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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박해기 - 강제 수용소의 선교사들] (14) ‘쑥대머리 귀신같은 수인들’

수인들은 오랫동안 씻지 못해 먼지투성이에/ 못먹어 뼈만 앙상하고 모발은 반 척이나 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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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개영의 수인들이 매우 존경한 엄온양 신부.
 
노개영 내 감옥의 생활 면면도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600여 명 이상의 인원이 한 번에 식사를 하는 식당에도 8m 정도 되는 길이의 널빤지로 된 상 하나만 있고 의자도 없는 지경이었다. 수인들은 식당에 빽빽이 들어서 음식을 받아 서서 먹었다고 한다. 그나마 수인들에게 주어진 음식은 마치 빗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파리가 우르르 몰려 앉았었던 찐 옥수수 하나와 멀건 배춧국 한 공기씩이었다. 수인들은 배춧국에서 파리가 나와도 건져내고 그냥 마셨다. 수인들이 입은 옷은 낡고 헤졌을 뿐 아니라 크기도 맞지 않아 몸 전체를 가리지 못하고, 팔목과 다리는 옷밖으로 드러났다. 수인들은 세수도 오랫동안 하지 못해 먼지투성이에, 몸은 뼈만 앙상하게 남고, 모발은 반 척이나 되게 길어 마치 ‘봉두귀(蓬頭鬼: 쑥대머리 귀신)’와 같았다고 한다.

게다가 수인들은 12시간 노예노동을 하고도 밤이면 2시간 동안 공산주의에 대해 학습을 해야 했다. 학습을 할 때마다 모기들이 달려들어 고통은 더했다고 한다.

반금 노개영 부근에는 둑이 있었는데, 이 둑은 1939년 일본인들이 수많은 중국인들을 강제 동원하여 제방공사를 한 것이었다. 이 공사는 매우 위험한 과정이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무수히 많은 인부들이 공사 중 죽어나갔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날씨가 추우면 언 땅을 대충 조금만 파고 인부들의 시신을 묻어, 유골들이 밖에 나뒹굴기 일쑤였다. 중국이 공산화 된 후 반금 노개영에서도 수인들이 사망하면 대충 묻었으므로 어디를 가도 유골이 뒹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밤에 물고기를 잡으러 해변에 나가면 유령이 해변에 서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는 유언비어들도 난무했다. 수인들은 밤이면 해변에서 번쩍이는 것이 일본군에게 강제 노동을 당하다가 횡사한 원귀(寃鬼)라고 결론을 짓곤, 자기네들과 같은 처지라며 동정하곤 했다.

반금 제10 노개영에서 수인들은 라디오를 수리하고, 시계를 수선하고, 신발을 수선하고, 술을 만들고, 과수원을 하고, 돼지나 닭을 키우고, 벽돌을 굽고 또 그물을 가지고 바다나 호수에 가서 물고기를 잡는 일도 하였다. 대개 한 사람이 새끼 돼지 60마리씩을 맡아서 키우는데 하루 돼지들이 4톤씩을 먹으므로 사료를 나르고 사료를 가마솥에 넣고 끓이는 일도 만만찮게 힘든 일이었다. 1970년에는 현대 화학공장이 세워져 요소(尿素) 생산까지 담당해야 했다.

늘 힘겨운 노동에 시달리던 노개영 수인들은 1976년 9월 9일 새벽 1시 10분 모택동 주석이 83세 나이로 서거했다는 방송이 나오자 누구보다 반겼다. 또 애도기간 노개영의 수인들에 대한 기율도 엄하지 못해 수인들이 조금 편했다고도 한다. 12시간 노예 노동을 시키고 밤에 2시간 사상 교육을 시키던 것을 1시간으로 줄어들었다. 노개영의 수인들은 이른바 천안문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서양자 수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만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에 소속돼 있다. 저서로는 「중국천주교순교사」,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등이 있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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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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