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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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4) 산살바도르대교구 - 진실 규명에 앞장서다

고통스러운 진실을 직시함으로써 화해와 평화의 길 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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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베라 이 다마스 기록보존소에서 한 연구원이 1981년에 벌어진 판도 모소테 언덕 학살 사건 관련 문서를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 한 사람의 기억 속에라도 남아 있는 한,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죽음의 진실, 그 참혹했던 과거사가 밝혀지고, 가해자가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며, 이를 통해 공동체는 ‘기억의 정화’를 거쳐 참된 용서와 화해, 평화의 바다로 나아간다. 또 그 기억은 단순히 기억으로만 그치지 않고 평화를 위한 기도의 연대와 실천으로 이어진다. 성찬례 때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말씀을, 우리가 듣고 기념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듯이.

복자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 대주교를 이은 아르투요 리베라 이 다마스(1923∼1994) 대주교는 그 기억을 정화하고자 자신의 이름을 딴 ‘리베라 이 다마스 기록보존소’를 설립했다.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을 따라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세덕 신부) 방문단이 기록보존소에 들어서자 서고와 그 옆 빈 공간에 각종 문서와 사진, 자료가 빼곡히 쌓여 있고 연구원들이 그 곁에서 복원 작업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산살바도르 학살의 증거 보관하는 기록보존소

연구원들이 내보인 자료 중 가장 눈길이 간 것은 산살바도르 학살의 증거들이다. 1989년 11월 16일 산살바도르대교구 내 예수회 설립 대학인 중앙아메리카대학(UCA, Universidad Centro Americana)에서 평화 협상을 중재하던 이그나시오 에야쿠리아 신부 등 예수회원 6명과 공동체 식복사, 그의 15세 딸 등 8명이 반군으로 위장한 정부군에 살해당한 모습을 찍은 사진과 기록, 유품이다. 엘살바도르 내전의 전환점이 된 사건 기록으로, 정의의 실현을 살아낸 순교자들의 모범을 보여주는 신앙의 증거다. 내전 당시 살해당한 메리놀 수녀회 수녀들에 대한 학살 증거도 있다. 로메로 대주교 살해를 사주한 공군 대위 알바로 라파엘로 사라비아에 대한 재판 당시 기록보존소에서 미국 재판부에 제출했던 증거들, 로메로 대주교가 산살바도르대교구장에 착좌한 1977년 2월부터 순교한 1980년 3월까지 직접 쓴 강론 육필 원고도 기록보존소에 남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1981년 판도 모소테 언덕에서 1000여 명의 어린 아이들과 민간인이 무참히 살해된 사건 당시 생존자가 1991년 교회에만 밝힌 학살의 진실에 대한 증언과 사건 전모 기록, 유해 발굴 네거티브 필름과 사진 등도 남아 있다. 기록보존소는 12년간의 내전 때 교회에 제공된 자료와 기록, 증언을 차곡차곡 보관하며, 최근엔 디지털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페르난도 디아즈(26) 연구원은 “이 자료는 ‘그냥 다 잊고 용서하자’는 정부 입장에 맞서 ‘진실이 밝혀진 다음에야 화해는 가능하다’는 교회 입장을 반영한다”며 “내전의 가장 큰 희생자는 진실이고, 그 진실을 고발하는 것이 기록보존소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방문단을 안내하던 차베스 추기경은 “이 자료들은 고통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기록”이라고 덧붙였다. ‘평화는 진실을 기초로 만들어진다’는 모토로 운영되는 기록보존소는 공동체의 기억의 정화에 없어서는 안 될 사목적 도구인 셈이다.

방문단은 이어 UCA 로메로 대주교 센터를 찾았다. 맨 먼저 들른 곳은 예수회 사제 6명과 민간인 2명 살해 사건 기록과 유물을 전시한 센터 내 순교자기념관이다. 순교자들의 생애에 대한 기록과 초상, 살해 장면을 담은 사진들, 제의와 평상복, 가방이나 신발, 안경 같은 일상 소지품들, 기관총을 난사한 흔적이 남은 주석 성경, 불에 탄 십자가와 성물들, 스페인 교황청립 살라망카대학에서 수여한 살바도르 훈장과 기념 메달 등이 가득했다. 피투성이인 상처의 기억과 진실을 대면해야 하는 건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순교자기념관을 빠져나와 뒷문으로 나오니 옷을 벗긴 채 예수회원들을 끌어내 무릎을 꿇리고 살해했던 장미정원이다. 정원 맞은편에는 순교자 추모비가 세워져 있고 정원 앞에는 순교자 추모 알림판이 줄지어 있다. 안쪽에는 예수회원들이 살았던 사제관, 예수회원들을 학살하는 걸 본 목격자라는 이유로 살해된 식복사 모녀가 살았던 숙소가 있다. 그 앞에 순교자 기념 성당이 세워져 유해를 모셔 놓았는데, 이 성당 벽에는 살해된 예수회원들의 시신 사진을 그림으로 옮겨 십자가의 길 14처가 걸려 있다.

순례 직후 차베스 추기경과 UCA 교수 4명이 함께한 가운데 1시간여에 걸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평화나눔연구소(소장 최진우 교수)와의 간담회가 마련됐다. 대화의 초점은 내전 당시 평화협상 전개 과정과 현 엘살바도르 상황, 피해자 입장에서의 정의와 사면 문제 등에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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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복수, 혼동해선 안 돼

UCA 총장 안드레우 올리바(예수회) 신부는 “정의와 복수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며 “법에 호소하기는 했지만, 예수회원들 살해 사건 책임자인 대령이 30년 형을 언도받았을 때 예수회가 앞장서 사면운동을 벌여 4년으로 감형한 사례는 예수회가 화해를 위한 정의를 기대한 것이지 복수를 위한 판결을 기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했다.



진상 규명이 먼저 그리고 참회

UCA 사회 부총장 오마르 세라노 교수는 “엘살바도르 평화협정 당사자들은 무조건 과거를 잊고 사면한 뒤 새출발하자고 이야기하는 데 이는 불가능하다”며 “이는 내전 당시 희생된 7만 5000여 명에 대한 진상 규명이 없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교회는 대사면에 반대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UCA 정치학 교수 호세 마리아 토헤이라(예수회) 신부는 “내전을 둘러싼 재판에 가보면, 희생자들의 가족은 다들 복수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서 “하지만 그들은 용서하고 화해하고 싶어도 누구와 해야 할지 모르고, 사건 주범이나 진실은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한다”고 반문했다. 이어 “이들이 요구하는 정의는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진상 규명과 가해자의 참회를 통한 용서를 통해 화해와 평화로 가는, 희생자들을 위한 정의”라고 강조했다.

“진실은 정의와 자비의 단짝 친구이며, 이 세 가지는 평화를 건설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을 떠올리며 내려오는 UCA 대학 구내로 열대의 석양이 붉게 깃든다.

글·사진=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엘살바도르 내전

1979년 극우파 쿠데타에 이어 이듬해 로메로 대주교가 암살되면서 엘살바도르는 1980년대 내내 내전에 휩싸였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과 파라분도-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 등 반군 간 내전으로 수십 만 명이 국외로 탈출하고 7만 5000여 명이 사망했다. 통칭 ‘14가문’이라고 불리는 스페인 통치시대 이래의 지배 집단과 이에 맞선 반군과 원주민 학살, 반공 군부에 대한 미국의 지원 등으로 엘살바도르는 굴곡진 시대를 살아야 했다.

교회는 1980년대 초부터 양측에 대화를 촉구했고, 1984년 말부터 5년간 평화협상의 중재자로 활약했다. 교회는 1989년 코스타리카 산호세 대화에서 이후의 모든 과정을 유엔의 손에 맡겼고, 1992년 1월 마침내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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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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