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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최영수 필립보·권성여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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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수(필립보, 1791~1841)

최영수는 서울 전동의 양반집에서 태어났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돼 경상도 흥해로 유배된 최해두가 그의 부친이며, 모친 해남 윤씨는 1801년 전라도 해남으로 유배된 윤현의 딸로 복자 윤유일(바오로)의 사촌이다. 또한, 1801년 순교한 복자 최창주(마르첼리노)가 최영수의 종조부이다.

그의 집안은 일찍부터 조부와 부친이 입교해 신앙생활을 해 오고 있었다. 최영수는 1801년 부친이 유배된 데다가 얼마 뒤 모친마저 사망해 어려서부터 어렵게 생활해야만 했다. 부친이 사망했을 때 최영수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흥해까지 찾아가 부친의 시신을 안장했다고 한다.

그는 동생 최병문(야고보)을 데리고 삼촌 집에서 여러 해 동안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1810년 무렵 동생이 교우 이연이와 혼인하자 그는 동생 부부와 함께 서울로 이주해 남대문 밖 이문동에 살면서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에게 세례와 견진을 받았다.

최영수는 이때부터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기 시작해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양조 기술을 배워 자신의 집에서 직접 미사주를 제조했고, 정하상(바오로) 등 지도층 신자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집을 공소로 개조해 교리교육을 하고 냉담자를 회두시켰다.

그는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남이관(세바스티아노) 집으로 피신해 있으면서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었다. 또 앵베르 주교의 지시로 현석문(가롤로)ㆍ이문우(요한) 등과 함께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했다.

포도청은 1841년 4월 밀고자의 정보로 서울 서부 후동 한소임의 집을 습격해 은신해 있던 최영수를 체포하고, 교회 서적과 묵주를 압수했다. 최영수는 1841년 10월 24일 100대의 매를 맞고 순교했다.



▨권성여(프란치스코, 1798~1841)

권성여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권득인(베드로) 성인의 형이다. 그는 동생 권득인과 함께 서울 배오개 사거리에서 약국을 운영하면서 교회 재건과 성직자 영입 운동에 동참해 활동했고, 입국한 중국인 유방제 신부와 프랑스 선교사들을 도와 일했다.

그는 박해가 일어나자 강원도와 충청도 등지에서 은신하다 1841년 4월 8일 충주에서 체포돼 서울 포도청으로 압송됐다. 그는 최영수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의 은신처를 발설하라는 혹독한 심문과 형벌에도 굽히지 않았다. 6개월간 옥살이와 고문의 고통을 겪은 뒤 1841년 9월 24일 허대복(안드레아)과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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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7-2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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