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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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 그들에게 임하소서] 3. 체념을 받아들인 사람들

좌절과 체념으로 축 늘어진 이웃들의 어깨를 보듬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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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형준씨가 카페 테라스 정리를 마치고 다시 들어가고 있다.




체념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좌절이 반복되면 ‘희망’은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체념’이 채운다. 무심코 던진 “노력해봤느냐”는 말에 체념의 골이 깊어진다.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이 낳은 가난은 약자의 목을 소리 없이 죄어오는 올무 같다. 젊은 세대 역시 좁은 취업의 문과 법의 그물망을 피해 노동 착취에 고개 숙인다. 체념하고 좌절하는 이들을 위해 같이 울어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있는가. 대림 3주일은 자선주일이다.



내일이 없는 사람들

새벽 5시 48분 서울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최빈첸시오(50)씨가 서울에 한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가기 위해 전철에 몸을 싣는다. 그는 “노동판을 전전하다 IMF쯤에 술에 빠져 10년간 노숙을 했다”며 “추운 겨울에 동상에 걸려 다리를 절단할 뻔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의 삶은 시작부터 ‘흙수저’였다. 아버지는 최씨가 태어나며 세상을 등졌고 큰아버지 밑에서 호적도 올리지 못했다. 중학교 1년을 중퇴하고 배우기 시작한 형틀 목수 일로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도 애정 어린 잔소리도 들은 적이 없다. 슬플 때 한 잔, 화나서 또 한 잔 술을 마셨고 술독에 빠진 그를 잡아줄 이도 없었다.

거리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던 그에게 가톨릭 복지시설에 몸담은 선교사가 다가왔다. 사람을 믿지 않는 최씨와 선교사의 밀어내고 다가오는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결국은 선교사가 이겼다. 최씨는 “누군가에게 의지한 적 없지만, 선교사는 내 삶의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이라며 “자다가도 술 소리에 깨는 내가 절주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고 말했다.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 시설에서 세례를 받았던 최씨는 신앙생활도 다시 시작했다. 사람이 적은 평일 새벽 미사에 가서 한 주간의 삶을 돌아보고 술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 기도한다. 길벗사랑공동체 봉사자로 일주일에 한 번 노숙인을 찾아 따뜻한 차와 간식을 건네는 일도 하고 있다.

하지만 최씨의 경우처럼 누군가 지속적 관심을 주지 않는 한 노숙인의 삶은 변하지 않는다. 쉬는 날 서울역 광장을 가끔 오간다는 최씨는 “노숙인에게 먹을 거 입을 거 챙겨주는 곳도 있고 아프면 약도 주고 입원도 시켜준다”며 “시에서 일자리를 구해주기도 하지만 삶의 의지가 꺾인 이들은 대부분 죽어서야 노숙생활을 끝마친다”고 했다.

그의 같이 노숙했던 10명 중 8명이 세상을 떠났다. 보건복지부 노숙인 실태조사(2016)에 따르면 거리와 시설 등의 노숙인은 1만 1300여 명에 이른다. 개인적 부적응과 경제적 결핍 등 노숙을 시작한 이유는 달라도 그들의 삶의 종착역은 같을 확률이 높다. 노숙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지금은 노동일 잘한다는 칭찬도 받아 좋지만, 내일이 있는 삶을 생각하기 쉽지 않다.

지하철이 상일동역 종점에 멈추고 최씨와 출구로 나섰다. 짧은 인사를 마친 최씨가 높은 담장 안에 있는 공사장 안으로 들어간다. 담장 너머에는 사회의 도움이, 이웃의 따뜻한 정에 굶주린 ‘또 다른 최씨’들이 있을지 모른다. 체념했기에 도와 달라 손 내밀지도 못하고 다가오는 이들을 밀어낼 그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최씨와 세상을 가른 공사장의 담이 끝없이 높아만 보인다.



취업준비생은 두 번 운다

야간 카페 아르바이트생 안형준(가명, 28)씨는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집안이 경제적으로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넉넉하지도 않았다. 대학 입학 후부터는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몰두했다. 그런 안씨에게 야간 아르바이트는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시급은 높았지만, 손님들이 무심코 던지는 반말과 취객의 폭언은 안씨에게 큰 상처가 됐다. 편의점 앞에서 칼부림이 났을 때는 ‘목숨도 위험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TV PD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참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

취업의 문은 좁았다. 안씨는 나름 명문이라는 불리는 대학을 졸업했고 여러 회사에서 인턴 경험도 쌓았지만, 대학 졸업 1년이 지난 지금도 야간 아르바이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닥치는 대로 입사원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처음 탈락했을 때는 실망감도 들었지만 거듭된 취업 탈락 소식에도 마음은 무뎌져 갔다. 운이 좋지 않았다며 애써 자신을 위로하고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이 20를 넘나드는 시대, 취업으로 시름겨워하는 건 안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취업 준비생인 조윤영(가명, 26)씨는 최근 영어 학원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불쾌한 일을 겪었다. 면접장에 들어가자마자 면접관에게 대뜸 핀잔을 들었다. 대기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원장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처음 온 학원의 원장 얼굴을 조씨가 알 수도 없었음에도 학원 측은 막무가내였다. 억울했지만 그 자리에서는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면접에서 탈락했다.

취업 문턱에서 번번이 ‘탈락했다’는 문자에 자책을 되풀이됐다. “학벌이 더 좋았으면, 면접 때 조금만 더 잘 말했으면….” 어떨 때는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으면” 하고 부모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그런 조씨를 두 번 울리는 일이 얼마 전 벌어졌다. 일하던 카페 사장이 주 4회 출근하는 조씨에게 주 2회 출근을 요구했다. ‘알바 쪼개기’를 위해서다. 노동법상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사용자는 주휴수당을 지급하고 4대 보험도 가입해야 한다. 이를 피하고자 하는 편법에 조씨의 임금은 반 토막 났다. 결국, 다른 일을 찾아보기로 했지만 다른 곳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조씨는 “아직 젊기에 좌절할 수 없다”며 “처우가 좋은 영어 학원 아르바이트 일이라도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라며 한숨 쉬었다.

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자료에는 안씨와 조씨처럼 취업 관련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은 105만 명에 이르며 주당 17시간 미만 초단기 근로자는 17만 명에 이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1월 18일 제2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강론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울음은 매일 커지고 있지만 부유한 사람들이 만드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그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그들의 울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강조했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이 만든 가난과 체념의 고리를 끊기란 쉽지 않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교황이 지적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더 나아가 ‘고개 숙인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행동하는 신앙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울어주기 위한 첫걸음이다.

백영민·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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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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