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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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회정착 꿈꾸며 걷는 북한이탈주민 황현우씨의 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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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3주간에 들어서면서 날씨는 더욱 매서워졌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몰려와도 신앙인들은 성탄이 가까워졌음을 알기에 두근거리는 떨림과 간절함으로 대림 시기를 보낸다. 북한 땅에서 거친 걸음으로 반대 편 땅에 닿은 북한이탈주민들도 추운 겨울을 지나 빛에 다가서기 위한 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딛고 있다. 대림 시기, 한국사회 정착을 위해 누구보다 희망 차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이를 만나봤다.


■ 간절하게 걸어온 낯선 땅, 눈물로 지새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갑자기 외딴 섬에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 황현우(루카·31·서울 무악재본당)씨는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차분하게 말했지만 목소리는 울적했다. 깔끔한 외모에 표준어 억양을 가진 그는 이제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를 정도다. 그러나 그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기까지는 말하기 힘든 아픔과 노력이 있었다.

통일부 북한이탈주민 입국 인원 현황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북한이탈주민 수는 1990년대 꾸준히 증가했다. 2009년 3000여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7년 기준 총 입국자는 약 3만여 명에 이른다. 이처럼 북한이탈주민은 국경을 넘어 어렵사리 이 땅에 발을 딛는다. 목숨을 걸고 넘어와 꿈에도 그리던 자유를 얻었지만 또 다른 벽에 부딪히기 예사다. 바로 ‘사회 정착’이라는 문제다.

2010년 입국한 황씨는 입국 과정에 대해 좀처럼 입을 떼기 어려워했다. 그 과정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표현하기 힘든 고통이 묻어났다. 한국으로 오는 길을 동행했던 동료가 북송되는 가슴 아픔을 겪었기 때문. 그러나 그는 이내 다른 어려움에 부딪혔다.

“앞으로 살 집에 짐을 넣고 보니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하나원에서 많이 배웠지만 혼자 나와서 생활하려니 갑자기 큰 두려움이 몰려왔다”고 말했다. “한동안은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버텼다. 그러나 3일째 되는 날, 화장실로 뛰쳐 들어가 엎드려 울었다”고 말했다. 밖으로 나서면 유일한 보금자리인 집으로 오는 길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혼자서 오랜 시간 울고 또 울었다.


■ 신앙 안에서 세상 향한 걸음마 걷다

두려움과 막막함,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 조차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는 ‘혼자’라는 사실이 더 서글펐다. 외로움에 발버둥치던 그에게는 홍보를 목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마저 반가웠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그는, 더 이상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도와줄 사람’이 절실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하나원 천주교 종교실에서 만난 작은형제회 소속 심재현 수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화를 걸어 “수사님, 도와주십시오”라고 어렵게 입을 뗐다. 그 때부터 그의 삶은 다시 아기가 첫 걸음마를 하듯 새로 시작됐다.

“수사님은 저를 서울 수유동에 위치한 한우리 공동체로 이끌었습니다. 혼자라서 두렵고 무서웠던 것을 공동체 안에서 다시 배우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연습했습니다.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던 셈입니다.”

약 7개월 동안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신앙심을 키워나갔다. 마침내 ‘루카’라는 주님이 주신 이름으로 신앙 안에서 새롭게 날 수 있었다. 한우리 공동체 생활은 남한 생활을 위한 새로운 단추역할을 했다. 그는 “천주교와의 만남은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이끌리듯 다가가게 됐다. 그리고 그 이끌림은 공동체 생활까지 이어졌고 이제 하느님은 내게 무엇이든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황씨는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쑥쓰러워하면서도 신앙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마음속 깊은 아픔까지도 아이처럼 내놓을 수 있다며 웃어보였다.

■ 함께 걸어가는 길에 대한 소망

황씨는 어려운 과정들을 딛고 또 다른 목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바로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트리에이치’라는 기업을 통해서다. 트리에이치는 ‘자연과 사람과 열매’라는 뜻으로 서로에 대한 배려를 실천한다면 지구와 사람, 남북도 함께 상생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에코백, 유니폼, 모자, 기념품 종합 컨설팅 등 섬유제품 전문 제작 업체인 트리에이치는 1년6개월 된 신생기업으로 그에게는 특별하고 애틋한 존재다. 황씨는 트리에이치를 개인 이익을 위한 사업체가 아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통일을 위한 작은 씨앗이 되는 것이 목표다. 훗날 남북한 노동자가 함께 어울려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자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섬유 사업을 선택한 이유 역시 훗날 북한 노동자들도 함께 이끌어갈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시작은 쉽지 않았다. 북한이탈주민이라는 편견은 물론이고 사업을 처음 해본 탓에 실수가 터져 나왔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원단 샘플부터 시작해 공장 시스템까지 꼼꼼히 확인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해 실패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온종일 시간을 꼬박 쏟아 나온 결과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자리한 남북 관계 회복과 통일에 대한 염원은 포기하지 않는 원동력이 됐다. 황씨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에 도움을 주는 곳들이 늘어났다. 교회 내 기관을 비롯해 다양한 사업체에서 트리에이치와 함께 걸어나가자고 손을 뻗어왔다. 황씨는 위험부담이 큰 창업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체제를 경험한 젊은이로 남북한을 잇는 연결고리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사업체로 이익을 내면 남북한의 어려운 청년들에게 장학금을 전하고 싶다며 웃어보였다.

막막한 시기를 걸어가는 북한이탈주민들을 향해서도 “힘들 때도 많겠지만 의식하지 않고 하루를 지내다 보면 어느덧 자기 안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며 “대림을 지나 성탄을 맞듯 어느 순간 행복하고 빛나는 순간이 올 것이다”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권세희 기자 se2@catimes.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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