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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 (15) 박세원 토마스의 ‘봉성체’, ‘산촌의 성당’(1954)

첩첩산중 성당, 박해시기 신앙 선조 삶과 영성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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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원, ‘산촌의 성당’.



1954년 성미술 전람회에 한국화 중 인물화 외에 총 3점의 산수 풍경화가 출품되었다. 성미술 전람회에 출품된 박세원, 노수현, 배렴 화백의 산수화는 종교적 주제와 연관된 몇 안 되는 산수화의 드문 사례일 것이다.

이번 글에서 소개하는 박세원(朴世元, 1922~1999) 화백은 인물 중심의 한국화 작품 ‘봉성체’(奉聖體)와 산수화 ‘산촌의 성당’ 총 두 점을 출품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박세원 화백은 2001년 제6회 가톨릭 미술상 특별상을 받은 바 있으며 세례명은 토마스이다.

박세원은 평안남도에서 출생해 195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5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동 대학 교수로 임용됐다. 1958년 벨기에 브뤼셀 국제전에 초대되어 출품한 것을 시작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설악만추’, ‘설악청하’ 등이 있다.

박 화백의 여러 작품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세필 묘사와 정서적으로 정제되고 섬세한 색채감각의 도입은 산수화의 복고적인 취향을 드러내는 동시에 작가만의 현대적 감성을 기초로 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오늘 소개하는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 ‘산촌의 성당’은 이와 같은 작가의 화풍을 잘 보여준다.



산수화에 표현된 자연의 숭고미 묵상

‘산촌의 성당’은 1954년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에 맞게 종교 주제의 작품으로 제시하고자 했지만, 그에 맞춰 새롭게 제작한 작품이기보다는 박 화백의 화풍을 담은 산수화에 성당의 종탑을 하나 그려 넣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사실 이 성당의 종탑을 찾기 위해서는 작품 이미지를 크게 확대해 아주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했다.

작품 속에 능선을 따라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은 원경, 중경, 근경에 세밀하게 묘사되었는데, 중경의 나무 숲 사이로 뾰족하게 솟은 성당 종탑 십자가가 이 작품에 종교적 성격을 부여해주는 유일한 모티프이다. 사실 아주 유심히 보지 않으면 찾아내기 힘들 만큼 산수에 파묻힌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렇게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첩첩산중의 성당을 찾다 보니 문득 박해시대 우리 신앙인들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요즘 연구를 위해 배론성지를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산촌의 성당’은 그저 산속에 있는 성당의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광활한 자연 앞에 겸허해지는 마음 그리고 우리 초기 신앙인들의 삶과 영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박 화백의 ‘산촌의 성당’은 산수화에 표현된 자연의 숭고미를 종교적 차원에서 묵상하게 하는 작품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 박세원 화백의 ‘봉성체’는 생략적으로 표현된 배경에 거동이 불편해 젊은 여인의 부축을 받고 있는 노인과 그에게 성체를 영하여 주는 신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목구비·안면 표정 등 세필로 섬세하게 묘사

박세원의 또 다른 출품작 ‘봉성체’는 ‘산촌의 성당’과 비교해보았을 때 그리스도교의 주제가 더욱 강조된 인물화이다. 흑백 이미지로 정확한 채색 상태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세필로 이루어진 인물의 이목구비와 안면 표정의 묘사, 옷감의 질감, 영대의 표현 등에서 박 화백의 섬세한 화풍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봉성체는 병자이거나 미사에 참여하여 성체를 영할 수 없는 처지의 신자에게 사제가 성체를 모셔가 영하여 주는 것을 뜻한다.

‘봉성체’는 생략적으로 표현된 배경에 거동이 불편해 젊은 여인의 부축을 받고 있는 노인과 그에게 성체를 영하여 주는 신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작품 오른편에는 검은 수단과 중백의 차림에 영대를 한 백발의 노신부가 성합에서 성체를 꺼내 맞은편 노인에게 건네고 있다.

기력이 없는지 바닥에 주저앉은 노인은 두 손을 꼭 모아 쥐고 고개를 들어 입을 벌려 성체를 받아 모시려 하고 있다. 얼굴에 가득한 주름과 헐벗은 발이 이 여인의 녹록지 않은 삶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노인을 부축하여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돕고 있는 댕기 머리의 젊은 처녀는 표정과 자태가 온화하고 자애롭다. 바닥에 놓인 성경과 묵주는 하느님 말씀과 기도를 상징하며 이 작품의 주제를 더 명확히 해주고 있다.

이렇게 박세원 화백의 ‘산촌의 성당’과 ‘봉성체’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난 기분이다. 문득 작품 속에서 성당을 찾아 산길을 헤매고 있는 나, 그리고 오래전 교우들과 그들의 신앙을 마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 ▲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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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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