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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주님의 기도’에 담긴 영성 / 이상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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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지면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고도 설레는 마음이다. 무엇보다도 이 만남을 이끌어주시는 분은 사랑의 하느님이시다.

우리 각자는 세상 안에서 녹록치 않게 부대끼며 살아가는 한 사람이자 신앙인이다. 이러한 우리의 정체성이 어떻게 하면 하느님 안에 좀 더 머무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를 이 소중한 만남 안에서 나누고 싶다. 신앙인으로서 하느님 안에 살아가는 첫 번째 열쇠는 바로 기도가 아닌가 싶다.

‘기도’ 하니까, ‘주님의 기도’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첫영성체를 준비하면서부터 주님의 기도를 달달 외우기 시작했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의 마음이며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것이라는 가르침이었다. 예수님이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지만 유년기에 교리반 선생님께 그렇게 배우며 주님의 기도를 처음 대하게 됐다. 기도를 시작한 것은 비록 문자를 통해서였지만, 아득했던 하느님과의 지성적인 첫 만남은 나의 인생에서 그때였다.

그 후로 그리스도를 통한 인격적인 하느님을 친밀히 만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유년기를 넘기면서 느끼는 고민들과 어려움, 곤란함을 겪을 때, 혹은 가슴에서 우러나는 감사함과 행복감을 느낄 때는 엄위하시고 닿을 수 없는 곳에 계신 듯했던 하느님이 조금은 가깝게 여기지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친밀하게 알게 된 큰 계기는 사제의 꿈을 품고 신학교에 들어가 생활하면서부터다. 십자가와 수난 없이 부활의 영광이 없듯, 하느님에 대한 인식은 복음서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인격에서 끊임없이 비춰지고 있음을 확신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요한5,19-20)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하늘’은 어디인가? 구름 위 저 높은 곳을 말한다면 고층빌딩이나 옥탑방에 사는 사람이 하느님과 더 가깝다. 그러나 그 하늘은 당연히 아니다. 주님의 기도를 꼽씹어 보면, 그 지고한 하늘은 이미 낮고 낮은 우리 삶의 현실로 내려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에서 하느님께 대한 찬양어린 고백과 우리 현실의 간절한 청원을 대변하신다. 여기에는 확고부동한 하느님과의 인격적 일치와 우리가 바치는 올바른 기도의 개념이 단순명료하게 담겨져 있다.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로 초대받은 영원한 생명을 향한 신앙의 여정은 이러한 영적 기초에서 시작됨을 말이다.

앞으로 이 지면에서 주님의 기도를 세밀히 들여다보자.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과 삶 자체가 부활하시어 우리의 인생 여정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며, 우리는 그 사랑 안에 머물고 있음을 느끼자.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든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의 삶이기에 우리가 드리는 일상의 기도는 은총의 통로가 된다. 예수님께서 늘 기도하시며 일생 품으셨던 살아계신 영(루카10,21참조)을 음미하고, 그 영을 따르는 것이 영성생활의 근간이다.



이상선 신부(교구 사제평생교육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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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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