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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은빛 어벤져스’ / 민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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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큰 언니 여든넷, 둘째 언니 여든, 셋째 언니 일흔 여덟, 넷째 언니 일흔여섯, 다섯째 언니 예순아홉, 막내 새댁 마흔. 몇 년 전 우리 구역 소공동체 모임을 할 때의 멤버들이다. 젊은 자매들은 아이 키우랴 맞벌이하랴 못 나오다 보니 결국 큰 언니들만 남은 것이다.

“교리 공부 머 이런 거는 눈도 잘 안 뵈고, 머리에 들어 오도 않으니께. 성모 어머니 기도나 열씨미 혀”라고 하시는 어르신들 뜻에 따라 우리 반모임은 복음을 읽고 나면 “아멘~”하고 묵주기도 5단을 바쳤다.

그런데 한동안은 이것이 말썽이었다. 우리 반 회의록을 보고받은 소공동체 회의에서 지침에 정해진 내용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을 한 것이다. 물론 몇몇이었지만 소공동체 교육을 다녀오신 영향력(?)있는 분들의 의견이었기에 구역장님께 몇 번씩 불려가 얘기를 들어야 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인데…. 하느님이 그렇게 절차나 형식을 따지실 분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맘대로 간소화된 반모임은 본당에서 구역 재정비를 하기까지 5년여를 이어갔다. 어쩔 수 없이 반모임이 해체되던 날, 너무도 정들었던 어르신들과 조촐히 송별회를 했다.

“다른 반모임 가면 젊은 사람들이 우리 말하는 거 좋아하겠나…”하며 서운한 눈물을 찍어내시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본당을 위해서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미사 때 성체 모시러 나가고 들어오는 걸음도 늦어 젊은이들한테 폐만 된다는 어르신들이었기에 어쩌면 반모임을 통해 본당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셨던 건 아닐까 조심스레 헤아려본다.

젊고 활기찬 봉사자들 위주로 돌아가는 본당 안에서 ‘말없이’ 뒷전을 지키고 계시는 어르신들. 하지만 점점 빈자리가 많아지는 성전을 ‘말없이’ 지키는 것도 어르신들이다.

시간이 많아서라고? 아프고 더딘 걸음이 혹여 늦을까 한 시간 전에 집을 나서고, 여의치 않은 무릎으로 앉고 서며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어디 남아도는 시간 때문이겠는가.

늘 내게는 모범이었고 감동이었던 우리 언니님들. 하느님께는 머리 하얀 할머니들이 아닌 꽃같이 어여쁜 딸들이시겠지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특별한 이분들께 오늘은 이름 하나 붙여드리고 싶다. 은빛 어벤져스. 겸손한 기도와 봉헌으로 교회를 지키고 계시니 딱 맞지 않을까.




민진희 (로사·45·수원대리구 당수성령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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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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