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농마국수·인조고기 맛보며 탈북민과 어울려 사는 것 ‘작은 통일’

탈북민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작은 북한’ 인천 논현동을 찾아서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인천 논현동 통일동산에 세워져 있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비.

▲ 북한 음식점 사장 최은옥씨가 인조고기 밥을 만들기 위해 밥을 푸고 있다.

▲ 최은옥씨의 어머니가 농마국수를 만들기 위해 감자전분을 반죽하고 있다.

▲ 농마국수와 인조고기.

▲ 인천 남동구 청능대로 상가 건물에 자리한 ‘천주교 인천새터민지원센터’. 센터는 탈북민의 남한 사회 정착을 돕고 남북한 주민이 함께하는 통일 교육 등을 제공하고 있다.

▲ 통일동산 소나무에 걸린 이름표. 탈북자 이름과 북에 있는 가족, 고향이 적혀 있다.



북한 이탈 주민은 ‘미리 온 통일’이라 불린다. 이들이 남한 사회에 정착하고 융화되는 과정이 작은 ‘통일’이기 때문이다.

인천광역시 남동구는 전국 시군구 가운데 북한 이탈 주민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3월 말 현재 이곳에 사는 북한 이탈 주민은 2036명. 전체 국내 거주 탈북민(3만 1120명)의 6.6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논현동에 산다. 임대 아파트가 많고 남동공단이 가까운 까닭이다. 6ㆍ25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한발 앞서 통일을 맞은 인천 논현동을 찾았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인천 남동구 논현동

‘작은 북한’이라는 별명이 붙은 인천 논현동이지만 첫인상은 그저 평범했다. 대형 할인점과 고층 빌딩 등 여느 도심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특색이 확연한 중국 교포나 다문화집단 거주 지역과는 구별되는 면모였다. 북한 이탈 주민과 한국인이 같은 언어ㆍ문자를 쓰니 당연한 일이었다.

‘통일 동산’은 논현동이 북한 이탈 주민 밀집지역이라는 특성을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인천 남동구가 북한 이탈 주민들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2012년 조성했다. 한반도 모양 1391평 부지에는 탈북민들이 손수 심은 소나무 120여 그루가 있다. 나무에는 심은 사람의 이름과 북에 있는 가족, 고향이 적힌 이름표가 걸려 있다.

통일 동산은 경색된 남북 관계처럼 쓸쓸한 인상을 줬다. 코로나19로 정자는 폐쇄됐고, 나무에 걸린 이름표는 낡아 보였다. 찾는 이도 거의 없었다. 주변을 산책하는 주민 한둘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3년 전 이사 왔다는 이정순(68)씨는 “그냥 걷기 좋은 공원이라고 여겼다”며 “탈북자가 여기 많이 사는지도 모르겠다. 만날 기회도 없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에 산다는 사실은 알지만, 일상에서 북한 이탈 주민과 만날 일이 적다’는 게 논현동 주민들에게서 공통으로 나오는 증언이었다.



교류의 장이 없는 무풍지대

북한 이탈 주민들도 남한 사람들과 일상에서 어울릴 기회가 적다고 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다양했다. 북한 이탈 주민 A(41, 남)씨는 “우리는 살기 위해 남한에 내려온 것”이라며 “생계유지가 우선이다. 어울리는 것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남한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친해지기 꺼려진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함경북도 무산에서 온 B(62, 여)씨는 “남한 사람은 마음의 문을 잘 열지 않는다”며 딸이 남한 사람과 결혼하면서 겪은 아픈 기억을 토로했다. 며느리가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시댁에서 냉랭한 태도를 보이며 결혼을 취소하겠다는 태도까지 보였다는 이야기다. 본인 역시도 인간관계에서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했다고 밝혔다. 문화적 차이와 낯섦 속에서 남북한 사람들은 좀처럼 섞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 같은 배경에는 별다른 ‘교류의 장’이 없는 이유도 컸다. 양강도 혜산 출신 C(70, 여)씨는 “예전에 인천하나센터에서 하나청춘대학 노래교실을 열었을 때는 남북한 노인들이 재밌게 지낼 수 있어 좋았다”며 회고했다. 이어 “지금은 그런 자리가 없어 아쉽다. 그런 장이 또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화합의 가교인 북한 음식점들

북한 음식점은 현재 남한 사람들이 북한 이탈 주민과 교류할 수 있는 장소다. 사회적 시선에 민감한 북한 이탈 주민들이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정체성을 드러낸다. 논현동에는 ‘호월일가’와 ‘국화네 맛집’, ‘북한 왕찹쌀 순대’ 등 북한식당이 3곳 있다. 북한 이탈 주민이 많이 사는 아파트 단지 상가에 위치한다.

북한 식당에서는 양강도와 함경북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주요 메뉴는 농마국수와 두부밥, 인조고기(콩고기)다. 농마국수는 남한에서는 함흥냉면으로 불리는 음식이다. 감자전분으로 만든 쫄깃한 면 위에 매콤한 다진 양념이 얹혀 새콤달콤하다. 두부밥은 유부초밥처럼 두부 속에 밥을 채운 음식이다. 인조고기는 기름을 70 짜낸 콩을 띠처럼 잘라 그 안에 밥을 채워 먹는다. ‘고난의 행군’이 남긴 유산이다. 식감은 질긴 듯 차지고, 맛은 심심해 매콤한 양념이 필요하다. 쉰 떡과 찹쌀 순대, 보신탕 등도 인기가 많다.

북한 음식점 고객 가운데 40는 남한 사람이다. 그 중엔 당연히 단골도 있다. 소래포구 근처에 사는 논현동 주민 정혜자(62)씨는 열흘에 한 번꼴로 북한음식을 먹으러 온다. 그는 “논현동에 탈북자가 많이 산다 해도 평소 교류할 기회는 없었다”며 “식당에 다니면서부터 대화도 하고 친분도 맺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 왕찹쌀 순대 사장 D씨는 “남한 단골들과 평소 친하게 지낸다”며 북한 음식점이 남북 화합의 가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옆 테이블에 앉은 남북한 사람들이 술잔을 맞대고 연락처를 알아가는 일이 잦다”며 “음식에는 종교도 국적도 없다. 음식을 통해 서로 알아가고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남한 사람들이 단순한 호기심보다는 이해와 존중의 태도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호월일가’를 운영하는 최은옥(40)씨는 “남한 손님들이 평소 무시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며 “이해가 안 가는 사소한 걸로 문제 삼을 때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탈북민들의 보금자리 인천새터민지원센터

탈북민에게는 지역 사회의 섬세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인천교구가 운영하는 인천새터민지원센터는 따스한 마음으로 탈북민을 보듬고 있다. 마침 센터를 방문했을 때 사랑의 씨튼 수녀회 수녀들은 북한 이탈 주민 취약 가정에 반찬 배달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센터는 평소 새터민과 그 자녀를 위해 학습ㆍ심리 정서 지원을 하고, 부모교육, 가족 나들이와 문화 체험 등도 지원한다. 또한, 북한 이탈 주민 신자를 위해 정기적으로 신자 모임을 하고 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신부 주례로 미사를 봉헌한다. ‘평화더하기교실’을 통해 남북한 주민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자리도 마련한다. 거점 본당인 논현동본당에서는 센터를 물심양면 돕고 있어 지역 사회 안에서 교회가 공헌하는 바가 컸다.

사선을 넘어 낯선 땅에 정착한 외로운 북한 이탈 주민들. 이들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열쇠는 존중과 관심 그리고 사랑이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0-06-2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0

마태 9장 13절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