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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평화의 길… 용서와 사랑으로 70년 전쟁 역사 끝내야

[한국전쟁 70년, 갈등을 넘어 화해로] (22·끝)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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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헌 주교는 “상호존중과 일치의 문화가 우리 안에서부터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가 또다시 멀어졌다. 남한 탈북단체는 북으로 대북전단을 뿌려댔고, 북한 정부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평화에 성큼 다가섰나 싶었는데 결국 원점이다. 분명히 함께 내디딘 발걸음이었는데 어느샌가 혼자 남았다. 북을 향한 분노와 좌절이 섞인 목소리에 다시 힘이 실리고 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의정부교구장) 주교는 격앙된 사회 분위기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 주교는 “그동안 평화를 향해 가는 길은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었다”며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에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내와 상호 존중,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하고 또 강조한 가치이자 평화를 향해 가는 정도(正道)였다. 한국전쟁 70년 특별기획을 마무리하며 17일 이기헌 주교를 만났다.



- 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편에 보면 ‘저희의 햇수는 칠십 년 근력이 좋으면 팔십 년’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인간의 한 생애를 보통 칠십으로 보고 있는 것이죠. 한국전쟁이 난 지 올해가 70년이지 않습니까. 한 생애가 끝날 때이니, 전쟁도 끝을 내야 할 때입니다. 칠십 년이란 세월을 종결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끝이 나야 또 새롭게 출발하지요. 다음 세대가 새로 출발하려면 전쟁을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남북관계가 또 어렵게 됐습니다.

“다시 먹구름이 끼었습니다. 평화를 향한 길이 참 어렵지요. 단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습니다. 위기는 늘 있었고,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항상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실망하지 말고 계속 대화를 하며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그동안의 대화에도 신뢰는 쌓이지 않아 보입니다.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사실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이었습니다. 지난 2년간 이뤄왔던 한반도 평화가 단 몇 초, 몇 분 사이에 무너져 내린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70년간 서로 갈라져 지내온 세월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월의 한계로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합니다. 결코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대화를 나누고 외교적인 지혜를 발휘할 때입니다.”



- 남북문제를 풀어나가고 한반도 평화를 향해 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가톨릭교회는 평화의 원리로 상호 존중과 다양성 안의 일치를 강조합니다. 70년이란 세월 동안 남과 북이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 가운데서 일치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용서가 선행돼야 하겠지요.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지난날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 시대를 맞을 수 있습니다.”



- 용서가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그래서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에페소서 2장 14절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라고요. 예수님께서는 서로 다른 민족도 하나로 만드신 분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한민족 한 형제이지 않습니까. 적개심을 허무신 평화의 그리스도를 따라서 우리 신자들이 먼저 용서하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 주교는 올해가 한국전쟁 70주년이면서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합의한 6ㆍ15 공동선언 20주년임을 상기했다. 당시 남북 정상은 6ㆍ15 공동선언문을 통해 남북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면서 경제 협력, 교류 활성화, 지속적인 대화를 해나가기로 약속했다. 이후 이뤄진 판문점선언, 평양선언도 6ㆍ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이어간다고 볼 수 있다.



- 남북문제에서 미국과 중국을 배제할 수 없지 않습니까.

“국제 사회와 외교 관계를 생각하면 현실적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문제를 이용하는 미국과 중국의 존재는 한반도 평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북한에선 지난 하노이회담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아무 결실 없이 끝나 무척 실망했을 겁니다. 북한은 그 실망을 남한에 돌리고 있죠. 너무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것이죠. 우리도 이제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 어떤 모습을 말입니까.

“그동안 남북관계에 실무적으로 앞장섰던 분들이 최근 들어 우리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전문가들도 한국의 입지 강화를 위한 요건으로 내부 단합과 국제사회의 경제력을 꼽습니다. 경제력과 국제 위상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봅니다. 이제 노력할 일은 우리 사회가 내부 갈등과 대립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 이념과 진영 논리로 남북문제에 대해선 내부 갈등과 대립이 더 격화되는 양상입니다.

“우리조차 분열되고 일치를 이루지 못하면 되겠습니까. 일상에서부터 일치와 평화를 이뤄나가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절실히 필요한 상호존중,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는 우리 안에서부터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우리 주변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주민, 외국인 노동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요.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웃과 잘 지내고 있는지, 학교나 일터에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있는 지도요.”



이 주교는 우리 사회에서 존중과 일치의 문화가 확산될 때, 남북관계도 한결 나아지리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자주 만나 교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년 한국 주교단이 처음으로 북한에 방문했을 때 저도 동행했습니다. 북한은 부모님 고향이기도 하고 평양은 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남북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관련 사목도 해왔지만 막상 북한에 가니 낯설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과 낯섦이 풀리는 걸 느끼며 만남과 교류가 중요하다는 걸 체험했습니다. 힘들더라도 만나고 서로 알아가면서 대화해야 합니다.”



- 가톨릭교회는 대북지원에 앞장서 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변한 것도 없는데 왜 계속 도와주느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대북지원은 북한의 변화를 바라고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북한 형제를 도와준다는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진 일입니다. 형제를 돕고 살려야 하는 데 다른 이유나 대가가 있겠습니까. 교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북한이 코로나19와 여러 제재로 많이 힘들다고 알고 있습니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은 계속돼야 합니다.”



- 한반도 평화를 위해 밤 9시 주모경을 바치는 기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도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기도는 마음을 모아 함께한다는 연대의 뜻이기도 합니다. 지난 방북 때 주교님들과 북한 신자들과도 밤 9시에 함께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분들이 지금도 밤 9시가 되면 기도를 바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밤 9시 기도운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 주교는 기도 운동과 더불어 교회 안에서 평화 교육이 꾸준히 이뤄지기를 당부했다. 또 각 본당이 신자들에게 평화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전달하고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끄는 평화 교육의 장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가능성에 대해서는 “코로나19로 당분간 사정이 여의치 않겠지만, 교황님의 북한 방문은 언제나 바라고 있는 일이며 성사된다면 한반도 평화에 큰 힘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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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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