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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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청소년 평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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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은 우리 이웃인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통일과 평화에 대해 여러 질문들을 던진다. 수많은 질문과 고민들 중 북한 주민이 우리 이웃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중고등학생들이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모였다.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강주석 신부)는 8월 6~8일 경기도 파주 민족화해센터에서 ‘청소년 평화학교’를 개최했다. 중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교구 신학생, 교리교사 등 총 29명이 참가해 평화에 대한 여러 시선들을 나누고 체험했다. 뜨거웠던 여름, 청소년 평화학교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 평화 생각-메콩강에 악어가 산다

‘메콩강에는 정말 악어가 살까?’ 일명 ‘악어강’이라고 불리는 메콩강은 중국 티베트에서 발원해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르는 강이다. 그리고 이 강은 수많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두려움의 기억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영화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는 이 메콩강을 배경으로 남북 청년 4명의 생생한 탈북로드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영화 출연자 겸 감독인 북한이탈주민 박유성씨가 민족화해센터를 방문해 평화학교 학생들과 만났다. 영화 상영 후 학생들은 “지금까지 탈북은 총알이 날아올 것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줄 알았다”며 “영화 속 감독이 오랜 기간 돌고 도는 험난한 탈북 과정을 거쳐 한국에 왔다는 사실에 다른 시각을 갖게 됐고, 참 멋있고 용기 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탈북 길을 돌아왔던 우리를 보고 어른들은 무턱대고 동정하곤 하지만, ‘용기 있는 사람’, ‘멋있는 사람’이라고 편견 없이 응원해 주는 학생들의 모습에 힘이 난다”고 답했다.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는 메콩강 경로를 밟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사실처럼 떠도는 루머다. 실제로 메콩강에는 악어가 살지 않는다. 박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가장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기억의 왜곡’과 ‘편견’에 관한 것”이라고 밝혔다. 메콩강에 산다던 악어뿐 아니라 ‘북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인식을 전환시켜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차에서 중국 공안과 금전 문제로 시비가 붙어 신분이 노출될 뻔해 기차에서 내렸던 아찔한 기억들도 나눴다. 박 감독과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은 학생들은 “무겁게만 느꼈던 탈북 과정을 실감나고 가볍게 보고 들을 수 있어서 거리감이 많이 좁혀졌다”며 “북한이탈주민이라고 말하는 감독님에게 전혀 이질감을 못 느꼈고 옆집 삼촌 같다”고 말했다.


■ 평화 시선?현장방문

둘째 날 오전, 부슬부슬 내리는 비도 평화학교 학생들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학생들은 우비를 입고 4개조로 나눠 임진강 생태탐방로와 보현사전망대, 금정굴, 북한군·중국군 묘지 등으로 현장체험에 나섰다. 네 군데 모두 6·25전쟁과 관련된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기자가 함께 방문한 곳은 북한군·중국군 묘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끝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6·25전쟁에서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그리고 6·25전쟁 이후 수습된 북한군 유해를 안장한 묘지다. 현재 중국군 유해는 모두 본국으로 송환됐고 북한군 유해만 남아 있다.

강주석 신부는 묘지에서 학생들에게 “이름도 없는 전사자들이 묻혀 있는 곳”이라며 “묻힌 이들 중에는 여러분과 같은 10대들도 많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신부는 원산시 인민학교에 재학하던 김근식 어린이가 6·25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5일 ‘인민군 아저씨’라는 제목으로 쓴 편지를 학생들에게 읽어 주며 당시 전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어 “이곳에 묻힌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시대와 상황 속에서 전쟁에 나가게 된 것”이라며 “옛날에는 이곳을 ‘적군묘지’라고 불렀는데, ‘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평화가 무엇인지’ 앞으로 이어지는 평화학교 시간 안에서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름 없는 북한 전사자들의 묘지 앞에 꽃을 한 송이씩 헌화하고 묵념했다.

각 현장에서 분단의 아픔을 체험한 학생들은 오두산통일전망대로 모였다. 오두산통일전망대는 서부전선의 최북단으로, 남과 북이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2㎞의 짧은 거리를 반세기가 넘도록 왕래하지 못하는 비극을 보여 주는 남북분단의 현장이다. 학생들은 3층 야외 전망대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망원경으로 북한의 모습을 바라봤다.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북한 주민들을 보며 “저기 있다!”, “어디 어디? 와! 진짜 보인다!”라며 호기심을 보였다. 한편 학생의 시선에서 “북한 주민들이 망원경으로 관찰당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 기분 나쁠 것 같다”고 우려를 보이는가 하면 “이렇게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북한 땅이 가깝다는 사실이 놀랍고 어서 왕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통일에 대한 바람도 드러냈다.


■ 통일 ‘핵인싸’ 되기?사사끼 게임

(※핵인싸:무리에 잘 섞이는 사람들을 뜻하는 신조어)

“사사끼 치자!” 어느새 민족화해센터는 카드장으로 변했다. 바로 ‘사사끼 게임’을 하기 위해서다. 사사끼 게임은 북한 카드게임으로, 북한 주민 99가 알고 있는 국민게임이다. 평화학교 학생들에게 북한문화를 가르쳐 주기 위해 북한이탈주민 3명이 일정을 함께했다.

사사끼 게임은 무작위로 나눠 가진 트럼프카드를 특정 기준에 따라 내고, 가장 먼저 모든 카드를 낸 사람이 승자가 되는 방식이다. 사사끼에서 ‘끼’는 ‘A’를 뜻한다. 즉 사사끼는 ‘44A’로서 이 게임에서 가장 강한 패 조합이자 게임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사끼 카드’에는 낮과 밤이 있다. 스페이드와 클로버는 밤을, 하트와 다이아몬드는 낮을 상징한다. 낮에는 하트 3을, 저녁에는 스페이드 3을 가진 사람이 선이 돼 게임을 시작한다. 선이 된 사람은 한 장이든 두 장(페어)이든 세 장(스트레이트)이든 내고 싶거나 낼 수 있는 카드를 먼저 낸다. 옆 사람은 그보다 높은 카드가 없거나 내고 싶지 않으면 패스를 한다. 3명 모두 연속으로 패스를 하면, 맨 마지막에 카드를 냈던 사람은 선이 되고, 내고 싶은 새로운 카드를 낸다. 이런 방식으로 카드를 먼저 다 내면 이기는 게임이다. 이 외에도 세부적으로 복잡한 규칙이 있지만, 학생들은 곧장 따라하며 게임에 열을 올렸다. 학생들은 “나중에 북한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면 사사끼 한 판 제대로 쳐보고 싶다”며 승부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평화학교 장은희(아녜스) 봉사자는 “남북한 청소년이 서로를 마주할 날이 오면 ‘사사끼 같이 치자!’라며 출신 고향에 관계없이 편하고 즐겁게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통일 ‘핵인싸’ 되기?이웃의 식탁

사사끼 게임처럼 북한에 널리 알려진 대중적인 문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바로 음식이다. 학생들은 남한의 떡볶이 같이 북한에서 유명한 길거리 음식을 만들어 보고 직접 맛보기도 했다.

그 첫 번째는 두부밥. 유부초밥에서 착안한 음식으로 1990년대 이후 북한 전역에 퍼졌다. 두부밥은 두부를 구워서 초밥처럼 주머니를 만들어 밥을 넣고 양념장을 뿌려 먹는 음식이다. 미리 봉사자들이 준비해 둔 덕분에 학생들은 양념장을 넣는 작업만 했지만, 직접 북한 음식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뿌듯해 하며 사진으로 찍고, 자신이 만든 음식이 최고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두 번째는 인조고기 밥. 인조고기는 단백질 섭취를 위해 콩 찌꺼기를 갈아 다시 납작하게 눌러 고기처럼 만든 음식이다. 인조고기 역시 초밥처럼 주머니를 만들어 밥을 넣고 양념장을 뿌리면 된다.

마지막은 속도전떡. 말 그대로 속도가 빨라 속도전떡이다. 전분을 포함한 옥수수가루로 만든 가루를 반죽해서 먹는 음식이다. 1~2분이면 만들 수 있고, 먹는 것도 몇 번 삼키면 끝이다.

학생들은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조별로 접시에 담아 제출했다. 심사를 받기 위해서다. 심사는 평화학교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이 맡았다. 맛에 큰 차이는 없지만 우승팀을 가렸다. 우승 상품 역시 북한 과자들이다.

북한 게임을 하고 북한 음식을 만들며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북한 문화를 익혀 나갔다. 강주석 신부는 “이 시간은 단순히 게임을 하고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며 “북한 주민을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이려면 알고 있어야 할 문화들”이라고 강조했다.


■ 비폭력 대화

“친구가 화가 났을 것 같아요.”

모든 관계는 언어를 매개로 형성된다. 학생들은 일상 속에 경험하는 갈등 상황에서 응용할 수 있는 자기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비폭력 말하기 방법을 배웠다.

비폭력 대화는 총 8단계로 나눠 진행했다. 내용은 ▲갈등상황 관찰하기 ▲최근에 겪은 갈등상황 나누기 ▲나의 감정과 욕구 찾기 ▲느낌 표현하기 ▲필요를 말하기 ▲부탁하기 ▲비폭력 대화 연습 ▲폭력의 대화 비폭력으로 바꾸기 등이다.

비폭력 대화에는 강의와 함께 카드놀이도 병행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적힌 카드를 갖고, 지금 올라오는 감정이 적힌 카드를 내는 것이다. 서로의 감정을 알아보고 내 감정도 전달하며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갔다.

비폭력 대화를 진행한 평화학교 정다빈(멜라니아) 봉사자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며 “먼저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상황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타인의 감정을 추스르며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며 “어린 시절 이런 연습은 관계를 맺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평화를 꿈꾸다?평화 인사

평화학교 학생들은 북한이탈주민 영화감독과 대화를 통해 평화를 생각하고, 분단의 아픔이 담긴 현장을 방문했다. 또한 북한 게임과 음식 등 북한 문화를 몸소 체험했고 비폭력 대화법도 배웠다. 2박3일간 평화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학생들은 어떤 평화를 꿈꾸게 됐을까.

평화학교 파견 미사에서 학생들은 직접 적은 평화 인사를 나눴다. “우리나라 평화통일을 꿈꾸며 평화를 빕니다.”, “이주민, 다문화 가정들을 위해 평화를 빕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조화롭게 살아가기를 꿈꾸며 평화를 빕니다.”, “6·25전쟁에서 돌아가신 영혼들에게 평화를 빕니다.”, “모든 전쟁의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평화를 빕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평화를 빕니다.”

강주석 신부는 “평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참 어렵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다”며 “학생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평화에 대한 꿈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 참가자 조현진군 인터뷰

“사제되어 북한이탈주민 위해 일하고 싶어”

“나중에 신부님이 된다면 한반도 통일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청소년 평화학교에 참가한 조현진(미카엘·고1·의정부교구 파주 봉일천본당)군은 지난해 비무장지대(DMZ) 순례를 다녀온 후 통일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관심이 생겼다. 조군은 “북한을 먼 곳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수영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인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놀랐다”며 “지리적으로 이렇게 가까운데 분단의 역사와 사상의 차이 때문에 가지 못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보현사전망대로 현장체험을 나간 조군은 “전망대에서 북한 초소를 보니 지금은 서로 적으로 바라보지만, 형제로 만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한 사사끼 게임에 매우 흥미를 느꼈다며 “우리나라 게임과 비슷했고, 게임을 알려준 북한이탈주민 형과도 같이 재밌게 놀았다”고 말했다. “만약 동갑이었으면 친한 친구가 됐을 것이고 북한은 정말 가까운 이웃임에 틀림없다”고 덧붙였다.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힌 조군은 “신부님이 된다면 한반도 통일과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해 일해 보고 싶다”면서 “평화학교에서 체험하고 배운 것들을 집에 돌아가 지금부터 적용해 나가겠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
사진 박원희 기자 petersco@catimes.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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