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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생명윤리의 대가’ 구인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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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의 대가’로 불리는 구인회(마리아 요셉·65) 전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교수가 지난 8월 31일자로 정년퇴임했다. 독일 괴팅겐대학교에서 철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구 교수는 1998년 귀국 후 20년간 가톨릭 생명윤리의 토대를 닦고 생명존중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해왔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과학교실에 소속돼 생명윤리교육을 담당했고, 2007년 9월 생명윤리학 전문가 양성을 위해 아시아 최초로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이 설립된 이후 생명윤리학 책임교수로 10년 넘게 재직했다. 구인회 교수를 만나 생명문화 정착을 위해 헌신해온 그간의 노력들을 되짚어보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낙태죄 폐지 주장 등 생명윤리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대담: 장병일 편집국장
날짜: 2018년 9월 6일
장소: 서울 서초구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탄생에서 죽음까지 ‘생명윤리’는 삶의 모든 여정과 관련돼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생명윤리’가 생소한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생명윤리(학)는 무엇이고, 생명윤리가 왜 중요한지부터 듣고 싶습니다.

▲구인회 교수(이하 구 교수): 생명윤리(학)는 생명과 관련해 발생하는 모든 윤리문제를 다룹니다. 인간의 생명·건강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생명 의료윤리뿐만 아니라 다른 범위까지 모두 연관됩니다. 동물, 생태환경 관련 윤리문제까지 포함하는 상당히 넓은 다학제적(多學際的·multidisciplinary) 응용윤리학입니다.

-장 국장: 생명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의사 결정이라는 윤리적 판단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구 교수: 그렇습니다. 유전자 조작부터 배아 연구, 생명복제, 장기이식, 낙태, 인공 수정, 대리모, 안락사, 뇌사판정 등 생명과학이 발전하면서 발생한 문제들도 그렇고 동물 복지, 생태환경윤리 등 생명에 대한 모든 윤리문제를 다룹니다. 생명을 어디까지 인위적으로 조작해도 좋을지, 어느 시점부터 언제까지 인간인지, 연명의료는 언제부터 중단해도 좋은지 등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생명의 존엄성과 권리는 누구도 비켜 갈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생명윤리(학)의 중요성은 자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 국장: 그동안 생명윤리 분야에서 가장 관심을 두셨던 주제는 무엇입니까.

▲구 교수: 초기인간 생명 보호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배아와 태아 관련 문제, 즉 배아 연구와 낙태 문제입니다. 죽음에 관련된 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장 국장: 학자로, 교육자로, 활동가로 다양한 정책들을 제안해도 관계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실제 활동하시면서 겪으셨을 것 같습니다. 생명 문화를 건설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구 교수: 생명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보편적 생명 가치를 전파하고 수호하는 데에는 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우리 사회에선 생명 관련 문제까지도 경제성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보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보호하고 존엄을 유지하는 데 드는 개인·사회적 비용보다 이를 통해 얻는 이익이나 성과가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엔 늘 반대나 비난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현실은 모르고 원칙만 주장한다는 비난도 있습니다.

-장 국장: 사회적으로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겠습니다.

▲구 교수: 그랬습니다. 생명존중은 어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입니다. 하지만 배아나 난자를 조작하는 일부 연구자들은 본인들의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위해 언론을 이용한다거나 로비를 통해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황우석 사태 때나 최근 낙태죄 폐지 찬반 논란에서도 왜곡된 보도로 여론을 조작하려는 세력들은 건전한 토론의 장을 원천 봉쇄하기도 합니다.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협박하거나 위협하고 개인의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장 국장: 교수님께서도 지난번 심하게 마음고생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 교수: 네. 저는 올해 5월 대학교수 96명을 대표해 헌법재판소에 낙태죄 폐지 반대 성명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때 언론인터뷰를 했는데 제 발언 취지와는 상관없이 일부만을 잘라 선정적인 제목을 뽑거나, 제가 하지 않은 말도 제가 한 것처럼 기사에 적혀있었습니다. 예컨대 제가 외국의 경우 낙태를 허용한다 해도 보통 임신 12주 이전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했더니 기자가 “12주면 임신 중기 이상이라고 할 수 있고, 중기 이상이면 조산해도 아기를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일부 해외국가에서 낙태허용 기준이 12주인 거죠?”라고 하곤, 기사엔 마치 제가 그렇게 말한 것처럼 실었습니다. 12주 된 아이가 조산되는 경우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래서 고쳐달라고 했지만 수정해주지도 않았습니다. 계획된 질문, 왜곡된 보도에 마음고생이 정말 심했고, 이런 식이면 앞으로 그 누구도 생명윤리나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의견을 밝히기 힘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 국장: 지금도 상처가 많이 남아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낙태죄 폐지 논란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헌법재판소가 2012년 낙태죄는 합헌, 그러니까 낙태는 죄이며 낙태한 사람은 처벌받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도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낙태죄와 관련해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해주십시오.

▲구 교수: 무고한 태아가 희생되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한국 형법 제269조 1항에는 ‘부녀(여성)가 약물 등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습니다. 형법 제270조 1항에는 의사, 한의사, 조산사 등 의료인이 낙태에 관여한 때에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고, 의료법에 따르면 불법 임신중절 수술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는 3년간 의사 면허도 취소됩니다.
하지만 모자보건법에선 태아가 아닌 부모의 문제 때문에 낙태를 일부 허용하고 있습니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는 산모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 지속이 산모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임신 24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렇게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 허용하는 낙태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이 다수헌법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장 국장: 이미 모자보건법에서 그렇게 광범위하게 낙태를 허용하고 있음에도, 허용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거나 낙태죄를 아예 없애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 교수: 사회·경제적인 사유나 원치 않은 임신이라는 게 주된 이유일 겁니다. 하지만 그런 사유까지 고려해 낙태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과연 옳은 걸까요.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들이 왜 그런 주장을 할 수밖에 없는지 정확한 실태조사를 하고, 그에 따른 제도적 보완이나 수정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내 삶은 내가 결정하고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이를 위해 무방비 상태의 무고한 태아를 희생시켜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비민주적인 발상입니까.

-장 국장: 그런데도 여론에 따른 낙태죄 폐지 논의가 계속 이뤄지고 있습니다.

▲구 교수: 낙태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해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건 아닙니다. 생명은 다수결로 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방어능력이 없고 스스로 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태아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희생시키는 건 옳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태아와 여성은 절대 대립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임신한 여성은 엄연히 태아의 어머니이고, 아기는 생존을 위해 어머니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여성의 존엄과 인권이 낙태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근본적으로는 국가가 다양한 복지 정책을 펼쳐 여성에게 출산과 양육 부담을 덜어주고, 잉태된 아이가 죽음의 위기에 내몰리지 않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장 국장: 인간 생명과 관련해 다른 나라 법은 어떻습니까. 현재 국내법이 많이 너그러운 편인지요.

▲구 교수: 독일은 배아의 생명권을 분명히 인정하고 복제 연구 등을 가장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독일의 배아보호법은 인간의 생명이 정자와 난자의 수정으로 성립한다고 보기 때문에 잔여 배아의 파괴적 연구는 물론 연구용 배아의 생성도 금지합니다. 또 독일에서는 태아가 독립적 생명으로, 헌법 보호 하에 있으며 임신 전 기간 동안 태아의 생명이 임부의 자기 결정권보다 우선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다만 임신의 지속이 산모에게 합리적인 희생의 범위를 넘어서는 너무 심각하고 막대한 부담을 가져오는 경우는 예외적 상황으로 낙태가 일부 허용되기도 합니다.

-장 국장: 낙태와 관련해 남성은 책임에서 제외되고 여성과 의료진만 처벌받는 현행법에 대해서도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구 교수: 얼마나 여건이 어려우면 한 여성이 낙태를 고려할 수밖에 없겠는가를 생각하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누구든 안심하고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도록 사회가 제도적으로 지지해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선 여성이 고민을 상담하고 낙태를 막고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인도해 줄 상담 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낙태를 고민하는 임부들은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미혼모의 아이 아빠인 비 양육부의 양육책임도 의무화하고 국가의 양육비 지원도 보장해야 합니다.

-장 국장: 결국 교육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구 교수: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성장하고 공동체 일원이 됩니다. 개인이 의지를 표현하고 실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안에서의 책임 있는 참여도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 주안을 두고 공동체 속에서 책임 있게 행동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생명윤리 교육을 해야 합니다.

-장 국장: 교수님께선 바로 그런 교육을 위해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에 몸담으셨죠.

▲구 교수: 네, 그렇습니다. 이 시대에는 생명 존엄성과 삶의 의미, 가치에 대한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은 그 고민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설립됐습니다. 올바른 생명윤리 정착과 생명문화 건설을 위해 투신할 전문 인력들도 양성해왔습니다. 생명대학원은 생명문화를 확산하고 실현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장 국장: 평소 후학들에게 강조하셨던 점이나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십니까.

▲구 교수: 생명윤리 관련 문제에 대한 주장은 논리적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같은 상황이나 사례들에 다른 잣대를 적용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장 국장: 생명존중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신자들이 시급히 실천할 점들은 무엇입니까.

▲구 교수: 교우 개개인이 스스로 생명존중과 생명수호의 길을 가는 모범을 보여야겠지요.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선 생명존중 문화 전파에 많은 장애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생명운동에 정면으로 맞서는 이들에게 굴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설득하고 인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고 의연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생명운동에는 연대가 필요합니다. 약자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하고 지지해주며 기꺼이 도울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어떤 경우에도 낙태는 옳지 않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낙태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을 단죄해야 한다고 교회가 가르치는 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장 국장: 1998년 귀국하시면서부터 생명윤리에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20년간 한 길만 걸어오셨습니다. 다른 걸 해볼까 하는 후회는 없었는지요.

▲구 교수: 없었습니다. 생명윤리의 초창기부터 꾸준히 해왔기에 지금 교회 안팎에서 생명윤리 분야가 많이 활성화됐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윤리 분야의 토대를 다진 게 큰 보람입니다.

-장 국장: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구 교수: 「노년의 삶과 생명윤리」 저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노인 자살·치매 등 노년의 삶에서 드러나는 각종 생명윤리 문제들을 다룬 책입니다. 이걸 마치는 게 당장의 목표입니다. 현재 퇴임 상태라 공식적으로는 더 이상 지도교수 역할을 할 수는 없지만, 박사 논문 과정에 있는 제자들이 논문을 다 마무리할 때까지 시간을 내어 도와주려고 합니다.



■ 구인회 교수는…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연구소장, 한국생명윤리학회장, 서울대교구 생명윤리자문단장,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생명윤리위원, 보건복지부 배아연구계획심의자문위원단 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학술위원장, 보건복지부 장기 등 이식윤리위원회 위원, 질병관리본부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의 살아있는 자 간 장기이식대상자 선정승인자문위원회 위원, 서울대학병원 의사직업윤리위원회 위원, 서울대학교 생명윤리위원회 위원, 서강대학교 생명윤리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생명윤리, 무엇이 쟁점인가」, 「생명윤리의 철학」, 「죽음에 관한 철학적 고찰」, 「죽음과 관련된 생명윤리적 문제들」을 펴냈다.



정리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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