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분단 독일, 교회의 지속적 교류·화해가 ‘통일의 힘’ 됐다

독일 교회가 걸어온 화해와 평화의 길 / 요제프 클레멘스 주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탈북 청년들과 남한 청년들이 팀을 이룬 ‘위드유’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브란덴부르크 문 앞 광장에서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홀로아리랑’ 등을 노래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 전 교황청 평신도평의회 부의장 요제프 클레멘스 주교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지 올해로 30년. 1989년 11월 9일, 동ㆍ서독을 45년간 갈라놓던 철의 장막이 무너지던 그 날에 브란덴부르크 문 광장에서 불리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의 감격을 어찌 잊을까?

5월 19일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 열린 2019 한반도 평화나눔포럼에 함께한 전 교황청 평신도평의회 부의장 요제프 클레멘스 주교는 ‘독일 교회가 걸어온 화해와 평화의 길’을 주제로 발표하고, 교회의 예언자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 주제 발표와 인터뷰를 통해 독일 통일 과정에서 교회가 한 역할을 살핀다.





“화해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화해로 인도해야만 ‘화해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요제프 클레멘스 주교는 화해에서 교회의 길을 찾았다. “교회는 화해를 선포하고 세상에서 화해의 성사가 되기 위한 사명을 받았다”며 분열과 대결의 다양한 양상 앞에서 교회에 주어진 예언자 역할을 주문했다.

통일에 대한 독일 교회의 입장은 ‘분단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우리 교회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우선 국가의 분단 상황을 ‘교회 분단’으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동ㆍ서독 교회 간 접촉과 교류를 시도했다. 서독 교회는 교계제도와 보편 교회라는 원칙에 따라 교황청에, 또는 교황청 관할권에 중심을 두면서 때에 따라서는 교황청을 통해, 때로는 서독 교회가 직접 동독 교회와 접촉하거나 교류, 지원을 추진했고 두 교회의 일치를 가시화하려 했다.

접촉 형태는 다양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 이전에는 사제나 부제들이 동독 교회로 이적하는 사례도 있었다. 독일 남부 베스트팔렌 지겐의 성 요셉 본당 브루노 노헤(1929∼2012) 신부는 1956년 5월 10일 사제품을 받자마자 교구의 다른 부제 5명과 함께 동독의 마그데부르크 주교 관할권으로 이적, 통일 이후까지 48년간 사목했다. 당시 파더보른대교구에선 일부 새 사제들을 일정 기간 마그데부르크 주교 관할권 구역으로 발령내는 것이 전통이 되기도 했다.

서독 보훔대교구 출신의 국제적 성서학자 하인츠 쉬르만(1913∼1999) 박사 또한 1953년 동독으로 건너가 에르푸르트 철학신학연구소에서 성서주석학 교수를 살며 공산 독일의 미래 사제들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독일의 분단 교구 중 하나였던 파더보른대교구 로렌츠 예거(1982∼1975) 추기경과 요한네스 요아킨 데겐하르트(1926∼2000) 추기경도 동독에 있던 자신의 사목 관할 구역을 정기적으로 사목 방문하면서 교구 분열을 막고 일치를 실천하고자 경제적 도움과 함께 지원 활동을 계속했다. 이 같은 지원을 통해 마그데부르크 주교 관할권은 1994년 4월에 드디어 교구장 주교가 있는 독립 교구가 됐다.

분단 교구인 독일의 다른 네 교구, 베를린ㆍ풀다ㆍ뷔르츠부르크ㆍ오스나브뤼크교구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서독 교회의 지원은 다른 분야 지원도 많았지만, 특히 의료 분야에 집중됐다. 서독의 발전된 의료기기와 기술에 대한 동독의 수요가 컸기 때문이다.

통일 이후 독일 교회는 ‘무신론’ 체제 속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새롭게 하느님을 소개하고 선포하며, 옛 동독 지역에 새로 설립된 수많은 교구를 지원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클레멘스 주교는 프랑스, 폴란드 교회와의 화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파데르본대교구는 르망교구와 836년에 맺어 1200년 가까운 전통을 자랑하는 ‘사랑의 영원한 형제애’라는 자매결연을 되살려내 수많은 프로젝트와 제안을 내놓았다. 이를 기반으로 한 활동은 두 나라가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는 데 이바지했다. 또한, ‘용서하고 용서를 청하는’ 폴란드 주교회의의 서한을 접한 독일 가톨릭교회는 그 손을 잡고 1965년 11월 폴란드 복음화 1000년 기념행사에 함께하며 회개를 통한 용서로 화해의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분단 교회는 화해의 소명을 살고 적대감 버려야”

“독일과 한반도의 상황은 달라도 너무 달라요. 하지만 교회는 ‘화해의 위대한 성사’이기에, 분단 교회라면 ‘화해의 소명’을 살아야 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비서로만 19년을 산 요제프 클레멘스(Josef Clemens, 72) 주교는 독일의 분단 교구 중 하나였던 파더보른대교구 출신이다. 그런 만큼 분단의 아픔과 눈물, 기도와 통찰을 공유한다.

“70여 년간 갈라진 민족의 실상을 듣고 보니, 독일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독일은 한 번도 동ㆍ서독 주민 간 접촉이 금지된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동독 주민들도 북한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국경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연로한 동독 주민들의 서독 친지 방문은 허용됐습니다. 동독 교회 또한 정치 활동은 극도로 자제했지만, 동ㆍ서독 교회 간 교류는 끊임없이 계속됐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우리 교회보다 훨씬 상황이 좋지 않더군요. 그렇지만 분단 교회의 소명은 결국 화해일 수밖에 없습니다.”

클레멘스 주교는 이어 분단된 교회 내 이념 갈등을 묻는 말에 “사회의 분열은 교회 안에도 들어올 수 있으며, 이는 교리, 사목 분야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선택에서 확인된다”면서도 “교회는 복음에 끊임없이 자신을 비춰봄으로써 복음화돼야 하고, 자신부터 화해에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증오나 적대적 사고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일 수 없기에 그리스도인이라면, 마음에 분노나 증오, 적대감이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레멘스 주교는 또 “동독 정부가 청소년들은 물론 신자들 간 교류를 그리 탐탁해 하지 않았기에 교류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동ㆍ서독 교회 간 교류는 끊이지 않았다”면서 “그런 가운데서도 서독 교회는 한 번도 일치라는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않았고, 동독 교회 또한 자신이 보편 교회의 일원이라는 점을 늘 기억하면서 서독 교회와 일치했다”고 회고했다.

독일 통일 30주년을 맞는 소회에 대한 질문에 “독일 교회는 통일 이후 분단 시대를 살아내며 겪어야 했던 증오와 폭력의 역사를 사랑의 문명으로 바꿔나가는 데 사목적 관심과 배려를 기울였다”고 전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5-2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6

이사 43장 1절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