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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순교자를 만나다] 성 남이관 세바스티아노·성녀 조증이 바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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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성인들이 있다. 남이관(세바스티아노) 성인과 조증이(바르바라) 성녀다.

남이관 성인은 1780년 서울의 양반교우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인은 18세 때 조증이 성녀와 결혼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성인의 부친 남필용이 유배를 당하면서, 그 또한 경상도 단성으로 유배됐다. 남편이 유배되자 조증이 성녀는 친정인 이천으로 돌아가 10여 년 간 생활했다.

당시 성인은 신자 집안에서 자랐고 신앙 때문에 유배를 당했지만, 아직 세례를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교리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매일 저녁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빠짐없이 바치면서 하느님을 공경하고 있었다. 교리를 잘 알지 못했기에 유배지에서 첩을 얻기도 했지만, 40세에 이르러 이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첩을 멀리하고 신자답게 살고자 노력했다.

성녀 역시 친정에서는 신자들과 교류할 수 없어 신앙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성녀는 30세부터 서울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 친척집에 머물면서 적극적으로 교회 활동에 참여했다. 친척인 정하상을 도와 성직자 영입운동에도 참여했다.

1832년 성인이 유배에서 풀려나자 성인과 성녀는 함께 열성적으로 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성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의주까지 가서 유방제 신부의 입국을 돕고, 회장으로서 유 신부의 사목활동을 보필했다.

성녀 역시 성인의 활동을 지원하고, 집에 신자들을 위한 강당을 만들기도 했다. 유 신부가 중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는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앵베르 주교를 자신의 집에서 보호하기도 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성녀는 성인을 친정인 이천으로 피신시키고 집을 지키고 있다 체포됐다. 성녀는 그의 남편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관헌들의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겪으면서도 성인이 어디에 있는지 함구하고 신앙을 증거했다. 하지만 성인 역시 같은 해 9월 밀고자에 의해 체포돼 먼저 순교의 길을 걷게 됐다.

성녀는 박해 전부터 남편에게, “만일 박해가 일어나면 우리는 죽어야 할 터이니, 천주의 영광을 현양하고 우리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고통을 참아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말해왔다.

서소문 형장으로 끌려가던 성인은 그런 아내에게 “동일동사(同日同死)하자 했더니, 이는 못해 동지동사(同地同死)합시다”라는 말을 남기고 순교했다. 성인의 말처럼 3개월 후 성녀도 서소문에서 순교했다.


■ 성인 발자취 만날 수 있는 곳 - 단내성가정성지

단내성가정성지(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이섭대천로155번길38?13)는 조증이 성녀의 친정이 있었고 남이관 성인도 박해 중 피신했던 장소인 이천에 자리한 성지로, 성인과 성녀를 현양하고 있다.

※문의 031-633-9531 단내성가정성지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7-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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