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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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고 힘나는 신앙-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해설 (91)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8) - 현실주의자 에사우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면 무엇이건 대수롭게 여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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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뱃속에서부터 불화

자고로 화목하던 형제 사이도 재산문제가 생기면 여지없이 갈라서는 게 인지상정이다. 재벌가들의 형제간 법적분쟁에 관련된 뉴스(news)는 결코 ‘새롭지 않은’ 소식(not new)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재물보다는 약한 모양이다.

성경 속 유명한 쌍둥이 형제 에사우와 야곱! 그들은 엄마 레베카의 뱃속에서부터 서로 발길질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창세 25,22 참조). 태어나기 전부터 뭔가 조짐이 심상치 않다. 그래서 레베카가 하느님께 그 까닭을 묻자, 다음과 같은 응답이 내려진다.

“두 겨레가 네 몸에서 나와 갈라지리라. 한 겨레가 다른 겨레보다 강하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창세 25,23).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레베카는 이 이야기를 남편 이사악에게 전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만일 그랬다면, 나중에 언급되는 것처럼, 이사악이 장남 에사우를 편애했을 리 없다.

■ 파파보이와 마마보이

쌍둥이가 태어나자, 아버지 이사악은 큰 아들 에사우를 더 좋아했다. 반면 어머니 레베카는 야곱을 더 좋아했다.

형 에사우는 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구석이 있었다. 성격이 남성적인데다, 털이 복슬복슬하고 선이 굵은 터프가이 형이었다. 짐작컨대, 이사악은 에사우를 볼 때마다, 선친 아브라함으로부터 들었던 ‘약속 이야기’가 떠올랐을 터다. 필경 참을 수 없는 신바람에 그것을 장남에게 귀에 박히도록 들려주었을 게다.

“에사우! 네 할아버지가 어떤 분인 줄 아느냐? 하느님께서 할아버지에게 민족들의 아버지가 된다고 하셨어! 땅과 후손을 약속해 주셨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겠다고 하셨단다. 그 약속 덕에 네 아버지인 내가 할아버지 나이 100살, 할머니 나이 90살에, 기적적으로 태어난 것이지.”

“그게 정말이에요?”

“그렇고말고. 네 할아버지가 받은 약속 덕에 네가 보듯이 아버지가 손대는 일마다 번창하고 있단다. 네가 장남이니까 그 축복의 약속을 상속받게 될 거야. 장자권은 네 몫이니까.”

알다시피 이사악은 엄청난 기적을 체험하고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에 의해 제물로도 묶였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이었다. 이런 드라마틱한 신앙체험을 했던 이사악이었으니 어찌 말하지 않고 배겼으랴.

반면, 어머니 레베카의 마음은 에사우보다 야곱에게로 기울었다. 임신 중 들었던 계시가 아무래도 잊혀지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녀 역시 저 약속 이야기를 몰랐을 리 없다. ‘장자권’이 형 에사우의 것이라는 사실 역시 뒤집을 수 없는 운명임을 그녀는 잘 알았을 터. 하지만 그녀에게는 하느님의 천기누설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 그래서 야곱에게 슬그머니 암시를 주곤 했을 것이다.

“야곱! 태어난 순서로는 에사우가 형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너를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 약속의 상속자로 내정하셨어. 네가 장자권자가 되는 거야. 잊지 말거라. 알았지?”

이랬으니 야곱이 슬슬 ‘장자권’에 욕심을 키웠을 법도 하다. 게다가 아버지가 형 에사우에게 들려주는 할아버지로부터 대물림된 별난 신앙체험을 그 역시 곁귀로라도 얻어듣지 않았겠는가.

■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어도 두 아들의 반응은 딴판이었다. 야곱은 농사꾼의 관점에서 귀담아 들었지만, 에사우는 사냥꾼의 견지에서 대충 흘려들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성격은 자신의 직업에 적응하면서 굳어지기 까닭이었다.

농사꾼의 시간은 ‘자연의 때’에 맞춰져 있다. 그의 인내지평은 ‘하늘이 정한 기간’이다. 농사일은 농사꾼 의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계절의 변화와 하루의 기상에 순응하며 하는 것이다. 결실 역시 하늘이 정한 기간이 차야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농사꾼의 사고방식은 순리적일 것이 당연하다.

반면, 사냥꾼의 시간은 철저하게 ‘지금’이다. 사냥꾼의 인내 지평은 ‘오늘’이다. 일단 사냥감을 찾아 나섰으면 날이 어둡기 전 ‘오늘 내’로 잡아야 하는 것이며, 움직이는 먹잇감이 눈앞에 나타났으면 ‘지금’ 포획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사고방식은 의당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이 다름은 그대로 아브라함으로부터 아버지 이사악에게 대물림된 약속말씀에 대한 태도의 차이로 나타났다. 야곱은 인생의 흥망성쇠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에 달려 있음을 믿었다. 반면, 에사우는 그것이 그날그날의 운에 달려있다고 믿었던 듯하다. 그러기에 야곱은 ‘장자권’과 ‘하느님의 축복’에 관심이 많았지만, 에사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실주의자 에사우는 먼 미래를 꿈꾸며 살기보다 당장의 것을 추구하였다. 에사우에게는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의 상속자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인 순수 혈통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족이 아닌 이방 여인의 미모에 빠져 그녀를 아내로 맞았다.

그런 에사우였기에 동생 야곱이 불콩죽으로 ‘장자권’을 사려 했을 때, 그만 홀딱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사냥을 다녀와 허기진 마당에 향신료까지 뿌려진 불콩죽 냄새가 에사우의 코를 자극했다.

“야곱, 이 무슨 맛있는 냄새냐. 불콩죽 아냐. 야, 그거 좀 가져와봐. 배고파 죽겠다.”

이에 야곱은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장자권’을 들먹이며 형을 꼬드긴다. 에사우는 임기응변이었지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말을 뱉어 버리고 만다.

“야, 그까짓 거, 너 다 가져! 됐냐? 됐으면 빨리 불콩죽이나 다오”(창세 25,32-33 참조).

그의 대답은 “야, 임마! 넘볼 걸 넘봐! 그걸 가지고 내가 장자권을 팔아먹을 것 같으냐? 안 돼!”가 아니었다. 성경에는 그 이유가 이렇게 명백히 적혀 있다.

“에사우는 맏아들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창세 25,34).

이 마음이 모든 것의 화근이었다. 나중 야곱이 잔꾀를 부려 아버지의 축복기도마저 가로채고서는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주한 이후 20여년 애증의 우여곡절을 치러가면서 야곱집안이 기하급수적으로 번창함에, 에사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무리 접고 들어가도 그것을 요행수로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때늦은 깨달음의 탄성은 뼈아픈 잔소리가 되어 후손들 귓가에 빙빙 맴돌지 않았을까.

얘들아, 할애비와 애비의 말 띄엄띄엄 듣지 마라.

세월이 흐르니, 일점일획 영락없이 그대로 이뤄지더라.

아가들아, 혹여 은총, 축복, 누가 이런 말 하거들랑,

두 말 말고 군침을 삼키거라.

철없는 젊음에 허투루 여겼더니, 두고두고 부러움이 되더라.

‘불콩죽’ 한 그릇 값에 팔아넘겼더니, 철천지 아픔이 되더라.

내가 사랑하는 자녀들아, ‘말씀이 밥 먹여주냐’, ‘기도가 대수냐’라며

하느님의 약속 말씀을 공허한 것으로 치부하지 말거라.

‘쓰잘데기 없다’고 일축했더니, 점입가경 경탄의 가관이 되더라.

내 자녀들의 자녀들아!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면 무엇이건 대수롭게 여기거라.

땅에서 솟은 것이라도 무엇이건 대수롭게 여기거라.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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