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세계 이민의 날 기획] 국내 무등록 이주아동 실태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의 수가 200만 명(2016년 6월 30일 기준)을 돌파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이주민 복지는 여전히 열악하다. 특히 ‘취약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주아동의 현실은 위태롭기까지 하다. ‘세계 이민의 날’을 맞아 국내 이주아동, 특히 출생신고도 하지 못해 존재 자체가 ‘불법’으로 여겨지는 무등록 이주아동들의 실태를 살펴본다.


코트디부아르 출신으로 난민 판정을 받은 ‘실비’(가명)의 부모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았다. 내전이 끝나면 돌아갈 생각이었다. 한국에 들어와 몇 년 뒤, 딸 실비를 낳았지만 한국 주재 코트디부아르 대사관에 가서 출생신고를 할 수가 없었다. 강제 송환 등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비는 벌써 다섯 살이 됐지만, 한국 땅에선 ‘없는’ 아이다. 존재 자체가 ‘불법’이었다.

열여섯 살 인호의 주민등록번호에는 생년월일로 된 앞자리에 이어 ‘0’이 일곱 개 나란히 붙어 있다.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왔던 중국인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받게 된 임시번호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니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아파도 참아야 한다. 휴대폰도 남의 이름으로 등록했고, 당연히 청소년 요금제 적용도 받지 못한다. 인호는 ‘내 이름’으로 된 저금통장을 갖는 게 꿈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인호는 처음에는 ‘한국어 미숙’으로, 이후엔 한국 국적자만 발급받을 수 있는 가족관계등록부와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하지 못해 학교에도 못 간다. 게다가 이주아동 중에선 선천성 뇌성마비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부모의 불법 체류 신분 탓에 장애인 판정을 받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 가장 큰 두려움 ‘강제 추방’

이들에게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불법 체류 신분이 발각돼 강제 추방되는 일이다. 네 살배기 인혜(가명)는 밀항한 엄마 박 모(37세)씨와 함께 거의 한달 동안 충북 청주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두려움 속에서 강제 출국을 기다려야 했다. 철창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인혜는 고열과 불면에 시달렸다. 우울증과 불안 장애도 고스란히 아이의 몫이었다.

열일곱 살 민우는 일곱 살 되던 해에 부모를 따라 몽골에서 한국으로 이주했다. 스스로 ‘한국인’이라 생각하지만, 법적으론 ‘불법 체류자’였다. 친구들과 우연히 싸움에 휘말렸고, 경찰은 민우가 ‘미등록’인 것을 확인하고 외국인보호소로 보냈다. 민우는 닷새 만에 수갑을 찬 채 공항으로 이송, 몽골로 강제 추방됐다. 민우는 그 사이에 부모를 만나지도 못했다.

우리나라가 27년 전에 가입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이주아동의 구금을 금지한다. 국제법은 18세 미만을 아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부모 없이 아동만을 강제 송환하는 것은 아동인권 침해로 간주된다. 민우는 불법 체류자 이전에 ‘아동’이라는 사실을 우리 법체계는 무시한다.


■ 검토조차 안 되고 폐기된 ‘이주아동권리보장 기본법’

지난 18대와 19대 국회에서 추진됐던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은 무등록 이주아동의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 법안은 이주아동에게 출생 등록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불법 체류자 자녀도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출생신고를 하도록 규정했다. 또 이주아동에게 특별 체류 자격을 부여하고, 부모가 강제 퇴거 대상이더라도 자녀는 특별 체류 기간이 끝날 때까지 강제 퇴거를 유예하도록 했다. 의무 교육과 의료 지원 등을 아동의 권리로 인정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필요한 지원을 하도록 규정했다.

18대 국회 때 당시 한나라당 소속 김동성 의원이 2010년 10월 22일 ‘이주아동권리보장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이듬해 4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 법안심사 1소위에 회부됐다. 그리곤 ‘끝’이었다. 19대 국회에서는 2014년 12월 18일 이주민 출신인 당시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 등 23명이 법안을 발의했다. 법사위엔 다음날 회부됐고, 2015년 4월 법사위 전체회의, 법안심사 1소위에 회부됐다. 다시 또 그것이 ‘끝’이었다.

두 번의 법 제정 시도는 모두 제대로 검토조차 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 결국은 임기 내 처리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되지 않았고, 결국 이주아동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왜 그랬을까? 왜 두 차례의 법 제정 시도가 무산됐을까?


■ 반대 여론 극심… 인식의 변화 필요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은 여론의 절대적인 반대에 부딪혔다. 법안이 예고된 2014년 12월 22일~2015년 1월 5일, 국회 입법 예고 사이트에는 2주 동안 무려 1만4000개 이상의 의견이 게재됐다. “내 세금으로 왜 불법 체류자를 먹여 살려야 하느냐?”, “의무는 하나도 안 하면서 권리만 챙기려는 외국인 노동자!”,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불법 체류자를 도와야 하느냐?” 등 반대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이 같은 반대는 엄연한 현실 문제이기도 하다. 불법 체류 외국인들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라는 우려도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비책은 입법과 실행 과정에서 마련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우선시하느냐이다.

법안 발의 당시 극렬한 비난을 받았던 이자스민 의원은 2015년 4월 29일 법사위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보호받아야 합니다. 출생 사실조차 기록되지 않은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입니다. 교육권은 성장 과정에 있는 아동의 인격 실현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최소한의 의료서비스 제공은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됩니다.”

국제사회는 아동의 생존, 발달, 보호, 참여에 대한 기본권을 명시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제정했다. 1989년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했고, 1991년 가입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93개국이 비준했다. 18세 미만 아동의 생명권, 의사표시권, 고문 및 형벌금지, 불법 해외이송 및 성적학대금지 등 각종 ‘아동 기본권’의 보장을 규정, 가입국은 이를 위한 최대한의 입법, 사법, 행정적 조치를 취하도록 의무화했다.


■ 교회, 삼중 무방비에 놓인 이주아동 보호해야

그러면 교회는 이주아동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 교회는 한마디로 ‘취약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동 이민자’들을 돌봐 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3차 세계 이민의 날을 맞아 발표한 담화를 통해서도 인간이 “짐짝처럼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며 이주아동들을 보호하고, 사회로 통합하며, 장기적 해결책을 마련할 것을 호소했다.

“이들은 어린이며, 이방인이고, 자기 방어 수단이 없어서 삼중의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고국을 떠나 자신의 가족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을 도와줄 것을 모든 이에게 요청합니다.”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옥현진 주교는 여러 번에 걸친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이 제정되지 못한 것을 ‘애통하게’ 여겼다. 특히 옥 주교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인정한다면, 이런 법률을 제정하는 것에 반대할 수 없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교회의 입장은 분명하다. 이주 현상은 개인과 사회, 정치와 경제 등 국가와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하지만 교회는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말한다. 아무런 자기 방어 수단도 갖지 못한 아동을 보호하는 일은 가장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일이다.

법무부 추정에 의하면, 국내 거주 이주아동은 이미 10만 명을 넘어섰다. 그 중 2만여 명 정도가 무등록 이주아동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그 수는 향후 급속하게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아동’이라는 것만으로도 보호돼야 한다. 생존권과 교육권, 건강과 복지권을 포함해 어떤 면에서도 차별과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유된 인식이고, 교회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7-04-2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3. 29

2티모 4장 2절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