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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로 만난 하느님] (21) ‘죽은 이들을 살아나게 하는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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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술 발달 이전의 기록문서는 소나 양, 새끼 염소의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 위에 직접 손으로 쓴 필사본이다. 교회사에서 중요한 유물 가운데 하나는 성경에 각종 그림 삽화를 넣어 만든 성경 필사본이다.

필사본에 그려진 삽화는 본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장식적 효과도 얻을 수 있게 한다. 주로 복음서, 창세기, 미사경본 그리고 의학서적 등에 사용됐고, 특히 하느님 말씀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체로 인식돼 화려하게 장식했다. 다만 필사본 제작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한 권의 성경을 필사하고 제작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필사본 표지는 이탈리아 몬자대성당의 보물실에 소장돼 있는 테오돌린다 복음서의 표지처럼 금판에 보석이나 칠보장식, 상아 조각판을 사용했다.


■ 하느님의 말씀을 그린 채색 세밀화

이탈리아 남부의 로사노 복음서(Codex Purpu reus Rossanensis)는 6세기 복음서로 시리아의 스크립토리움(Scriptorium, 필사작업실)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복음서는 2015년 10월 9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로사노 복음서는 자주색 양피지에 전체가 188장(376쪽)으로 구성된 필사본이다. 직물을 염색하는 데 사용하던 푸르푸라 염료로 양피지를 자주색으로 염색해 그 위에 금과 은으로 글자를 썼기 때문에 자주색 로사노 필사본이라고도 불린다. 그 시대에 자주색은 황제 전용색으로 위엄과 권위의 상징이었다. 상징적 측면에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담는 복음서 필사본의 색으로 자주색이 적절했음을 알 수 있다.

로사노 복음서에는 마태오복음 전체와 마르코복음이 거의 다 수록돼 있다. 요한복음과 루카복음은 소실됐다. 여기에는 4복음사가의 초상을 포함해 예수의 생애를 조명한 15개의 채색 세밀화가 묘사돼 있다.


■ 다시 살아난 라자로

이 복음서의 첫 장은 예수께서 라자로를 살리는 이야기(요한 11,1-45)를 그린 권두화로 시작한다. 화면은 크게 신약성경의 장면, 구약성경의 선지자들, 선지자들의 성경 내용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머리에 후광을 두른 반신상의 선지자들은 예수의 기적을 바라보며, 한 손에는 두루마리를 펼쳐서 각각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은 사건이 벌어지는 장면을 향해 뻗고 있다.

라자로는 예수의 친구라고 불릴 만큼 예수와 친밀하게 지낸 인물이었다. 예수께서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으로 가던 도중, 라자로와 그의 누이동생인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서 잠시 쉬며 묵곤 하셨다. 예수께서 수난당하기 직전 유다국 동쪽인 페레아에 전교할 때 라자로가 갑자기 병에 걸려 위독했다. 신앙이 두터운 성인의 누이들은 이 사정을 예수께 전하면 틀림없이 예수께서 좋은 일을 해 주실 것이라 믿었다.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라자로의 모습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가 관 속에 있는 그를 살리는 장면으로 가장 많이 묘사된다. 라자로의 소생은 장차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사람들에게 예고한 것으로 이해돼 3세기 이후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린 주제였다.

라자로의 소생 장면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예수와 라자로를 비롯해 그의 제자들, 다른 목격자들(군중), 마리아와 마르타가 있다. 작품에는 사건 전후가 매우 생동감 넘치게 묘사돼 있다. 작품 왼쪽에 있는 제자들은 그리스 복장으로 긴 튜닉에 각기 다른 히마티온을 걸치고 샌들을 신고 있다. 특히 흰 머리에 흰 수염을 가진 나이 든 모습의 시몬 베드로와 그의 어깨 뒤로 안드레아는 상당히 특색 있게 표현돼 있다. 예수를 따라나선 제자들은 스승을 바라보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몹시 궁금해 하는 모습이다.

제자들 앞쪽에 후광을 두르고 수염이 난 예수는 황금빛 그리스 히마티온과 갈색의 긴 튜닉을 입고 있다. 예수는 긴박감 넘치게 발걸음을 옮기는 듯하다. 예수 발치에는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와 마르타가 엎드려 애원하고 있다. 엎드려 있는 모습에서 죽은 오빠 라자로를 살리고자 하는 그녀들의 절박한 심정이 잘 드러난다.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참된 믿음으로, 마르타와 마리아는 예수의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온몸이 흰 천으로 동여매진 라자로가 무덤 앞에 나와 있다. 그러나 이 화면의 중심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무덤에서 나온 라자로를 축복하고 있다. 무덤 앞에 서 있는 라자로는 얼굴만 보이며 마치 미라처럼 흰 천으로 감겨 있다. 그 옆에 붉은색 옷을 입은 사람은 나흘 전에 죽은 사람에게서 나는 썩은 냄새 때문에 옷자락으로 코를 가린 채, 군중에게 오른손으로 라자로를 보도록 가리키고 있다. 운집해 있는 사람들은 죽은 라자로를 몹시 근심스럽게 쳐다보거나 슬퍼하는가 하면,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표정과 행동을 취하고 있다.


■ 살아날 것을 알리는 선지자들

라자로의 소생 장면에서 화면 상단 부분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각각 들고 있는 하단 부분의 성경 내용과 연결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윗, 호세아, 다윗, 이사야가 들고 있는 두루마리에는 각각 “주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는 분, 저승에 내리기도 올리기도 하신다.”(1사무 2,6), “내가 그들을 저승의 손에서 구해야 하는가?…”(호세 13,14), “주 하느님,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리라. 그분 홀로 기적들을 일으키신다.”(시편 72,18), “당신의 죽은 이들이 살아나리이다. 그들의 주검이 일어서리이다. 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이사 26,19)라고 적혀 있다.

이 작품 화면에 적힌 내용은 도상에 담긴 이야기에 관한 것이 아니며, 그 장면에 대한 설명은 더더욱 아니다.

선지자들이 쥐고 있는 짧은 구약성경 내용은 신약성경의 장면인 라자로의 소생에 대해 예언한 것이다. 이 일련의 사건은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됐고, 이를 예수께서는 이루신 것이다. 로사노 복음서의 채색 세밀화를 보면 구약은 신약에 의해 완성된다는 신학적 논의를 반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윤인복 교수
(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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