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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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29) 하느님 모상을 되찾는 영적 식별의 성교육

달콤한 악마의 유혹, 영적 식별 성교육으로 끊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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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됐지만 내면에는 동물적 속성도 존재한다. 죽음의 문화가 전하는 쾌락만 좇는다면 영혼은 황폐해지고 결국 타락할 수밖에 없다. 유혹이 넘쳐나는 시대에 영적 식별을 통한 성교육은 올바른 윤리적 기준을 세우기 위해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그래픽=문채현



책임 의식이 실종된 사회

여대생이 혼자 아이를 출산한 뒤 유기하고 신생아를 구조했다고 경찰에 신고한 자작극 사건이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여대생은 “부모에게 들킬까 두려웠고, 혼자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 남의 아이를 구한 것처럼 꾸며 양육을 포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남자친구는 임신 사실을 안 후 연락을 끊었고, 여대생은 혼자 고립된 상태였다.

영아 유기 사건이 왜 이 시대에 빈번하게 발생할까? ‘섹스는 게임’이라는 왜곡된 가치관이 소비주의를 타고 사회 전체에 스며들었고, 성교육은 ‘성관계에 따르는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책임교육이 아니라, ‘성관계는 하되 어떻게 하면 임신을 피할 것이냐?’는 피임교육에만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은 남성에게 아빠의 책임을 묻는 법이 없기에 이런 불상사가 폭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성교육의 근원은 인문학

이는 표층적으로는 책임의 성교육과 제도의 부재로 보이지만, 깊게 보면 인문학과 영적 식별 교육 부재의 결과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려주는 문학(文), 역사(史), 철학(哲)으로 대표되는 인문학 교육이 우리 사회에서 제 기능을 했다면, 책임의 가치관을 강조하는 별도의 성교육이 사실은 필요 없다. 인문 고전을 읽으면 인간이 왜 동물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까지 갈 필요 없이 초등학생 때 세계문학과 위인전만 제대로 읽고 감동 받으면,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무의식에 내면화된다. 고전 명작이나 위인전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들은 책을 읽고 감동하고 눈물 흘리는 체험보다 자극적인 영상물을 보고 흥분하고 모방하는 체험을 반복하기에 이전 시대에는 없었던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 동물이 아니라 영적 존재

깊이 있는 성교육을 하려면 인간에 대한 영적 이해가 필요하다. “그에 대해서 자주 그리고 계속해서 숙고하면 할수록, 점점 더 새롭고 점점 더 큰 경탄과 외경으로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 것이 있다. 그것은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 「실천이성비판」의 저자 임마누엘 칸트의 묘비명이다. 칸트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마음속 도덕법칙을 본질이 같은 대상이라 여겼다. 즉, 칸트는 인간에게는 동물적 속성이 있지만, 인간은 본능을 따르는 동물이 아닌 도덕 원칙에 따라 사는 하늘에서 온 영적 존재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칸트의 인간관이며 서양 철학의 중요한 사상이자 그리스도교의 인간 이해다.

영화 ‘검은 사제들’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어떤 싸움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김범신 신부가 악마와 싸우면서 “사령(邪靈)들은 말하라. 왜 여기에 온 것이냐?”고 묻자, 악마는 “우리는 너희가 원숭이라는 것을 증명하러 왔다”고 답한다. 이는 악마의 목표가 인간의 격을 동물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임을 뜻한다.

원숭이는 어떤 존재인가? 원숭이를 잡는 가장 쉬운 방법을 보면 알 수 있다. 원숭이가 지켜보는 곳에서 원숭이 손이 겨우 들어갈 작은 구멍을 내고,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열매를 넣으면, 원숭이가 손을 넣고 먹이를 움켜쥐었다가 손이 빠지지 않아서 낑낑거리다가 결국에는 사람에게 잡힌다. 손을 펴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는데, 사람이 잡으러 오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그 손을 펴지 않기 때문에 허무하게 잡히는 것이다. <관련 영상 QR코드>




하느님의 모상인 고귀한 인간

이것이 동물이다. 욕망에 집착하다가 결국 파멸하는 존재를 보면서 우리는 원숭이를 어리석다고 여기지만, 사실 인간도 원숭이가 잡히는 방식으로 악마에게 잡힌다. 사람이 동물을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듯이, 악마도 우리의 욕망과 내면의 상처를 정교하게 이용해 인간을 농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도 언제나 우리를 절망시키지. 인간들도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그런데 신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어.”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김범신 신부가 최준호 부제에게 한 말이다. 악마는 최 부제의 트라우마(여동생이 개에 물려 죽는 현장에서 도망친 사건)를 이용해 구마 현장에서 도망치도록 반응하게 했다. 그걸 깨우치고 다시 돌아온 최 부제에게 김 신부는 “악마의 유일한 목표가 인간을 동물화하고 자극하면서, 인간이 생각 없이 반응하게 하는 것”임을 알려주고, 하느님이 인간을 당신 모상으로 창조하셨기(창세 1,26) 때문에 그 반사 행동에서 벗어나서 식별하고 행동해야 함을 조언해준 것이다. 최 부제는 웃으면서 “예”하고 대답한 뒤 다시 싸우러 간다.

이 시대는 침투력 강한 영상매체가 강렬한 성적 자극을 주입하면서 욕망이 올라오는 대로, 생각은 하지 말고 성행동을 하는 것이 자유고 권리라고 속삭인다. ‘성관계는 개인의 자유고, 피임으로 임신만 안 하면 되고, 원치 않는 임신이면 낙태하면 된다’는 생각이 바로 인간을 동물화하는 죽음의 문화이며 악마가 원하는 세상이다. 대중가요 ‘빨개요’에서는 ‘여자는 남자가 먹는 맛있는 음식’으로 표현했으니, 이는 사람을 동물보다 못한 물건으로 격하한 것이다.<본지 1453호 2월 25일자 연재물 12회 참조> 이것이 바로 문화 속에 숨어서 활동하는 살아있는 악(惡)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인간의 존엄성과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 본질을 회복시켜 주는 영적 식별이 성교육과 결합하여야 한다.



성교육은 영적 싸움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년들에게 “온라인 시대를 사는 청년들, 석기 시대로 돌아가라. 오늘날은 시대가 바뀌어 영상의 시대가 되었지만, 책의 시대를 지배하던 기준을 따라 자신에게 유익한 것만 택해야 한다”고 했다. 영혼을 황폐하게 하는 영상물이 급속도로 확산하기 때문에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식별해야 함을 역설한 것인데, 이것이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이다.

젊은 세대의 컴퓨터 중독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컴퓨터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면, 컴퓨터의 노예로서 자유를 잃게 되고, 컴퓨터에서 저속한 사이트를 찾고 있다면 존엄성을 잃게 된다”고도 했다. 자유와 존엄성을 잃은 인간 존재, 그것이 바로 동물이다. 중독은 악마가 인간을 반사작용만 하는 동물로 만들어서 결국에는 파멸로 끌고 가는 강력한 힘이다. 이 힘이 이 시대의 지배적 매체인 TV, 인터넷, 스마트폰 안에 있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가 원치 않아도 악에 말려들어 간다. 유혹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생명을 살리는 진정한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영적 식별과 영적 싸움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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