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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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은 곧 신앙의 근본… 늘 기쁘고 멋지게 사세요”

주교 수품 50주년 맞은 초대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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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교구 초대교구장으로, 아흔이 넘은 지금도 활발히 주님 사랑을 전하고 있는 두봉 주교(오른쪽)가 현 교구장인 권혁주 주교와 손을 맞잡고 있다. 이정훈 기자

▲ 1969년 안동교구 설정과 함께 거행한 교구장 착좌식에서 두봉 주교(맨 오른쪽). 두봉 주교 왼쪽이 김수환 추기경. 안동교구 제공

▲ 두봉 주교가 1989년 교구 설정 20주년 기념 성체대회에서 신자들과 춤추며 하나된 모습으로 환히 웃고 있다. 안동교구 제공

▲ 두봉 주교가 2012년 만해대상 실천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상을 받은 후 스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지난 5월 20일에는 ‘올해의 이민자상’을 수상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여러분, 환영합니다!”

160㎝ 작은 키의 노(老) 주교는 무척 정정하고 꼿꼿했다. 지난해 구순을 넘긴 주교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특유의 유머와 소탈한 활력이 넘쳤다.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격의 없이 다가가 또렷한 눈빛으로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이야기할 때엔 평소 유쾌하게 강연할 때와 같은 모습으로 양팔을 쭉쭉 펼치며 생동감을 담았다. 하회탈을 닮은 미소는 덤이다.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세월 동안 교구 성장과 발전으로 기반을 다지고, 지금까지도 많은 이에게 주님 사랑을 전하고 있는 ‘작은 거인’ 두봉(Rene Dupont, 90) 주교다. 두봉 주교는 올해 주교 수품 50주년을 맞았다. 1969년 설정된 안동교구와 함께 맞은 금경축이다.

5월 23일 안동교구청에서 만난 두봉 주교는 “주님께서 저라는 부족한 사람을 통해 묘하게도 지금까지 여러 가지 큰일을 하도록 도와주셨다”며 “주님께 감사 또 감사드릴 따름”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농민 사목의 대부

“주교님, 여전히 텃밭 가꾸고 계십니까?”

“네, 여전히 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주 작죠. 하하.”

두봉 주교는 교구장 은퇴 후 경북 의성군 봉양문화마을에 살고 있다. 주교관을 방문하는 이들은 가지와 고추를 일구는 밀짚모자를 쓴 아흔의 주교를 만날 수 있다. 두봉 주교는 “직업 중에 가장 우선하는 이들이 농민”이라며 “우리 어머니도 농사를 지어 채소를 내다 파셨다. 나도 농민의 후손”이라고 했다.

두봉 주교에게 따라붙는 수식어 중 하나가 ‘농민사목의 대부’다. 두봉 주교는 농촌을 기반으로 하는 안동교구 농민들을 위해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를 설립하고 사목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동해안에 인접한 교구 관할 지역 어민들을 위해 1978년 배를 건조해 선물하기도 했다.

두봉 주교는 1979년 정부가 농민을 납치해 탄압했던 일명 ‘오원춘 사건’을 계기로 처음 사회문제에 나섰다. 서슬 퍼런 유신 시절, 경북 지역 농민 오원춘(알폰소)씨가 정부로부터 받은 감자씨가 불량 종자였다는 사실을 폭로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던 것. 힘없는 농민들이 피해를 보자 두봉 주교와 교구가 전국적으로 기도회를 열며 항의해 보상을 받아냈지만, 하마터면 이 일로 교구민들은 두봉 주교를 두 번 다시 못 볼 뻔했다. 정부가 ‘강제 추방령’을 내린 것이다. 두봉 주교는 “우리 농민이 어려움을 겪는 데 물러설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일로 김수환 추기경님, 윤공희 대주교님과 교황청에 가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알현했습니다. 교황님은 ‘안동교구장으로 그대로 있어 달라. 정부가 추방하면 내가 후임자를 안 보내겠다’고 힘을 주셨죠. 일련의 사건들이 안동 지역민들에게도 좋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두봉 주교는 의료와 구호, 문화사업에도 힘썼다. 안동 농민회관과 안동 최초의 문화회관 설립, 국내 최초 전문대학인 가톨릭상지대와 상지여중고 설립, 한센병 환자를 위한 다미안 피부과의원 설립 등 큰 업적을 남겼다.



▨기쁘고 떳떳하게

두봉 주교에겐 주교 문장과 사목표어가 없다. 명예를 내세우고 싶지 않아서였다. 가뜩이나 1969년 주교 임명 당시 “한국인 사제가 안동교구장이 돼야 한다”며 한사코 주교 임명 수락을 마다했던 터였다. 이 덕분(?)에 신자들은 교구가 설정되고도 초대 교구장 주교 임명 소식을 한 달가량 기다려야 했다. 주교복도 김수환 추기경에게서 물려받았다.

대신 두봉 주교가 지금까지 외치는 삶의 모토는 ‘기쁘고 떳떳하게’다. 이는 안동교구의 정신으로 남아 오늘날 교구 사목 표어로도 쓰이고 있다. 스스로를 “타고난 낙관주의자”라고 말하는 두봉 주교는 “내 마음에 ‘성령의 성전’을 모시고 사는데, 하느님께 선택받은 우리가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느냐”며 행복론을 설파해오고 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기쁨은 곧 신앙의 근본입니다. 양심대로 바르고 떳떳하게 살면 분명 큰 보람을 느낍니다. 유교 전통을 잇는 유림의 고장 안동 사람들도 양심대로 바르게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은퇴 후 선교사의 삶


두봉 주교는 교구장직을 15년 더 수행할 수 있었지만, 서너 차례 사임을 표한 끝에 1990년 은퇴했다. 더 많은 이를 자유롭게 만나 하느님께 이끄는 ‘선교사의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의 주교관 장소를 일부러 신자들이 거의 없는 지역을 택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두봉 주교는 은퇴 후에도 인근 농공단지를 찾아가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미사와 성사를 거행해줬고, 직접 냉담교우를 찾아다니며 회두 활동도 했다. 어려운 외짝교우 가정을 경제적으로 도와 성가정이 되도록 이끄는 등 ‘숨은 천사’가 돼줬다.

두봉 주교는 여전히 바쁘다. 매주 피정 지도와 특강, 미사 강론이 꽉 차 있다. 운전도 직접 한다. 지난해 교구 사제단이 십시일반 모아 두봉 주교의 오래된 차를 바꿔줬다. 더 좋은 차량을 한사코 마다한 두봉 주교는 새로 받은 차도 “너무 과분하다”고 했단다. 건강비결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했다.

“안동교구에 온 게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이만큼 흘렀습니다. 그때만 해도 포장된 도로가 드물었죠. 그럼에도 우리는 변함없이 사랑 안에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몸과 마음을 주시고, 믿음을 주신 분인데 그분께 맡기는 것만큼 든든한 삶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늘 편안하고, 기쁘고, 멋지게 사세요.”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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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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