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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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대축일 특별기고] 하느님과 우리를 결합시키는 사랑의 끈인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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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성부와 성자를 묶는 사랑의 끈이다. 또한 성령은 하느님과 우리를 묶는 사랑의 끈이다. 하지만 성령은 이해하기 어려워 왜곡되거나 체험에만 집착하는 모습이 교회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서로가 거리를 둬야 하는 이 때, 올바른 성령 이해로 하느님과의 거리를 좁히는 성령 강림 대축일을 맞이할 수 있다. 인천교구 명형진 신부(복음화사목국 선교사목부 부국장)의 글을 통해 성령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 코로나19로 인한 관계의 단절 시대에 맞이하는 성령 강림 대축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 입자 하나가 세상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뜻하지 않은 불청객으로 찾아온 코로나19는 함께 사는 세상에서 ‘함께함’을 이용해 자신의 세력을 과시했다.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거리두기’였다. 함께함이 문제였으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둬야 했다. 마스크 쓰기는 이제 행정명령이라는 사회적 규칙으로까지 정해졌고,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없게 됐다. 마스크로 가린 얼굴로 우리는 서로 간에 간격을 둬야 했다.

코로나19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거리두기’는 ‘마음의 거리두기’로 변질될까 우려된다. 바이러스가 가져온 위기는 모든 사람에게 위협으로 다가왔지만 피해는 차별적으로 닥쳐왔기 때문이다. 어려운 사회 계층은 더욱 극심한 어려움에 처하게 됐고, 그들에게 등을 돌린 것만 같은 세상 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마음의 거리마저 멀어지게 만드는 관계의 단절을 낳고 있다.

바이러스가 바꿔 놓은 곳은 비단 세상만이 아니었다. 주님께로 ‘불러 모인’(ek-klein) 공동체인 교회의 ‘모임’은 바이러스 확산의 최전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유래 없이 공동체 미사를 중단해야만 했다. 하지만 공동체 미사 중단의 상황에서도 신자들은 저마다 하느님과 맺은 관계를 이어 나가고자 노력했다. 그 노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사목자들과 봉사자들도 애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공동체 미사가 재개되고 있는 시점에서, 코로나19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냉담교우들에 대한 우려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교회 상황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기에 성령 강림 대축일을 맞이한다. 성부와 성자를 사랑으로 묶으시고, 나아가 우리 서로가 사랑으로 일치할 수 있도록 묶어 주시는 일치와 사랑의 끈인 성령께서 우리에게 내리심을 기념하는 대축일이다.

바이러스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하느님과의 거리두기가 될 위기에 처한 지금, 우리를 당신과의 끈끈한 관계로 초대하시는 성령은 어떤 분이신지 알아 가며, 성령 안에서 하느님과 더욱 가까운 사랑을 나누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 성부와 성자의 사랑의 끈, 성령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한 본체(本體)로서, 성부와 성자와 같은 하느님이시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제3위(位)이시다.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는(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성령께서는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창조의 순간에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리고 ‘때가 찰 때’까지 비록 숨겨진 상태처럼 보이지만,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당신 사랑으로 묶으신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도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신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삼위(三位) 사이에 이룬 사랑의 관계를 우리에게 먼저 드러내 보여 주셨다. 사랑의 원천으로서 성부는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며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성부와 사랑을 나누신 하느님이시다. 아버지에 대한 순종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바치셨던 사랑에서, 우리는 성부와 성자의 사랑의 관계를 확인한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를 결합하게 하는 사랑의 끈, 성부와 성자가 일치를 이루는 그 자리에 바로 성령이 계시다. 성부와 성자의 상호 사랑이고 공통의 사랑인 성령은 세 위격을 한데 묶는 끈이며, 성령으로 결합된 사랑의 관계는 완전한 일치를 이룬 사랑의 관계다.


■ 하느님과 인간을 묶는 사랑의 끈, 성령

삼위의 사랑은 삼위 안에만 가둬져 있지 않다. 그 사랑은 성령 안에서 우리를 향해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영광을 받으실 때가 되자, 그전까지는 충분히 드러내지 않으신 성령께서 오실 것을 약속하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28~729항) 성부께서는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시어 다른 ‘파라클리토’(Paracletos)인 진리의 영을 약속하신다. 성령의 호칭인 ‘곁으로 불려온 분’(ad-vocatus)이라는 뜻을 지닌 ‘파라클리토’는 보호자, 변호자라는 뜻이다. 성령께서는 우리 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보여 주고, 그분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시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도록 정신을 열어(737항) 주시는 보호자이며 변호자이시다. 그리하여,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시며, 그리스도의 신비를 우리들 사이에 현존하게 하고 실현케 하시며, 우리들을 그리스도와 결합하게 하신다.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로 변화를 이루는 그 자리 한 가운데에서,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며, 우리가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셔 서로 한 몸을 이루고 사랑하며 살도록 우리 가운데 자리하신다.


■ 성령을 받아들이는 균형 있는 자세

성령을 표현하는 ‘영’(靈)이라는 용어는 히브리 말 ‘루아’(Ruah)의 번역으로, 본래 숨결, 공기, 바람 등을 의미한다.(691항) 성령, 곧 하느님의 숨결이며 하느님의 영인 새롭고도 초월적인 존재인 그분은, 우리로서는 삼위의 하느님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하느님의 위격이다. 창조로부터 성령 강림 이전까지 성령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기에 성령은 성령의 ‘활동’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성령을 물, 불, 손가락, 비둘기 등의 상징으로 표현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교회 역사 안에서는 성령에 대한 오해들이 싹트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성령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종종 우리 주변에 있다.

한편에서 성령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같은 하느님일 수 없으며, 본질이 같지 않다고 주장하며 교회로부터 단죄를 받은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최근 한국의 유사종교 이단 분파에 이르기까지, 성령은 ‘하느님을 만드는 영’으로서 구천(九天)을 떠돌다가, 영험하다는 이를 택해 그 위에 내려 그를 하느님으로 만드는 존재라고 곡해하는 이들이 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의 일치를 분리하는 이들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성령의 활동을 통해서만 우리는 성령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성령의 활동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이들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모든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기 위해 각 지체에게 선사하신 은사(1코린 12,7; 14,4)에 집착해 본래 목적은 잊은 채, 오직 축복을 많이 받겠다는 욕심에서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상식을 넘어선 기이한 행동들을 하는 이들도 있다.(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올바른 성령 이해」 56쪽) 우리를 삼위일체의 완전한 사랑으로 묶어주시는 사랑의 끈을 잊어버린 이들의 태도다.


■ 사랑으로 결합된 관계를 이룬 성령 강림

완전한 사랑의 끈으로 결합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가 단절될 수 없듯, 우리를 초대하신 하느님의 사랑과 그 사랑에 응답한 우리의 신앙이 이루는 사랑의 관계는 단절될 수 없다. 또한 당신의 몸을 모시고 ‘파견’(missio)된 그 자리에서도 이웃 사랑의 관계는 단절될 수 없다.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많은 것을 바꿔 놓은 지금, 사랑으로 결합된 관계를 이룬 성령 강림으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며, 그 사랑으로 주님과의 거리도, 이웃과의 마음의 거리도 좁혀 나가는 기회가 돼야겠다.




명형진 신부(시몬·인천교구 복음화사목국 선교사목부 부국장)
2013년 사제품을 받고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에서 2017년 교의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인천가톨릭대학교에서 종말론, 은총론, 성사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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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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