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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흘리는 광주 시민들 지키고, 진실의 목소리 높인 가톨릭교회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 한국 교회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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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엄군 공수부대원들이 체포한 이들을 총으로 위협하며 연행해 가고 있다. 당시 계엄군은 평화 시위에 무력으로 맞섰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 올해로 40년을 맞았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과 시민들의 평화 시위였지만,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이를 ‘내란’으로 호도하며 광주에 계엄군 공수부대를 보내 무력으로 대응했다. 광주에서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약 열흘간 벌어진 일들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상 규명이 완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톨릭교회, 특히 광주대교구는 5·18의 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서며 5·18 정신을 이어왔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아 5·18을 둘러싼 교회의 활동과 역할을 되짚어 본다. 5·18 기념재단에서 발간한 「5·18의 기억과 역사 5- 천주교편」과 논문집 「가톨릭과 5·18」,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의원회에서 펴낸 「광주 의거 자료집- 천주교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등을 주로 참조했다.



1980년 5월 18일 전남대 앞에 모인 대학생들이 중심이 된 시위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10ㆍ26 사태를 거쳐 신군부의 12ㆍ12 군사 반란으로 전국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학생들 시위가 잇달았던 시기였다. 이날 광주에서 달라진 점이라면 시위를 진압하던 이들이 경찰이 아닌 군인으로 바뀌었던 데 있다.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확대한 신군부는 전남대, 조선대, 전북대 등에 계엄군 공수부대를 파견하고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무고한 시민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인들은 광주 시내 곳곳에서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때리고 짓밟고 연행해 갔다. 공수부대가 휘두르는 곤봉과 대검엔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다. 삽시간에 거리는 아수라장이 됐다.

학생들 시위에 무관심했던 시민들도 군인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분노하며 시위대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늘어나자 공수부대는 총격도 서슴지 않았다. 시민들도 총격에 맞서 무장하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22일 광주 외곽으로 후퇴했다가 26일 탱크를 앞세워 다시 시내로 진입해, 27일 전남도청에 끝까지 남은 이들과 교전 후 시위대를 진압했다.


▲ 시위대를 위해 주먹밥을 만들어 온 한 여성이 시위대에게 밥을 돌리고 있다. 출처=「1980년 광주민중항쟁 기록사진집 오월광주」


시민들과 함께한 사제들

광주 시민들은 분노했지만, 한편으론 두려워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군인들의 무자비한 대응은 울분과 공포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사제들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서 젊은이들과 시민들이 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사제들은 평화적 수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5월 21일에는 장백의를 입고 거리 행진을 벌이려 했지만, 계엄군의 사격에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 계림동본당 주임 조철현 신부와 남동본당 주임 김성용 신부, 북동본당 주임 정규완 신부 등은 광주사태수습시민대책위원회에 참여하며 계엄사령부와 협상을 이끌고 시민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회수하는 데 앞장섰다.

끝까지 폭력으로 맞대응하던 시민들도 있었지만, 사제들은 비폭력 저항을 밀고 나갔다. 5월 26일 새벽 시내로 들어오는 계엄군 탱크에 맞서 대책위원들과 ‘죽음의 행진’을 벌인 김성용 신부는 발포 태세를 갖춘 탱크 앞에서 계엄군과 대면하며 “탱크를 원위치로 물리라”고 요구했다. 본당에서 사목하던 신부들은 군인들을 피해 달아나는 이들을 사제관에 숨겨주고, 먹을 것을 내주고 다친 이들을 돌봐줬다.

당시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는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바쁘게 움직였다. 교구 사제들과 긴밀히 접촉하면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에게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알리고, 최규하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며, 계엄사 전남북분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군의 사과와 수습을 요청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주교의 마음 한구석은 늘 무거웠다. 그는 훗날 5·18을 회고하며 시내 한복판에 있던 가톨릭센터 내 교구청 집무실에서 군인에게 폭행당하고 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을 보고도 두려움에 나가보지 못한 것을 두고 수없이 후회했고 하느님께 용서를 빌었다고 했다.

이러한 마음의 빚은 5·18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살아남은 이들 모두가 간직했던 부채이자 죄책감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진실을 알리고 5·18 정신을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 광주대교구 5·18 기념성당인 남동성당에서 5·18 36주년 기념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진실 알리기에 앞장선 가톨릭교회

5·18 진압을 주도했던 신군부는 5·18을 불순 정치 집단의 조종을 받은 폭도들이 사회 혼란과 국가 전복을 목적으로 일으킨 광주폭동사태로 규정했다. 정부 발표 이외에는 5·18을 언급하거나 보도하지 못하도록 했다. 5·18 민주화 운동을 은폐하려는 시도는 신군부가 5·18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그 가운데서도 꾸준하고 용기 있게 진실의 목소리를 낸 것은 가톨릭교회였다. 윤공희 대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가 광주 상황을 전했고, 이를 들은 김 추기경은 전두환과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유혈사태를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윤 대주교는 전국 신자들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편지를 쓰며 광주사태를 알렸다. 광주대교구 사제단은 6월 ‘광주사태에 대한 진상’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정부의 거짓 발표와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광주대교구 사제단 성명에 각 교구 정의구현사제단은 이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진실 알리기에 동참했다. 김 추기경은 한국전쟁 30주년을 맞이해 발표한 시국 담화문에서 “저의 소신을 밝힌다”면서 광주 사태를 첫 번째로 언급하고 광주 시민의 슬픔을 위로하고 광주사태가 진실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해결되기를 희망했다.

가톨릭교회는 5·18에 연루돼 수감된 이들의 석방과 사면을 위해서도 앞장섰다. 5·18 관련자들에게 사형과 무기 징역 등이 선고되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정형달 신부는 1981년 1월 광주사태의 진실을 알리며 5·18 관련자 사면 요구 서명운동을 전개했고, 4000여 명의 서명 명부를 3월 대법원 재판부에 전달했다. 구속자 가족들은 김 추기경 집무실을 점거해 김 추기경에게 도움을 호소하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구속된 이들 중엔 사제도 포함됐다. 계엄당국은 조철현ㆍ김성용 신부를 체포하기 위해 현상금을 걸고 지명수배령을 내리기도 했다. 광주대교구 사제 40여 명 가운데 8명이 수감됐고, 서울대교구 사제들도 보안사에 잡혀가 취조를 받았다.



5·18 정신 계승과 확대

당시 신군부는 종교의례마저도 집회로 보고 금지했다. 그러한 때 광주대교구에선 5·18을 기념하는 미사를 시작했다. 5월 31일 목포 북교동성당에서 시작된 5·18 미사는 6월 23일 광주 계림동성당으로 이어졌고 이후 사제들은 월요일마다 주로 남동성당에서 5·18 미사를 봉헌됐다. 5·18 1주년 기념미사는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도 열렸다.

5·18 정신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진실과 정의, 연대와 나눔, 평화다. 왜곡된 현실에 맞서 진실을 알리고, 불의에 맞서 정의를 외치는 일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도 일치한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나서 헌혈하고, 시위대에게 밥을 제공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서 쓰러진 이웃을 돕고, 폭력에 맞서 평화 시위를 주도한 광주를 은우근(광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생명공동체’로 이름 붙였다.

5·18을 끊임없이 기억해 온 광주대교구는 2005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25주년을 맞아 아예 5월 18일을 교구 기념일로 정하고, 교구 모든 성당에서 5·18 기념 미사를 봉헌하도록 했다. 또 남동성당을 5·18 기념 성당으로 지정했다. 30주년이 되는 해에는 광주인권평화재단을 설립하고 1980년 5월 광주와 비슷한 아픔을 겪는 해외 공동체와 연대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 독재 정권의 탄압을 피해 태국으로 피신한 난민들, 스리랑카 내전에서 패배해 쫓겨난 사회적 약자 등을 지원해 왔다.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최근 인터뷰에서 “5·18 민주화 운동의 정신이 광주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면서 “5·18이 지닌 민주화, 평화, 인권, 통일의 가치가 세계인의 가치로 확산돼야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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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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