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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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내어 주는 신앙인 되기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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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내어 주는 신앙인 되기를 기도”





이번 작품을 읽으며 웅크렸던 가슴을 조금 펴게 되었습니다. 이 원고를 어떻게 읽는담, 저는 먼저 가슴을 조였던 겁니다. 지난해 원고들은 고통에 다시 고통을 그리고 다시 고통을 이야기하는 원고들이 많았습니다. 다 읽고 나서 온몸의 통증을 느꼈습니다. 이런 험악한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찾게 되는구나…. 그러나 이번 원고들은 조금 달랐습니다. 여러 가지 삶의 다양한 모습들로 하느님을 발견하고 모시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잔잔한 이야기들로 하느님의 길로 가는 모습들도 가슴을 적시며 감동을 주었던 것입니다.

가작의 이석수(요아킴)님의 ‘행복한 사형수’는 아름다운 인간승리를 보여줍니다.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드디어는 모범수로 변화하면서 생활 속에 주님을 분명히 증거하는 그분의 시간은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여러 번 원고를 읽으며 손뼉을 쳤습니다. 사형수였지만 예수를 닮으려는 지독하고 성실한 노력은 인간의 힘을 능가하면서 여러 개의 자격증을 따내는 승리를 보여줍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어가는 참된 신앙을 보여줍니다.

역시 가작인 이영치(베르나르도)님의 ‘열사의 땅 사우디’도 감동은 마찬가지입니다. 공항검색대에서 묵주를 갈가리 찢는 경험을 하고서도 기도와 성심을 버리지 않고 더 깊어지는 과정은 놀라웠습니다. 위기 앞에서도 기도만을 믿는 철통 신앙이 그를 살리는 일도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특별상은 이영희(아녜스)님께 돌아갔습니다. 뇌종양으로 딸을 잃는 인간의 최고 고통 속에서도 경건한 믿음과 그 믿음 속 갈등을 다시 믿음으로 풀어가는 순종의 자세는 손가락 끝에 읽는 이의 열정을 불러왔습니다. 발자국마다 은총이라는 말도 가슴에 차오릅니다.

우수상은 최은순(아녜스)님의 ‘친애하는 키다리 아저씨께’입니다. 키다리 아저씨는 신부님이고 글을 쓴 아녜스는 동생입니다. 20여 년의 병원생활을 끝내고 필리핀에서 노약자와 병든 이를 치유해 주는 일로 마지막 여생을 보내다 골수이형성 증후군에 걸려 고생하고 골수이식수술을 하는 과정을 동생이 지켜보면서 겪는 기적 같은 은혜에 동생은 믿음의 승리를 차근하게 보여줍니다.

마지막 대상은 김윤성(다니엘)님입니다.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읽게 되는 이 글은 제목처럼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시간이다”입니다. 류마티스 담당 의사가 쓴 이 글은 우리 삶 안에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소박하고 선한 사람들이 겪는 육신의 고통을 만나는 일입니다.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작은 현실 속의 모습을 귀하게 바라보며 애정을 가지는 글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는 아름다움을 봅니다. 자연의 향긋한 풍경 속에 비치는 인간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등외로 비켜간 작품들도 모두 축복받기를 바랍니다.

뜻밖의 대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했습니다. 쟁쟁하신 심사위원님들께서 내 글을 읽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그 글을 높이 들어 올려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얼마 동안은 가슴이 벅차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답니다.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는 메시지가 뭘까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내 일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수상의 기쁨이 나의 미래에는 소중하고 특별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겠지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여 내 오랜 감성의 고향동네인 오래전 일기장을 꺼내 수많은 경험 속에서 하느님과의 대화들을 떠올려 보고 싶어졌습니다.

나는 항상 그랬습니다.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누군가가 하느님을 사랑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거룩해 보여서. 내 마음속 평화를 주셔서. 내게 끊임없이 은총을 내려 주셔서. 그래서 하느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런 경험들 속에서 하느님께 때로는 불평하고 때로는 감사 찬미를 드리고…. 때로는 끝없는 어둠에서 존재를 의심하고…. 이것이 나와 하느님의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한 신앙이란 무엇일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어떻게? 나를 둘러싼 물적ㆍ육적ㆍ영적 배경들과 전혀 상관없이 그분과 나와의 일대일 만남 속에서 그분을 사랑하는 것. 절대자여서 받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때로는 하느님이 측은해 보이고 때로는 하느님을 이해해주고 싶고 때로는 하느님과 같이 있어주고 싶고 때로는 하느님을 위로해주고 싶고…. 연로해 가는 부모님을 대하듯…. 노래가 좋아서 가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가수가 좋아서 노래를 사랑하는, 그래서 하느님이 하시는 노래는 모두 좋아지는 것, 그런 마음, 그런 생각들…. 그것이 성숙해 가는 신앙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문득 하느님마저도 고독한 존재이실텐데 인간은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 존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내가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섭섭함에 초점이 맞춰진 이기심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을 전적으로 같이해 줄 수 없는 운명이라는 즉 철저히 이타적일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에서의 고독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말기 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막 전해 들은 우리 병원 동료 간호사님의 애처로운 눈빛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도 않은 그 날 내게 처한 급박한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아픔을 감정 이입할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이란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들조차도 같이 가지 못하고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외로운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숨을 쉬고 있습니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끊임없는 호흡 근육의 움직임 덕분에 하루하루 삶을 무사히 영위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뛰고 있는 심장의 박동은 말할 것도 없고요. 운동기구인 트레드밀에서 편안히 걷고 있는 사람을 보면 끊임없이 발을 움직여야만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잠시라도 두 발을 바닥에 대고 있는 순간 뒤로 밀려나면서 중심을 잃고 쓰러질 것입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의미 없이 살아가는 듯한 평범한 우리의 삶도 사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낙오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치열한 인생의 현장에서 살기 위해 노력하다 지치고 상처받고 아파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이름 없는 모든 이들에게 제 글이 조그마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수상의 영광을 외롭고 고독한 그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외롭고 고독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사랑이란 주고 싶은 넉넉함이 아니라 줄 수밖에 없는 절실함’이라는 말처럼 내게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시간에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며 온전히 내어 주는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아내 마리아와 두 딸(클라라, 안젤라) 및 가족들에게 기쁨을 모두 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조선대병원 가톨릭 교우회와 우리 의과대학 학생들, 북동본당 식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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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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