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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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리지 않은 돼지도 발병지 반경 10㎞까지 ‘예방 살처분’

현장 르포 / 경기도 연천 아프리카돼지열병 살처분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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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연천군의 한 돼지농장 모습. 이 농장에 살던 돼지 1800마리는 예방적 차원에서 모두 살처분됐다

▲ 살처분된 돼지들의 침출수가 유입돼 붉게 변한 마거천의 모습.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제공



15일 경기도 연천군의 한 돼지농장. 평소에는 시끄러웠을 농장이지만 기자가 방문한 날은 정적만이 흘렀다. 농장 입구는 ‘출입을 금한다’는 플래카드와 함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농장은 1800마리가 넘는 돼지를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 발병으로 농장의 돼지들은 모두 살처분됐다.

농장주 A씨는 모든 것을 달관한 듯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돼지들은 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어쩌겠습니까. 살처분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데요….” 짧은 대답을 마친 A씨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인천 강화와 경기 김포, 파주에 이어 연천까지 ASF가 확산했다. 이 병에 걸린 돼지는 치사율이 100다. 정부는 곧바로 살처분 카드를 빼 들었다. 특히 연천군은 보통 3km 반경의 가축을 살처분하는 것을 넘어 그 범위를 10km까지 확대해 ‘예방 살처분’에 나섰다. 이 때문에 발병지에서 10km 거리에 자리 잡고 있던 A씨의 양돈장 역시 예방 처리 대상에 포함됐다. 연천군 내에서는 A씨 농장의 돼지 외에도 약 16만 4000여 마리의 돼지가 방역 과정에서 살처분된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돼지 살처분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강조한다. ASF가 전염성이 높아 한번 발생하면 양돈산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WHO) 역시 ASF 발병 시 즉각 살처분할 것을 권고한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는 ASF 확진 판정이 나올 경우 해당 농가의 돼지는 물론 반경 3km 내 농장의 돼지들도 예방적으로 살처분(매몰처분)하거나 렌더링(고열고압처리)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대응이 과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별다른 매몰처리 대책 없이 모든 돼지를 죽이는 데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살처분 과정에서 침출수가 유출돼 하천으로 흘러드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 사고로 강물을 통해 ASF 바이러스가 확산하거나 식수가 오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높아졌다. 정부가 서둘러 하천에 유출된 침출수를 제거하고 수질 검사를 시행해 오염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불안감 진화에 나섰다. 실제로 매몰지 근처의 하천은 알려진 바와 달리 깨끗했다. 그러나 연천은 물론 파주에서도 침출수 유출을 우려하는 보도가 이어지는 등 불안 요소는 여전하다.



▨살처분만이 능사 아니다

살처분 위주 대응방식에 대해 동물단체를 중심으로 가축의 생명권을 경시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동물권행동 카라’(대표 임순례)는 성명을 통해 “바이러스 전파 경로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계적 살처분을 최선의 대책으로 내세우는 것은 생명경시의 모습을 보여준다”며 “생명 희생은 가능한 최소화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특히 대량 살처분의 배경으로 공장식 축산 시스템과 사회에 만연한 육식 중심 식문화를 지목했다.

교회 역시 공장형 축산 등 생명을 착취하는 문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공장형 축산과 무분별한 예방적 살처분 대응 등은 피조물에 대한 존중과 책임을 버린 행위라는 것이다. 교회는 사회교리 등을 통해 “피조물 등 세상에 대한 인간의 지배에는 자유의 남용이나 이기적인 착취가 있어서는 안 되며 그에 따른 책임 수행이 요구된다”(「간추린 사회교리」 113항)며 피조물에 대한 존중과 책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에 발맞춰 가축을 물건이 아닌 피조물로 대하며 생명 중심의 축산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안동교구 쌍호분회(분회장 진상국)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유기 순환 축산’이 대표적인 방식이다. 쌍호분회 농민들은 각 농가의 농사 규모에 맞게 소를 분산하고 볏짚과 쌀겨, 콩깍지 등을 사료로 이용하는 전통 방식으로 소를 기른다. 이어 소 배설물을 이용해 퇴비를 만들어 다시 농사에 사용하고 있다. 유기 축산을 시작한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쌍호분회 농민들은 전염병에 대한 걱정 없이 가축을 기르고 있다. 공장형 축산에서 나오는 대량의 배설물로 인한 환경 파괴 걱정에서도 벗어났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위원장 강우일 주교)는 생명 존중, 생태 보호 활동에 앞장서온 쌍호분회의 공로를 인정해 제14회 가톨릭환경상 대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반생명적 생산문화 극복을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의 노력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담당 안영배 신부는 “공장형 축산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라는 사회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며 “유기 축산 확대 등 생명 친화적 생산 노력의 확산은 물론 소비자들의 육식 중심 식문화 개선 등이 병행되어야 매년 반복되는 가축들의 대량 살상 등 죽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재진·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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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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