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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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11) 제9장 식별-신소희 수녀가 설명하는 ‘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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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이하 권고)는 마지막 제9장에서 선택의 순간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식별’을 주제로 올바른 신앙의 길을 제시한다.

권고는 첨단 기술의 발달로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현실을 조명하고, 그 안에서 참된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지 밝힌다. 동시에 젊은이들과 동반하는 어른들이 지녀야 할 자세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20년 가까이 ‘영적 식별’을 연구하고 가르쳐 온 신소희 수녀(성심수녀회)와 함께 권고가 말하는 ‘식별’을 되짚어 본다.


■ 식별, 하느님의 일과 세속의 일

“얼마 전, 한국사회를 뒤흔든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주동자는 10대까지 포함된 젊은 청년들입니다. 높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지만, 가치 기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보다 약한 인간을 쾌락의 도구로밖에 보지 않았습니다. 극단적인 사건이지만, 통신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 눈여겨봐야 할 내용입니다.”

신 수녀는 “우리는 둘 또는 셋의 가상현실 속에서 동시에 교류하고 있습니다. 식별의 지혜가 없다면, 우리는 모두 지나가는 유행에 좌우되는 꼭두각시가 되기 쉽습니다”(권고 279항)라는 권고 내용을 해석하며 이 같은 우려를 표했다.

권고는 수많은 정보가 오가는 오늘날 현실의 상황 안에서 하느님의 일과 세속의 일을 구분하는 식별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신 수녀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식별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라며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보면 그 기준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밝혔다. 즉 하느님의 일은 예수님이 행한 것처럼 생명을 살리고, 용서하고, 화해시키는 것이며 대척점에 있는 세속적인 일은 실용주의, 효용주의, 과도한 경쟁, 가짜뉴스 생산과 유포 등 ‘자기중심적 태도와 선택’이다.

권고는 하느님의 일과 세속의 일을 구분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로 ‘양심’을 말한다.(권고 281항) 신 수녀는 양심을 ‘자기를 비추는 거울’에 비유하며 “자기중심적이 되다 보면 어느 순간 ‘이게 뭐지?’라는 질문과 함께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면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는 찰나의 순간을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양심성찰은 죄에 대한 반성이나 윤리적 기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행복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랑의 이끌림이라고 밝혔다.

“양심의 형성은 온 생애에 걸쳐 이뤄지는 여정입니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선택에 바탕이 된 기준들과 그분 행동에 담긴 의향들을 본받으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기르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권고 281항)


■ 성소 식별, 침묵과 기도 안에서

권고는 성소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식별의 한 형태라고 소개하며 무엇보다 고독과 침묵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성소 식별의 기로에서 고독과 침묵이 왜 중요할까.

신 수녀는 “수녀원 입회 전 교리교사를 하면서 먹고 마시는 데 참 많은 시간 보낸 것 같다”며 “그런 와중에 예수님과 함께 고요히 혼자 있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어른들의 조언에 따라 침묵 가운데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점점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살아있는 분으로 느껴지면서 그 분을 따르고 싶은 열망이 커졌고 어느새 그분과의 관계성에 투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떠한 식별이든 내면에 귀 기울이고 싶은 열망이 생긴다면, 이는 성령께서 내면으로 인도하는 광야에서의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권고 역시 침묵은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삶으로 이끄는 부르심이라고 말한다.(284항)

“침묵하고 기도하다 보면 전망이 달라집니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 동료에 대한 이해, 세계관 등이 예수님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고 점점 닮아갑니다. 예수님과 동질화 되는 것이죠. 피상적인 취향이나 감정들 너머에 있는 마음의 깊은 이끌림과 궁극적 지향에 기울이게 되며,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 동반자들에게… 경청하라!

권고는 침묵과 기도 가운데 새로운 관계성으로 나아갈 것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동반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젊은이들의 성소 식별에 동반할 수 있는 이들로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 인생의 행로를 식별하도록 도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입니다.”(권고 291항)

신 수녀는 개인 면담을 진행할 때 내담자가 내적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거룩한 땅’에 비유했다. “동반자는 동반을 청하는 이가 선택을 위해 고심하며 기도하는 과정을 나누는 시간과 공간, 즉 거룩한 땅에 함께 서 있게 됩니다. 그 거룩한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동반자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영적 지도자 훈련 과정에서는 경청을 방해하는 자신의 습성을 알아차리도록 지속적으로 훈련한다. 신 수녀는 “동반하다 보면 본능적으로 판단하면서 가르치려고 하거나 집중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경청해 주려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가장 기본적인 일이지만 참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경청은 하느님의 은총과 세속의 유혹을 식별할 수 있도록 돕는다.(권고 293항) 아울러 참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디인지도 식별하게 된다.(권고 294항)

신 수녀는 “동반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자질이 필요하다”며 “교회 전통 안에 축적돼 있는 영적 식별에 관한 지식을 이론적으로 습득할 때, 성령께서 하시는 일과 세속의 유혹을 구분하며 대화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동시에 인간은 매우 복잡한 역사와 과정 안에 던져져 있어 동반자 스스로 자기이해가 깊은 사람이 돼야만 다른 사람들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인생을 알면 존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과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습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들은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한편 권고는 이 모든 식별의 중심을 예수 그리스도와의 우정에 있음을 밝힌다.

“모든 율법과 모든 의무를 떠나 가장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택하라고 제시하시는 것은 바로 당신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마치 친구들이 순수한 우정으로 서로를 따라가고 찾고 함께 지내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에서 맛보는 실패조차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이 우정을 체험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권고 290항)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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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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