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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박해기 - 강제 수용소의 선교사들] (5) 투옥에 이어 화형까지…

수녀에게 결혼 강요 … 거절하자 화형시켜/ 각종 죄목 붙여 선교사 추방·고문 일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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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택동 주석
1952년에는 스위스 수녀가 추방 당해 호북성에서 배를 타고 홍콩에 도착한 후, ‘공교보(公敎報)’ 기자에게 동북지역 공산당들은 종교인들의 화형을 습관처럼 자행했다고 증언했다. 수녀가 추방당하기 4년 전에 조안덕(趙安德) 신부, 공낙난(孔樂欄) 신부, 정방제(丁方濟) 신부가 화형으로 살해되었으며 선교사 한 명도 화형 당했다는 것이다. 또 중국인 수녀 4명에게는 결혼을 하라고 협박했지만 말을 듣지 않자 화형을 시켜버렸다.

섬서성 동주(同州)감목구 교구장 페트르스 모레티 주교는 주교관에 연금돼 있다가 기어이 투옥됐다. 주교는 강제로 인민재판에도 나가야 했는데, 그 자리에서 처음엔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다시 무기노개형을 받게 됐다. 이후 주교는 감옥에서 수인복을 입고 매일 도로를 청소하는 일을 3년 하다가 추방됐다.

1952년 12월이 되자 이제 중국 대륙에 남은 외국인 남·여 선교사는 723명으로 줄었다.

성모성심회 벨기에 출신 월림사(중국명 越林士) 신부는 당시 42세 나이로 열하성(熱河省) 팔리한(八里罕)지방에서 사목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몸에 병이 있는데다 감옥에서 심한 고문까지 받아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공산당에 의해 추방돼 홍콩으로 향하다 안타깝게도 선종했다.

산서성 태원(太原)총교구 교구장 카포찌 총주교는 주교관에서 총 세 자루가 발견됐고 수녀원에서 창 세 자루가 나왔다는 거짓선전으로 고난을 당했다. 공산당들은 카포찌 총주교와 프란치스코회 신부들의 머리에 조작된 죄목을 붙여놓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그리곤 카포찌 총주교와 신부들은 성모군을 조직하고 독립교회 가입을 저지시킨 죄가 있고, 수녀들은 고아 학살죄가 있다며 추방을 선고했다.

청도(靑島)교구 교구장인 아우구스티누스 올베르트 주교와 신언회 신부 5명, 수녀 2명은 1953년 6월 8일 홍콩에 도착했다. 올베르트 주교는 5명의 신부들과 함께 밤에는 볏짚과 풀을 덮고 자고, 매일같이 구타를 당해 일어설 수도 없는 지경으로 약 12개월간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감옥에 있던 중 올베르트 주교가 병까지 얻게 되자, 공산당들은 주교가 옥사하면 세계적인 여론이 좋지 않겠다는 생각에 다른 수인들에게 주는 것보다 조금 더 나은 음식을 갖다 주었다고 한다.

청해성(靑海省) 서영(西寧)교구 교구장 히로니무스 하베르스트로 주교와 걸납(중국명 杰納) 신부는 수갑으로 손이 묶인 채, 고발대회에 나가야 했다. 이들도 15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했는데, 공산당들은 영양이 부족한 음식을 그나마도 매우 조금씩만 주며 이들을 괴롭혔다. 심문하는 중에 계속 고문을 당했지만 옷도 갈아입지 못해 더러워진 위생 상태로 인해 하베르스트로 주교는 병까지 얻게 됐다.

공산당들은 종교인들을 차례로 체포해 괴롭히면서 특히 성당에는 스탈린과 모택동(毛澤東) 주석의 사진을 걸어놓고 성당을 회의 장소로 사용하고, 다른 건물들은 창고로 개조해 사용하곤 했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서양자 수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만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에 소속돼 있다. 저서로는 「중국천주교순교사」,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등이 있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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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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