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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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정진석] (33)주님께 맡깁니다

“성소자만 발굴해 준다면 뒷바라지는 책임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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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자만 발굴해 준다면 뒷바라지는 책임지겠습니다”




서울 깍쟁이가 충청도 사람으로

‘서울 깍쟁이’라는 말이 있다. 서울 깍쟁이란 지방 사람들이 까다롭고 인색한 서울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서울 사람에 대한 지방 사람들의 감정적 표현인 셈이다.

청주교구장이 된 서울 깍쟁이 정진석 주교는 우선 교구장과 사제들, 신자들과 거리를 가깝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청주교구 사정은 그동안 정진석 주교가 지냈던 서울대교구와는 서울과 충청도의 거리만큼이나 많은 차이가 있었다. 교구 예산은 물론이거니와 당시 우리나라는 지방색이 지금보다 훨씬 뚜렷했다. TV나 라디오의 보급률이 그리 높지 않아 문화적 차이도 심했다. 정 주교는 자신이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이라 사제들이나 교구 신자들이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빨리 청주 사람, 충청도 사람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 주교는 본당을 방문해서 신자들을 만날 때마다 교구장 취임 인사 때 했던 말을 반복했다.

“저는 여기 여러분들 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생활하며 여러분에게 봉사하며 여러분과 더불어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왔습니다.”

정 주교는 이곳 청주교구에서 여생을 다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주교 임명 때부터 생각한 것이지만 청주교구장으로 오면서 신학교 때부터 실천해온 생활로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략 신학교 생활처럼 일찍 기상하고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 생활을 실천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간단한 운동을 하고 아침 기도와 미사, 그리고 아침 식사 후 저녁때까지 사무실에 출근해 일하고 저녁 식사 후에는 묵주기도를 바치며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고 오락적인 취미생활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유폐 생활(?)을 하게 됐다.

시간이 허락되면 취미로 독서와 글 쓰는 데 몰두했다. 독서와 글을 쓰는 것이 어떻게 진정한 취미가 되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정진석 주교에게는 독서하고 글 쓰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취미 생활이었다. 사람의 취미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몰두하면서 잡념도 사라지고 안정이 되니 정 주교에겐 이만한 취미 생활이 없었다. 선배 신부님들에게서 사제들도 취미 생활을 한가지쯤 가져야 사제 생활을 잘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글을 쓰면서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더구나 독신 생활을 하니 혼자서도 해낼 수 있는 취미여서 정 주교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자립 자립 자립

정진석 주교는 교구를 운영하는 데 우선 두 가지 목표를 정했다. 하나는 청주교구 본당들이 자립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청주대목구 설정 당시부터 메리놀외방선교회에 위임되어 운영된 청주교구는 외부의 도움을 받아 운영되는 본당이 많았다. 신자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했다. 우리 본당 운영은 우리가 책임지고 한다는 생각이 있어야 했다.

사실 당시의 한국 교회는 외국 원조에 많이 의존하느라 한때는 ‘밀가루 신자’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전쟁 직후 구호품인 밀가루를 성당에서 나눠줬는데, 이것을 받으려고 성당에 가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경제가 발전해 먹을 것에 구애받지 않지만, 얼마 전만 해도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웠다. 세월이 흘러 교회의 자립도가 높아지자 자연히 이 배급 제도도 사라지게 됐는데, 그러자 냉담 교우도 덩달아 증가하게 됐다. 정진석 주교는 이러한 진단을 내린 끝에 자립심을 키워나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국인 사제 양성 시급

두 번째로 본당 자립과 교구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한국인 사제의 양성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교구 사목의 성공 여부는 사제 양성에 있다. 교회 공동체에서 사제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사제는 주교의 협력자로서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다. 교구장이 아무리 좋은 사목 계획을 세워도 사제들의 협력이 없으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청주교구장으로서 사제 양성은 두 번째 큰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정진석 주교는 신학생 양성에 힘을 쏟기로 했다. 틈만 나면 교구 사제들에게 이야기했다.

“신부님들은 본당 사목에 최선을 다해주시고, 본당 자립을 위해 힘을 쏟아주세요. 저는 신학생 양성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학생들 뒷바라지는 본당에서 신경 쓰지 않게 제가 책임지고 하겠습니다. 신부님들은 성소자들을 발굴해주시기 바랍니다.”

당시에는 성소후원회 등이 없어 신학생들을 양성하는 데 등록금, 기숙사비 등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서울에서조차 사제 양성비 마련이 부담스런 본당이 많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교구장인 자신이 책임질 테니 성소자를 발굴해서 신학교에 신학생들을 많이 보내달라고 선언한 것이다.

“아니 교구장님이 그 많은 비용을 어디서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 것이지?”

사제 중에는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당시 정 주교도 딱히 묘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면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시겠지’ 하는 정진석 주교 특유의 ‘야훼 이레’ 믿음뿐이었다. 때로 사람들은 말한다.

“정 주교님은 지나칠 정도로 초긍정적이셔!”

틀린 말은 아니다. 그의 이런 성향은 믿음에 근거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 같으면 밤을 지새워 고민했을지라도 정 주교는 묵주를 쥐고 화살기도를 바쳤다.

“아이고! 하느님이 알아서 좀 해주세요.”

하느님 아버지는 될 일은 잘될 수 있게 돌봐주셨고, 욕심과 번뇌를 내려놓고 잠도 잘 들 수 있게 은총을 내려주셨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이에게만 내려오는 은총이었다.

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사진=서울대교구 홍보국

정진석 주교는 청주교구장으로서 한국인 사제 양성을 사목의 가장 큰 목표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사진은 정 주교가 교구장 착좌 이래 처음으로 1970년 10월 23일 사제서품식을 주례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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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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