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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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소재의 대담하고 실험적인 작품에 그리스도교적 메시지 녹여내

[한국 가톨릭 미술 여성 작가들]나희균 크리스티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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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자연, 물성의 탐구.

나희균(크리스티나, 1932~) 화백의 작품을 대하면서 떠올리게 되는 단어들이다. 그의 작품은 평면 작업에서 네온, 금속을 이용한 입체 작품까지 다양하고도 혁신적이다. 이번 글은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주관, 한국 가톨릭 미술가 동영상 기록 사업으로 진행했던 나희균 화백과의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나희균 화백은 경기여고 재학시절 미술반 활동을 계기로 1950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6ㆍ25전쟁이 발발하면서 피란 생활과 집안이 몰락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53년 제2회 국전에서 작품 ‘가족’으로 입선해 재능을 인정받았고, 1954년 졸업 후 형부의 도움으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파리 에콜데 보자르에서 3년간 수학하고 귀국했다.

나 화백이 파리에 체류하던 시기에는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조르주 루오, 조르주 브라크, 페르낭 레제와 같은 현대 미술의 거장들이 활동했던 시기였고, 많은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당시 20대 중반이던 그는 여러 거장의 작품을 직접 감상하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나 화백은 인터뷰에서 “당시 조르주 브라크의 장인적인 마티에르와 시적인 표현을 많이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한 파리 유학 시기에 가톨릭에 입교해 1958년 세례를 받았다.

나 화백은 1959년 서울대 회화과 동기인 안상철 화백과 혼인해 서양화가와 동양화가로서 예술적 동반자의 길을 함께 걸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이 이들의 혼인 주례를 선 일화는 유명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의 조카이기도 한 나희균 화백은 대담하고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였다.


▲ ‘성체등’(1980년)은 빛이 보이면 희망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네온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특히 1970~80년대의 네온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나 화백이 네온을 사용하게 된 것은 그리스 태생의 미국 여성 작가 바르다 크리사(Varda Chryssa) 작품을 접하면서였다. 그는 “상업용으로만 쓰일 수 있다고 믿었던 네온이 예술적으로도 쓰일 수 있음을 깨닫고 충격을 받아 자신도 한번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나 화백은 ‘빛이 어둠을 밝히고 사람에게 참으로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 있어서 네온을 다루게 되었지만, 깨지기도 쉽고 오래 보관하기도 힘들어 매사에 조심해야 하는 네온 작업을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켜진 네온의 환하고 밝은 불빛은 사람들을 희망의 길로 인도해주는 상징과 같다고 하며 네온 작업으로 완성된 ‘성체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성당에 가면 감실에 빨간 등이 켜져 있죠. 그래서 네온을 사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네온의 색은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빨간색과 주황색으로 성체와 성작,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사람이 길을 잃으면 어둠 속에서 헤매게 되죠. 그런데 빛이 보이면 희망을 얻는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크고 작은 네온들을 사용하면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큰 사람들이 작은 사람들을 지탱해주는 세상의 모습을 그려보게 됩니다. 물론 작품을 할 때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선과 파이프의 조화만을 생각하며 작업했죠.”

1988년 작품인 ‘무명 순교자들을 위하여’ 역시 그리스도교 주제를 다룬 그의 대표작이다. 나 화백은 평신도에 의한 신앙의 전파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켜낸 우리나라 순교자들과 교회 역사, 그중에서도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순교자들이 보여준 깊은 신앙에 경의를 표하며 이를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작가는 당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건축자재, 파이프, 철판, 동선 등을 이용해 그림을 떠나서 보다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만들 때 정말 고생스러웠지요. 종이에 실제 크기대로 본을 그려서 종로상가 철공소에서 철판을 사와 집에서 모양대로 잘라서 구멍을 뚫어 붙이고 파이프를 끼우고 하면서 리드미컬하게 표현했죠. 어떤 사람은 악기냐고 묻기도 하는데… 내가 음악을 좋아해서 리드미컬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나희균 화백의 작품은 그리스도교 주제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그는 빛, 자연, 물질에 대한 탐구를 화두로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나 화백의 작업방식 안에는 그리스도교의 메시지가 담긴 작품들이 공존하고 있다.




나희균 화백은 ‘아브라함의 하느님’(1997)으로 1998년 제3회 가톨릭 미술상 회화 부문 본상을 받았다. 작가는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에 강렬한 인상을 받아 이를 그림으로 완성했다. 한지에 동양화 물감으로 그린 이 작품에서 아브라함은 3개의 천막, 이사악은 번제의 장작, 야곱은 우물로 각각의 상징을 나타내고 있다.



▲ 십자가의 길 14처, 포천시 운천성당 소장. 구상적 표현의 회화로 나희균 화백이 성당에 남긴 첫 작품이다.



나 화백이 성당에 남긴 첫 작품은 그가 70대에 들어서 작업한 춘천교구 운천성당 십자가의 길 14처이다. 구상적 표현의 회화로 완성된 이 작품에 대해 그는 “당시 많이 서툴고 제대로 그리는 것이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글씨나 그림은 그 사람 자체이다. 신앙의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것이지 십자가를 그렸다고 존경받는 것은 아니다”라며 성미술에 있어서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때 신앙생활에 어려움도 있었다”는 나 화백은 “로마노 과르디니의 저술을 통해 기도에 대해 묵상하고 신앙생활을 지탱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신앙도 화초와 같아서 물을 주고 키워야 자랄 수 있고 내버려 두면 시들게 된다”며 “성경과 교회사에 대해 꾸준히 공부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이 우러나와서 작업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진정한 성미술이 완성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그의 작품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

나 화백은 2017년 첫 부부전인 ‘오브제의 재발견, 안상철ㆍ나희균의 입체 작품전’과 2018년 환기재단 선정 작가전 ‘빛의 공간, 그리고 자연’전에 이어 2019년 4월에 14번째 개인전을 열어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수경 교수(인천가톨릭대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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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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