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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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개관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서소문역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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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신앙선조들이 순교한 곳, 서소문 밖 네거리. 이 순교자의 땅이 신자들에게는 신앙을 북돋는 공간으로, 비신자들에게는 역사를 되새기고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새 단장을 마치고 6월 1일 개관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하 서소문박물관)과 서소문역사공원(이하 서소문공원)을 찾았다.


■ 순교, 그 땅

서소문공원에 들어서자 순교자현양탑이 눈에 들어왔다. 탑에는 44위의 순교성인과 27위의 순교복자, 그리고 아직 시복시성되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 순교한 30위 순교자의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탑은 이 땅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이 하느님을 향한 올곧은 마음 하나로 목숨까지 바친 그 땅임을 알리는 듯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있었다.

서소문공원에서 서소문박물관 입구 방면에는 새로운 현양탑이 세워졌다. 작은 십자가로 이뤄진 칼의 형상은 푸른빛으로 희망을 나타냈고, 반대편에는 사람 형태의 조각들이 서소문의 시옷(ㅅ)과 사람 인(人)을 중의적으로 나타내는 형상으로 누워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을 위해 죽었지만, 동시에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널리 알린 이들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지하 1층, 서소문박물관 입구에는 ‘월락재천수상지진’(月落在天水上池盡)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 말은 한국교회 최초의 영세자인 하느님의 종 이승훈(베드로)이 바로 이곳에서 순교할 때 한 말이다. 그는 이 말로 달이 지더라도 하늘에 남아있는 것처럼, 또 물이 치솟는다 하더라도 연못 속에 남아있는 것처럼 자신의 신앙에도 변함이 없음을 드러냈다.

박물관 로비에 들어서니 왼쪽 벽에 부조가 눈에 띄었다. 이경순(바울라) 작가가 제작한 ‘순교자의 길’이다. 7개로 구성된 이 작품은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도구를 실제 크기대로 만들고, 순교하기까지 꺼지지 않았던 순교자들의 희망 메시지를 표현했다. 각 작품에는 묵상 글이 담겨 순례자들이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묵상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니 정하상기념경당이 자리하고 있다. 경당이 정하상(바오로) 성인을 기념하고 있는 것은 온 가족이 순교한 성인의 가족이 서소문과 깊은 인연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을 비롯해 성인의 아버지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과 형제인 복자 정철상(가롤로), 성 정정혜(엘리사벳)가 이곳에서 순교했다. 성인의 어머니 성 유소사(체칠리아)는 옥사했다. 경당에서는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봉헌된다.


■ 순교자의 무덤

서소문박물관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로 조성됐다. 그리고 그 절정을 이루는 것이 지하 3층의 콘솔레이션홀이다. 정육면체 형태로 설계된 홀은 높이 12m에 달하는 거대한 4면의 벽이 땅에서 2m가량 떠있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마치 무덤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이곳은 실제로 무덤이기도하다. 이 공간의 무대에 빛이 직선으로 내려오는 자리에 순교자들의 유해가 묻혀있다. 103위 중 이영희(막달레나)·이정희(바르바라)·허계임(막달레나)·남종삼(요한 세례자)·최형(베드로) 성인의 유해가 안치됐다. 많은 순례자들이 유해가 안치된 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홀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순교자들에게도, 순례자들에게도 위안을 선사하는 공간이었다. 홀에서는 안식이라는 의미를 지닌 장례미사곡 ‘레퀴엠’ 공연이 상설로 열릴 예정이다.

홀은 마주하고 있는 하늘광장과 연결돼 그 의미를 더한다. 하늘광장은 지하 3층에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정사각형의 어두운 공간에서 정사각형의 밝은 하늘을 나아가 순교자들이 그토록 바라봤던 하늘, 그곳에 계신 하느님을 묵상하게 해준다.

마찬가지로 지하 3층에 자리한 상설전시실에는 서소문에 관련된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었다. 특히 이 전시는 서소문의 역사를 교회사가 아닌 조선 후기 사상사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내 비신자들에게도 유익한 전시공간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전시물의 배치를 ‘천주교도들이 말하는 경천(敬天)은 가짜다’라고 말하는 헌종의 「척사윤음」을 시작으로 안중근(토마스) 의사의 고백이 담긴 유묵 ‘경천’을 대비시키며 끝냈다. 신앙인들이 경천, 즉 하느님을 섬기는 것의 의미를 곱씹게 해주는 전시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개관에 앞서 5월 29일 콘솔레이션홀에서 거행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축성·봉헌미사 강론을 통해 “성지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증거와 순교자들의 죽음, 그리고 하느님과 만나는 천상영광의 하늘을 묵상하게 하고 일깨워준다”며 “성지가 신자들에게는 믿음을 북돋아 신앙을 더욱 깊이 있게 하고 역사와 더불어 우리 교회가 같이 걸어간 길을 깨닫게 해 주는 역할을 해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 서소문의 부활

고가도로와 철도로 둘러싸인 서소문공원은 원래 도심의 섬처럼 붕 뜬 공간이었다. 공원에는 주로 노숙자들이 시간을 보냈고, 지하는 쓰레기처리장으로 활용됐다. 그래서 서소문공원과 박물관이 새 단장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사람들은 노숙자들이 공원에서 떠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공원과 박물관을 새 단장하면서 가장 먼저 놓인 것이 바로 티모시 쉬말츠 조각가의 ‘노숙자 예수’상이다. 이 청동 조각은 낡은 담요 한 장으로 온 몸을 감싼 노숙자의 모습을 한 예수의 모습으로 교황청에 설치된 것과 같은 작품이다. 이 공간만큼은 소외되는 이들이 단 한 사람도 없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45종의 나무 700여 그루와 33종의 풀꽃 9만500여 본을 심은 공원은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녹지다.

이곳은 2011년 7월 24일 서울대교구가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서울 중구청에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 자원화 사업’을 제안하면서 마련된 공간이다. 가톨릭교회만의 성지로 꾸민다는 오해로 일부 시민·종교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오해가 풀린 지금은 오히려 화합의 장으로 거듭났다.

서소문박물관도 종교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현재 박물관에는 ‘한국현대조각의 단면’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 근·현대조각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 전시는 1950년대 후반에서 현재까지의 작가 62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박물관은 앞으로도 다양한 기획전시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 박물관 지하 1층에 자리한 강의실 ‘명례방’과 1만여 권의 서적을 소장한 도서관도 누구에게나 열린 문화공간이다.

공원과 박물관 조성 실무를 맡아온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부위원장 원종현 신부는 “서로의 다름을 차별로 규정하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의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공간을 준비했다”면서 “하느님은 우리만의 하느님이 아니기에 교회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복음적 가치, 인류 보편적 가치, 보다 하느님적인 가치를 드러내 시민사회와 소통을 이루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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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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