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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사연 공모전 수상작] 따뜻하고 겸손하신 추기경님을 기억하며

이승준 신부(수원교구 사회복음화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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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제 인생에 큰 울림을 주신 추기경님과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1996년 여름, 갓 신학교에 입학하고 맞이한 첫 방학. 본당 여름 신앙학교로 도보 성지순례가 기획되어 있었고, 회의 중에 마지막 날 저녁 도보순례 기간 중 찍은 영상과 함께 유명하신 분의 격려 말씀을 담아 같이 보여주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김수환 추기경님의 이름이 올라왔고 저는 집에 캠코더가 있다는 이유로 주일학교 교사 한 명과 함께 그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무슨 패기였는지 저희는 무턱대고 명동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당당히 주교관으로 가서 제 신원과 방문 목적을 밝히고 추기경님을 뵈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잠시 후 외국 출장이 있으시지만 시간을 내서 저희를 만나주시겠다고 전해주셨습니다. 얼마를 기다리고 직접 뵌 추기경님께서는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저희를 너무도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도보 성지순례에 함께하는 학생들과 준비하는 이들에 대한 격려, 그리고 저희들의 질문에 너무도 정성을 다해 답해주셨습니다. 그처럼 귀한 시간을 내어 주시고 나서는 추기경 문장이 새겨진 묵주까지 꼭 쥐어서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제로 살면서 보니 그때 했던 일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단지 신학생이고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해 찾아왔다고 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면 저는 과연 응해줬을까요? 아마 직원에게 적당히 돌려보내라고 했을 겁니다. 추기경님께서 제게 직접 보여주신 이 모습은 그 어떤 겸손과 공감의 가르침보다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사제로 살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하고 이해하기보다 사무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많았습니다. 때로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결정이라는 이유로 연민과 이해를 쉽게 포기하려 했던 저의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지금은 애석하게도 그때 찍은 영상이 없어졌지만 추기경님께서 주신 작은 묵주,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따뜻함이 제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구석에 놓아두어서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지만 다시 털어 바라보니 귀한 보물이었던 추기경님과의 추억.

추기경님의 그 마음을 그대로 살아가지는 못하더라도 그때 제게 보여주신 그 사랑과 겸손하심을 마음 한편에 간직하며 살아가도록 힘쓰겠습니다.

추기경님, 아름다운 추억에 동행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도 그때 보여주신 따뜻한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바라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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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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