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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박해기 - 강제 수용소의 선교사들] (11) ‘성모군’을 천주교 인사들 숙청 도구로 이용

성모군을 반동 비밀조직으로 몰아/ 지도자들과 신자들을 중형에 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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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사한 범학엄 주교
 
노개영에서 일하던 한 사람은 그곳의 삶에 대해 이렇게도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영성적으로도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 우리는 목자를 잃은 양떼와 같기 때문이다.”

특히 노개영에서 20~30여 년간 강제노동을 당하던 신부들은 석방된다하더라도 여전히 고통 속에 머물렀다. 늙고 병들었으나 의지할 곳이 없고, 극도로 가난해 병이 나도 치료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정부는 사제들에게 호구(戶口) 증명서나 량표(糧票, 양식 배급표)를 발급해 주지 않아 매일같이 식사를 친척이나 열심한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야만 했다. 더구나 공개적으로 미사를 봉헌할 수도 없었으며 긴급한 병자성사조차 집전할 수가 없었다. 단정파(單靜波) 신부도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지 못해 출옥 후 결국 굶어 죽은 사례였다.

농촌 신자들은 노개영에서 석방 된 신부를 초청해 농촌에 머물며 미사도 집전하고 성사도 줄 수 있도록 돌보아 주었는데, 그나마 몇 달 지나 버티지 못하고 당국의 제재를 당하곤 했다.

1951년 10월 8일 상해 군관위원회(軍管委員會)는 성모군(聖母軍)을 전부 취체(取締)하겠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성모군을 반동 비밀조직으로 몰아서 지도자들과 신자들을 체포하는 행위들이 이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성모군은 레지오마리애를 말한다.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성모군이란 이름 때문에 이 단체를 천주교 비밀조직으로 오해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성모군은 단순한 심신단체라는 것을 명백하게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모군 조직죄와 성모군에 가입한 죄, 성모군을 지도한 죄, 성모군을 후원한 죄 등을 적용해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중형에 처했을 뿐 아니라 외국인 성직자들은 추방해 버렸다. 또 중국인 신부들과 신자들은 대부분 노개영으로 보내 버렸다. 당시 중국정부는 성모군을 천주교 인사들을 숙청하는 도구로 이용한 것이었다.

게다가 주교가 신부들과 신자들이 애국교회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거나, 교황청과의 단절할 것을 거부하면 곧바로 체포해 노개영으로 보냈다. 절강성 대주(臺州)교구 교구장 호약산(胡若山) 주교도 애국교회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체포돼 10년 노개형에 처해졌다. 이후 호약산 주교는 노개영에서 영양실조와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선종했다. 정주(汀州)교구 교구장 허덕휘(許德輝) 주교도 노개영의 중노동과 영양실조로 지쳐 목숨을 잃었다. 하북성 보정(保定)교구 교구장 범학엄(范學淹) 주교는 신부들이 애국회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이유로 22년 동안이나 노개영에 갇혀 강제노동을 했다. 그가 1980년 석방되었을 때에는 이미 74세의 고령이 되어 있었다. 범학엄 주교는 이후 비밀리에 지하사목을 한 죄로 다시 체포돼 1990년 옥사했다. 그가 숨을 거두자 공안원은 부패한 범학엄 주교의 시신을 비닐 자루에 넣어 주교관으로 보냈다.


서양자 수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만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에 소속돼 있다. 저서로는 「중국천주교순교사」,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등이 있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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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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