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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이벽 세례자 요한과 동료 132위’ 약전

심원경 스테파노·김조이 수산나·최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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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경(스테파노, 1817?~1866)


심원경은 인천 함박리(현 경기도 부천시 함박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오던 양반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신앙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아들 심봉학과 함께 양지 사기막골(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 교우촌으로 이주해 교우들과 함께 살았다. 그러다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866년 10월 다시 고향인 함박리에 정착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이웃의 고발로 아들과 함께 인천 포교에게 체포됐다.

인천 관아에 압송된 심원경과 아들 심봉학은 혹독한 형벌에도 신앙을 증언했다. 이들 부자는 수원부로 이송돼 다시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심원경은 1866년 11월(음력) 팔달문이라 불리는 수원 남문 밖 장터로 끌려가 매 맞아 순교했다. 당시 그의 나이 약 50세였다.



▨김조이(수산나, 1818~1867)

김조이는 충청도 공주에 살던 김안드레아의 딸로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신앙을 물려받았다. 성품이 선량했던 그는 교리에 밝은 데다가 신자 본분도 충실히 지켰다. 중년이 된 후 남편이 죽자 그는 시어머니와 자식들을 데리고 병인박해 순교자인 시사촌(媤四寸) 박양여(요한 사도) 회장에게 의탁해 살았다.

그는 기도생활뿐 아니라 죽을 위험에 처한 이들에게 대세를 주고, 자선을 베푸는 일을 열심히 하였다. 평소에 순교자들을 칭송하면서 자신도 때를 만나 순교의 은혜를 얻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났을 때 그는 문경 호항리(현 경북 문경시 문경읍 중평리 여우목)에 살고 있었다. 박해 초기에 포교들이 들이닥치자 교우들과 두 차례 산속 굴로 피신했으나 그해 11월 18일 체포되고 만다.

그는 문경 관아를 거쳐 상주 진영으로 압송됐다. 김조이는 영장 앞에서 천주교 신자임을 밝히고 십계명과 기도문들을 암송했다. 그리고 두 달 동안 주장과 태장을 맞고 주뢰형을 받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신앙을 증언했다.

그는 사형 판결이 나자 옥에서 아들 박효훈(프란치스코)과 딸 박아가타에게 편지를 써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아들 효훈아, 나는 너에게 다시 한 번 가르침을 주지 못하고 죽는다. 그러니 모시고 있는 삼촌의 명을 주님의 명으로 받아들이도록 해라. 딸 아가타야, 너는 헛된 혈육의 정으로 잠깐인 세월을 허송하지 말고 영원한 천당을 시댁으로 생각하여라. 너희 두 사람이 구령에 힘쓰기를 바라며, 서로 화목한 사랑으로 지내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거든 내 뒤를 따라오너라.”

김조이는 1867년 1월 20일 상주 진영에서 순교했다. 당시 그의 나이 49세였다. 그의 시신은 아들 효훈이 수습해 안장했다.



▨최마리아(?~1867)

최마리아는 1866년 홍주에서 순교한 김선양(요셉)의 아내로, 그와 혼인한 뒤 1838년 가족과 함께 영세 입교했다. 그는 1839년 시가 식구들과 함께 전라도 고산 시어골(현 전북 익산시 여산면 대성리 세목)로 이주했다가 기해박해 때 남편 김선양이 체포됐다가 석방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이후 그의 가족은 충청도 진잠을 거쳐 전주 약바위로 이주했다가 다시 공주를 거쳐 서산 강당리(현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로 이주해 정착했다.

그의 가족이 강당리에 정착한 지 6년 정도 됐을 때 병인박해가 일어났다. 1866년 11월 9일 강당리 회장이 체포된 것을 시작으로 교우촌에 남아 있던 신자들이 잡혀갔다. 이때 그의 남편 김선양과 아들 요한도 함께 체포돼 홍주로 압송됐다.

남편 김선양은 1866년 12월 27일 교수형으로 홍주에서 순교했고, 아들 요한은 석방됐다가 다시 체포됐다. 이때 요한이 압송 도중 달아나자 포교들이 최마리아와 요한의 아내 이마리아를 잡아갔다.

포교들은 그에게 아들이 있는 곳을 말하라며 혹독한 형벌을 가했고, 누구에게 천주교를 배웠는지 그를 고발하라고 고문했다. 그는 홍주 진영 옥에 갇힌 지 3일 만인 1867년 1월 22일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그는 순교 직전 옥졸에게 “내 며느리는 나 대신 들어온 것이니 풀어 주라”고 부탁하고 “예수, 마리아께 의탁하옵니다” 하면서 당당히 죽음을 맞았다.

최마리아의 순교 뒤 며느리 이마리아는 석방됐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시신을 거두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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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0-1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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