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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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신앙체험수기] 장려상/ 사랑하는 바보 씨진이

김광수 (프란치스코,서울대교구 홍제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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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씨진아~~~!”

나에게는 조카가 여덟 명이 있습니다. 핏줄의 끌림인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모두 잘생기고 예쁘고 착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명의 조카만 빼고….

그중에 씨진이는 나의 첫 번째 조카입니다. 이름은 양수진! 하지만 난 어릴 적에 씨진이라 불렀습니다. 그 이유를 지금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부끄러움과 원망과 안타까움이 범벅이 되어 버린 마음의 표현과 장난이 가미된 저의 철없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내면에는 나의 조카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깊은 심리 상태가 담겨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수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얼마나 좋아했던지 학교만 다녀오면 조카를 보러 누나 집에 쏜살같이 달려가곤 했습니다. 첫 조카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수진이의 눈은 별보다 초롱초롱 빛났고, 젖살이 채 가시지 않은 볼은 잘 익은 홍시처럼 포동포동했으며, 가끔씩 까르륵~ 웃을 때는 흔히 하는 말로 그냥 녹아버렸습니다. 그래서 매일 물고, 빨고, 업어주고 그랬답니다.

수진이는 다른 아이와 다르게 자폐 장애 1급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통사람보다 지능이 많이 낮습니다.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건 의미 없는 장애 등급을 누가 먼저 나누었는지는 몰라도 굳이 등급으로 따지자면 ‘특급’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수진이는 지금은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다섯입니다. 당연히 말도 못합니다. 당연히 혼자 밥도 못 먹습니다. 때로는 똥오줌도 못 가릴 때가 많으며 무엇보다 폭력적일 때가 많아 아무거나 집어 던집니다. 창문이 깨지고 누나의 얼굴과 많은 사람의 얼굴에도 피멍이 들게 하거나 치아를 부러뜨릴 때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거리에 지나가는 아이를 밀어버리거나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고 큰소리로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짐승의 울음 같은 괴성을 지를 때가 많습니다. 언젠가는 방에 똥을 싸서 그 똥을 온 방에 던진 적도 있었습니다. 정말 가히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금전적으로도 얼마나 많은 보상을 해 주었는지 그 금액을 세지도 못하겠네요.

누나는 아무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고 무시당하고 어떤 공동체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외딴 섬 같은 집에서 수진이와 샴쌍둥이처럼 한시라도 눈에서 떼지 않고 붙어 다녀야 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숨 쉴 때도 같은 호흡으로 쉬어야 했을 정도로…. 단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수진이 엄마는 즉 나의 누나는 평생을 수진이 수발만 하느라 모든 젊음을 바쳤고, 자신의 삶을 한 번도 살지 못하고 어느덧 예순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습니다. 정신적으로는 우울증이 왔었고, 육체적으로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백합처럼 순수하고 화사했던 여자는 없고, 비에 젖어 떨어지는 벚꽃처럼 무참히 밟혀버린 처량한 한 떨기 꽃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집은 가족 모임도 정말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하루는 수진이를 데리고 가족 모임으로 외식을 했는데, 괴성과 고함을 질러서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밥이 어찌 입으로 들어가고, 진수성찬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많은 손님의 이상한 눈초리를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외계인 보듯 힐끔 쳐다보고, 그냥 그러려니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많은 사람 중 한두 분은 우리 가족을 향해 정말 모진 말을 하는 분들이 꼭 있습니다. 정말 얼른 일어나서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

어떨 때 제가 화를 내곤 했습니다. “그냥 집에 두고 문 잠그고 몇 시간만 있다가 오면 되지” “왜 데려와서 모든 것을 망쳐버리고 간만의 외식도 이렇게 아프게 하느냐고?”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분위기는 끝없이 추락하고 우리 가족은 죄인처럼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 “죄송합니다. 빨리 나가겠습니다.” 반도 먹지 않은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밥그릇을 남기고 죄인처럼 나와야 했습니다.

맞습니다. 죄인~!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밥 먹을 권리가 있으나 우리 가족이 피해를 주었기에, “이해해 주세요”라고 말하기에는 내가 상대방이라도 이해가 가지 않을 때 이해라는 말조차 꺼낼 수가 없습니다. 한때는 욱하는 마음에 그런 사람들과 싸우기도 하고 원망도 했건만 그것 또한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된 것은 충분히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문득 오상의 성 비오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것이 성찬이고, 고통을 감내해야 함은 나의 기쁨이고 일용할 양식이 되리라는 것을….

그러던 어느 날 누나가 성당에서 평일 미사를 드리고 나올 때였습니다. 수녀님께서 급히 저희 누나를 부릅니다. “자매님~ 자매님~” 무언가 급한 사람처럼 허겁지겁 달려옵니다. 성모상 앞에서 성호경을 긋고 있던 누나는 잠시 멈추어 섰습니다. 그러고는 수녀님은 무작정 누나에게 말을 건넵니다. “자매님 참 힘드시죠? 제가 잘 압니다. 자매님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수녀님의 한마디에 준비도 되어 있지 않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따뜻하고 온유한 사랑의 한마디가 누나의 영혼을 움직였습니다. 같은 믿음이라도 외면했던 많은 교우였는데, 수녀님의 순수한 기도가 들렸나 봅니다.

다시 수녀님은 말씀을 이어 가셨습니다. “자매님의 딸은 하늘나라에서는 천사입니다. 그 천사는 지상에서는 이렇게 아프게 살고 있지만, 하늘나라에서는 환한 빛으로 주님 곁에 있을 천사입니다.”





수녀님은 정결의 날개를 단 것처럼 고요히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 천사는 당신의 가정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느낄 수는 없으나 항상 당신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그 천사가 자매님께는 십자가로 보이겠지만 나중에는 알 것입니다. 십자가가 알고 보니 천사가 들고 온 선물이라는 것을.” 그렇게 수녀님은 우두커니 울고 서 있는 누나와 상반되게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어디론가 천천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성당에서 300m도 되지 않는 가까운 집에 도착하니 잘 웃지도 않던 수진이가 갑자기 엄마를 보고 웃더랍니다. 그냥 웃더랍니다. 꼭 정상적인 사람처럼 가만히 바라보며 몇 번을 웃더랍니다. 아무런 소리 없이 웃더랍니다. 누나는 무언가에 맞은 사람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기도 손이 되어 있더랍니다.

그 후 의기소침했던 누나는 어느 누구의 말에 상처받기보다는 하느님의 뜻 하나에 집중하고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레지오에도 가입하고 성당 사람들과 봉사활동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여니 성당 사람들도 하나둘씩 누나에게 문을 열기 시작해 주었고 아픈 딸을 키우는 자매라며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생활 안에서 기쁨으로 충만했고 그 에너지는 가정에도 이어졌고 우리 가족에게도 저에게도 불어넣어 졌습니다. 생명의 숨결이 코에 들어가 사람이 되는 것처럼. 그 오묘한 너그러움으로.

그때부터 누나는 수진이가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예쁜 우리 딸!”이라 불렀고 정말 저에게 이런 딸을 주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너무 힘들어서 자신과 수진이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게 더 아파져 왔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또 며칠이 지나고 계절이 몇 번씩 바뀔 때 즈음 천천히 수진이가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그런 기적은 아니나, 고함도 괴성 지르는 것도 줄어들고, 조용히 밥도 잘 받아먹고, 폭력적인 것도 던지는 것도 거의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씩 “엄마! 엄마!”라고 할 때도 있고 삼촌이 가면 뭐가 그리 좋은지 자꾸 웃을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나를 보고 웃는 것인지 몸속에 개미가 들어가서 간지러워 웃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작은 하나하나에 감사함이 시작되었고 치유가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처럼 눈에 보이는 기적이 있기를 바란다고…. 나는 말합니다. 이미 우리 가족에게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그것은 수진이를 통해 더 신앙에 다가갈 수 있었고 더 하느님 가까이 가려고 생활 속에서 나누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보다 더 큰 기적이 있겠습니까?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기도가 있겠습니까?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그렇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그렇게 부활이 아직도 진행형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 수진아!~ 고 김수환 추기경님도 바보고 우리 수진이도 바보다.” 하느님께서 누구보다 사랑하는 바보!




수진이의 편지

† 찬미 예수님

저는 말을 할 수 없어요. 저는 글을 적을 수도 없어요.

오늘만은 삼촌이 저를 대신해서 하늘의 천사의 도움으로 처음으로 편지를 적어보아요.

하느님께서 세상에 저를 보내었습니다.

여느 여자아이처럼 저도 참 예쁘게 태어났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할머니, 엄마, 아빠께서는 사랑하는 눈빛으로 언제나 바라봐 주었고,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 영원할 것 같은 포근함! 그 향긋한 행복함!

그런데 어느 날! 잠에서 일어나보니 너무나 심한 고열이 저를 아프게 했고,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아이가 된다는 것을….

그것이 하느님의 질투인지, 하느님의 선물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세상이 정한 장애아라는 이름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저에게 너무나 가혹한 시련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 했고, 어디를 가더라도 제가 환영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벌레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으며 심장만 뛰는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견딜 수 있었던 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옷 벗김의 희롱을 당하고, 얼굴에 침 뱉음의 수치와 멸시까지 당하며 가시관에 흐르는 선혈의 아픔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던 가족의 눈빛도 변했고, 내가 울면 안아 주기보다 회초리로 때릴 때도 있었고, 외면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난 관심을 받기 위해 더 폭력적으로 변해갔고, 더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나의 지능을 하느님께 원망하기보다 단지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제가 부족하고 누군가에게는 부끄러운 딸일지라도 가족에게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 이유인데 아무도 몰라주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가족이 달라졌습니다. 저를 우리 예쁜 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제가 아무리 투정을 해도 저를 예쁜 딸이라 안아주었고 제가 아무리 괴성을 질러도 때리지 않고 손잡아 주었습니다.

저는 우리 엄마의 마음을 압니다. 이 부족한 딸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을까?

그 마음을 아는데, 저도 모르게 저는 여전히 변하질 않습니다.

손도 내 마음대로 집어던지게 되고, 다리도 항상 장애인 스쿨버스에 타기 싫어서 매일 엄마랑 싸웁니다.

한때는 엄마의 손목을 물어서 피를 흘리게도 했는데 저는 영혼으로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실 저에게도 보통의 사람처럼 욕망과 쾌락도 있습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지만, 저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시집도 가고 싶고, 우리 동생과 함께 공부도 해 보고 싶어요.

무엇보다 성당에 나가서 기도도 드리고 싶어요.

왜 저를 이렇게 만드셨어요!라고 기도드리기보다 왜 우리 가족을 이렇게 힘들게 하시나요?라고 그렇게 원망 섞인 기도를 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전 하느님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 깊은 뜻을 알기 때문입니다.

훗날 하늘나라 가면 제가 다시 간곡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 보통의 사람으로 한 번은 살고 싶다고.

그리고 허락하신다면 다른 엄마 말고 우리 엄마의 딸로서 다시 지상에서 만나고 싶어요.

단 하루라도 엄마와 함께 밤새도록 수다 떨고 싶어요.

하느님! 부탁드려요~ 천사가 아니어도 좋으니….



양수진 글로리아 올립니다.





“전에 나는 당신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을 봅니다.”(욥 42,5)




▲ 김광수(프란치스코)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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