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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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고 왜곡된 진실 찾아 오늘도 펜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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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도 취재에 도움을 준 다까자네(왼쪽) 교수와 일본 나가사키 평화공원에 선 한수산.

▲ I1989년 백두산 정상에서 이경재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성체를 영하기 위해 사제 앞에 선 한수산씨.

▲ 한수산씨는 소설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글은 일단 쓰고, 고쳐라. 고칠 때부터 글이 된다”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힘 기자

▲ 최양업 신부 일대기를 소설에 담기 위해 두만강 일대를 돌아보는 한수산씨.



비워야 채워진다지만 잊힐 권리조차 허락되지 않는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있다. 그렇다고 아픔을 슬픔으로만 담아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의 진실을 기억에 담을 때 역사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 된다. 너무도 가슴 시리게 아파 지우고 싶은 기억을 끈기 있게 파헤쳐 오늘에 내어놓고 미래를 기도하는 작가가 있다. 소설가 한수산 요한 크리소스토모다. 그에게 과거의 아픈 기억은 분노와 좌절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의 적폐(積弊)는 없어져야 하지만 진실은 기억해 오늘과 내일에 담아야 한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성모송을 바치며 ‘빛의 갑옷’을 입고 이 시대의 간절함을 찾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의 비극적인 진실을 그린 소설 「군함도」를 넘어 그는 지금 순교자의 발자취를 찾아 걷고 있다. 가진 것과 선입견, 편견을 버리고 ‘무릎 끊게 해 달라’며 주님께 애원하고 있다. 인간성이 상실된 이 시대, 지금 왜 순교자인가? 기도하며 그 답을 찾아 작품에 담는다.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과거의 역할’, ‘현재의 임무’, ‘미래의 기도’는 과연 무엇일까?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 27년 동안 취재한 소설 「군함도」로 가톨릭문학상을 받으셨어요.

사람의 업적이나 공헌에 주는 상이 아니라 작품 「군함도」에 주는 상이어서 참 고마웠어요. 모든 문학 작품은 인간의 선과 휴머니즘을 그리는 것인데요, 본질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군함도」를 쓰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었어요. 일본에 있을 때 한 시민단체에서 만든 ‘원폭과 조선인’이란 작은 책을 통해 전혀 몰랐던 과거사를 알게 됐죠. 군함도(일본명 하시마)라는 섬의 해저탄광에서 한국인들의 인권이 그렇게까지 말살됐다는 것을 전혀 몰랐으니까요.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화석으로 남겨둘 수 없다는 작가적 소명 의식으로 작품에 매달렸습니다.



▶ 「군함도」의 전작인 「까마귀」가 일본에서 화제가 됐었죠.

「까마귀」가 나왔을 때 제 얼굴까지 넣은 특집 기사가 다뤄졌어요. 「군함도」는 「까마귀」의 완결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학작품은 물 위에 떠 있는 빙산이어야 하고 그 밑은 독자의 상상력에 맡겨야 한다는 이론이 있는데요. 전작인 「까마귀」는 빙산의 아랫부분에 집착한 작품이고요. 작가의 의도가 담긴 빙산의 일각만을 담은 작품이 바로 「군함도」죠. 그런데 첫 장면은 취재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분과 나눴던 일화에서 결심한 내용이기 때문에 바꾸지 않았습니다. 방파제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저쪽이 조선이다’로 시작하죠.



▶ 「군함도」를 통해 주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요.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흘러간 역사지만 오늘의 문제로 다시 생각하자는 것이죠. 일제 강점기 수많은 문제에 대해 일본의 반성도, 제대로 된 보상도 없고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도 없잖아요. 문화적 기억을 되살리자는 겁니다. 문화가 나서서 지나간 것들을 오늘의 것으로 되살리자는 것이죠. ‘군함도’라는 섬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왜 청산되지 않는지 오늘의 문제로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소설과 영화, 노래와 춤이 그것을 해원(解)해 줘야죠. 서글픔을 풀어주는 문화적 작업이 계속될 때 과거는 살아 있는 오늘이 되는 것입니다. 화석처럼 굳어지면 안 될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문화인들이 노래하고 춤추게 해야 합니다. 눈물짓게 하고 분노를 끓게 하는 것, 그게 남아 있는 사람들의 역사적 책무라고 생각해요.



▶ ‘문화적 기억’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환시(幻視)시켜야 할 문제들이 있어요. 문화가 나서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고 알려야죠. 유다인 문제에 독일은 수상이 무릎을 꿇고 사죄했지만, 일본은 부정하고 왜곡 일변도인데 피해국으로서 우리는 의무를 다했는가 하고 묻게 됩니다. 유다인 관련 영화보다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나 소설은 과연 몇 편인가. 문화가 역사의 비극을 알리는 것이 ‘문화적 기억’이라고 저는 믿는 거예요. 어제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고 어제를 읽은 민족에게만이 내일은 희망입니다.



▶ 1981년 5월, 한수산 필화 사건을 겪으셨죠.

신문에 연재한 장편소설이 전직 대통령을 희화화했다는 이유로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는데요. 육체적인 고통은 쉽게 사라져도 영혼이 받은 상처는 남아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근본적인 것은 사랑, 우정, 충성 등 추상 명사인데요, 고문은 추상 명사를 없애 버리고 인간을 벌레로 만듭니다. 헤쳐 나오기까지 매우 힘들었죠. 정신 착란까지 겪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게 불가능했죠. 전기 고문의 후유증으로 목 밑에서부터 손끝, 발끝까지 새카맣게 탔어요. 석 달이 지나니까 피부가 다 벗겨지더라고요. 이후 작가로서 재충전을 위해 일본으로 갔는데 그게 「군함도」를 있게 한 씨앗이 된 것이죠.



▶ 김수환 추기경을 소재로 한 소설 「용서를 위하여」도 발표하셨지요.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추기경님 말씀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가해자가 전혀 반성도 없는데 어떻게 피해자가 먼저 용서할 수 있나. 가혹한 비인간적인 행위(고문)를 했던 집단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추기경님을 더 깊이 알기 위해 강론과 저서를 포함해 전집을 읽고 1년 동안 추기경님의 자취를 찾아다녔습니다. 추기경님의 옛집을 찾아 어린 시절 냇가에서 어머님과 나눴을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씀하신 ‘용서’의 의미를 생각해 봤죠.



▶ 백두산 정상에서 세례를 받으셨어요.

부끄럽게도 가톨릭 ‘삼수생’입니다. 첫 번째는 필화 사건 이후 고문을 받으면서 하느님을 부정했지요. 인간에 대한 혐오감, 세상에 대한 절망감으로 ‘하느님이 계신다면 이럴 수 없지 않습니까’라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는 스스로 예비신자 교리를 신청했다가 실패했어요. 제가 준비가 안 된 거예요. 세 번째는 정말 우연히 중국 여행을 떠나면서 성 라자로 마을의 이경재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가톨릭 삼수생이라고 했더니 웃으시면서 잘 됐다고 해요. 백두산에 도착하니 ‘내일 세례를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얼음처럼 차가운 백두산 물을 이마에 받으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감동에 내내 눈물을 흘렸죠. 하느님을 찬양하고 증거하는 글을 쓰기로 주님과 약속했습니다.



▶ 그래서 10년 동안 가톨릭 순교자들을 재조명하셨군요.

세례 후 가장 감동 받은 한국 순교자들에 관해 소설을 쓰기로 하고 10년 동안 성지를 찾아다니며 월간지에 103편을 썼습니다. 성경도 교리서도 없이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향했던 순교 선조들의 가르침은 ‘그냥 믿어라’, ‘주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라. 그럼, 계실 것이다’였습니다. 일반인들도 읽고 당시 가톨릭 신자들의 위대함이 전해지길 작가로서 온 정성을 쏟을 뿐입니다.



▶ 가톨릭 문학작품들을 어떻게 보시나요.

다른 종교와 비교하면 가톨릭 문학작품이 현저히 적습니다. 가톨릭 작품을 쓰는 작가들은 많은데 독자에게 전해지지 않고 있어요. 더 좋은 작품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인간의 원죄 의식을 바탕으로 한 좋은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에서 시작되는 삶이 작품에 깔려야죠. 그런 면에서 좀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요즘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최양업 신부님의 일대기를 소설로 쓰고 있는데요. 내몽골과 필리핀에 다녀왔고요. 최양업 신부님이 귀국 도중 일주일간 ‘경원’에 억류되었다는 기록을 읽고 ‘도문’에서 ‘훈춘’까지 귀국길을 답사했습니다. 최근에는 사료에 딱 한 줄 나오는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두만강 쪽에 다녀왔습니다. ‘두만강 어디를 건넜을까’를 설정하기 위해 아홉 군데를 답사하고 왔습니다.



▶ 약속을 지키면서 소설을 쓰시는데요. 선생님께 ‘약속’은 어떤 의미인지요.

작품의 소재가 보이는 게 두려워지는 나이가 됐어요. 그래서 ‘가능한 시간 동안 깨어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죠. 한국 천주교회사 전체를 소설로 쓰다 죽겠다고 했는데 아직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성모님 관련 소설을 남기고 싶어요, 성모님의 아름다움, 비참함, 고통, 사랑이 담긴 작품을 남겼으면 하는 게 꿈이자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작업실을 오갈 때 늘 성모송을 바칩니다. ‘제가 무릎 꿇게 해 주십시오’ ‘제가 가진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영감으로 작품을 쓰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고요.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로마 13,12)라는 성경 말씀을 늘 가슴에 품고 삽니다.



▶ 작품에서 ‘역사성’과 ‘감사’를 통합시키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왜 지금 최양업인가’는 그분의 편지 속에 답이 있습니다. 인간의 평등성, 인간에 대한 설움, 박애의 정신이 다 담겨 있거든요. 작품에 그것을 넣지 않는다면 소설 최양업을 쓸 이유가 없죠. 작품을 통해 그것을 묻고 담을 것입니다. 소설은 과거형을 서술하지만, 작가는 그 안에서 벗어나야죠.



▶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요, 작가에게 요구하는 시대적 소명 의식은 무엇인가요.

정치, 사회적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작가라고 봅니다. 마음에 품은 작품으로 변화를 넘어서는 게 작가인 것 같아요. 일종의 적폐라고 이야기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이젠 없어져야 합니다. 인간의 자유를 향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작가입니다. 시대가 변해도 작가의 본질이 변하면 안 됩니다. 윌리엄 포크너가 그랬잖아요. ‘작가는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된다’고요.



▶ 소설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죠.

‘장르를 뛰어 넘어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제까지 있었던 소설 장르, 단편소설, 장편소설 이것은 없어져야 하고요. 시나리오나 연극 대본 아니면 춤추기 위한 대본용 소설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글 쓰는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글은 고쳐야 합니다. ‘일단 쓰고, 고쳐라.’ 고칠 때부터 글이 됩니다.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16) 한수산 요한크리소스토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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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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