탁월한 덕이다. 그러기에 나는 이 온유를 풀어 설명해 주고 싶은 요량에서 신자들에게 곧잘 이런 질문을 던진다.

“식당에 가서 ‘뭐 먹을까요?’ 하고 물을 때, 온유한 사람은 어떻게 답할까요?”

그러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답한다.

“아무거나.”

거기서부터 풀이는 시작된다.

“아무거나?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우유부단’한 사람입니다.”

“???”

“‘온유한’ 사람은 말이죠, ‘당신 원하시는 대로’라고 답합니다. 온유는 우유부단한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주는 자발적인 양보를 뜻합니다.”

그렇다. 온유는 적극적인 개념이다. 상대방이 결정할 수 있도록 스스로 용단을 내려서 양보하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서 ‘상대방’이 하느님일 경우, 이 온유는 하느님의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는 최상의 지혜가 된다. 어떻게 그런지 함께 보기로 하자.

■ 온유의 인물 모세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세 번째 행복은 ‘온유’의 행복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 5,5).

여기서 ‘온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프라우테스’(prautes), 히브리어는 ‘아나브’(anab)다. 이 단어들은 명백하게 ‘겸손’ 또는 ‘온유’를 가리킨다. 여기서 온유와 겸손이 같은 심상에서 나온 이웃사촌임을 알 수 있다.

온유를 설명하는 결정적인 열쇠 단어는 의지다. 자유의지. 온유는 자신의 뜻 곧 자유의지를 접고 상대방의 뜻을 존중하여 사양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이 온유가 하느님께 대하여 발휘될 때, 온유는 하느님의 뜻, 계획, 섭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하느님께 대해 취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태도다.

온유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아나브’(anab)는 성경에서 모세의 성품을 설명할 때 쓰인다.

“모세라는 사람은…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anab)하였다”(민수 12,3).

독자들 가운데 이 말씀에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모세는 강한 사람이 아니었나? 눈빛이 형형하고 선이 굵고 각이 있던 분 아니었나? 그런 모세가 온유(=겸손)했다? 상상하기 어렵다.”

성경은 왜 모세를 ‘겸손’한 사람 곧 ‘온유’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을까? 모세가 자신의 뜻을 주장하지 않고 항상 중간자의 일을 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에게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지 않고 하느님 말씀만 전했다. 하느님 앞에선 절대로 자기주장을 펴지 않고 백성들 입장을 대변했다. 모세는 심부름꾼 역할만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온유의 특성이다. 자기는 빠지고 남을 내세우는 것!

모세가 행했던 기적은 결국 자신의 능력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온유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온유에 비례해서 하느님의 기적이 드러난다!

온유는 바로 순명을 뜻한다. 순명은 하느님의 지혜가 자신의 지혜보다 높다는 것을 알기에 기꺼이 그분 명령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은 이 온유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탈출기에 나오는 위대한 기적들은 하나같이 모세의 온유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모세가 하느님의 명령을 ‘온유’로 받아들여 분부하신 대로만 행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온유는 부드러움을 통해서 강함을 드러낸다. 가장 온유한 사람이 가장 힘 있는 사람이다. 온유한 사람이 가장 위대한 일을 한다.

이는 현대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인이 갈구하는 카리스마와 리더십의 비밀이 바로 온유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한 똑똑 하는’ 사람과 ‘한 성격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이들은 잘해 봤자 자신의 역량만을 발휘할 뿐이다. 하지만 온유한 사람은 자신을 통해서 무한지혜와 무한능력이 흐르기 때문에 무한대로 간다. 이를 깨달아야 한다.

■ 온유 트레이닝

모세의 성격이 본래 온유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집트 왕궁에 있을 때 그의 성품은 오히려 ‘의로운’ 사람으로 나타난다. 이집트인이 동족을 때리는 장면을 목격한 그는 의분을 참지 못하고 즉각 행동으로 들어간다(탈출 2,11-12 참조).

이처럼 모세는 불뚝 성질을 갖고 있었다. 그로 인한 살인이 탄로 나자 모세는 미디안으로 도망을 갔고 그곳에서 사제 이트로의 사위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양을 치며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지냈다.

모세가 ‘온유’를 익힌 것은 이 광야 40년의 양치기 생활을 통해서였다. 광야에서는 철저히 자연의 이치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에 순응하지 않으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러기에 모세는 광야생활을 통해 순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불뚝 성질이 팍 죽었다.

이윽고 모세가 충분히 온유해졌을 때 하느님께서 부르셨다. 그리하여 그를 통하여 전대미문의 대역사를 작성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쓰시기 위해서 한 번 정도는 몽둥이질을 하신다. 북어포를 만들 때처럼 두들겨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온유한 사람이 되게 해서 쓰시는 것이다.

■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온유’한 사람이 행복한 이유로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라고 했다.

‘땅’은 불모의 사막지대에서 축복의 본좌다. 이 땅에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축복이 내포되어 있다. ‘땅’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온갖 축복의 총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탈출 3,8)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이다. ‘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나 한국 사람들에게나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말이기에 더 이상의 사족이 필요 없을 성싶다.

땅은 ‘영역’을 뜻한다. 결국 영향반경, 일본말로 ‘나와바리’를 가리킨다. 바로 리더십을 뜻한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땅을 차지할 것이다’라는 선언은 ‘땅에서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마음’을 얻게 된다는 뜻도 함축한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그들에 의해 높임을 받게 마련이다. 요컨대, 땅을 얻는다는 것은 ‘천하와 그 지지를 얻는다’는 말이 된다.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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