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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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열두 제자 중 첫 순교자이자 스페인의 수호성인

성 야고보 사도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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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 야고보 사도는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 사도의 형이다. 성격이 불같아서 주님으로부터 ‘천둥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으로 활동하며 이스라엘뿐 아니라 스페인 북부 지역까지 복음을 선포하다 42년께(또는 44년께) 순교했다. 그림은 루벤스가 1613년에 그린 ‘성 야고보 사도’ 작품이다.



7월 25일은 성 야고보 사도 축일이다. 그리고 내년은 7년마다 돌아오는 야고보 사도 성년이다. 축일을 맞아 성경과 전승이 전하는 야고보 사도를 알아본다.



먼저,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열둘을 뽑아 사도로 세우신 이야기(마태 10,1-4; 마르 3,13-19; 루카 6,12-15)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시다 날이 밝자 제자들을 모으신 다음 그들 가운데 열둘을 뽑으십니다. 그런 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지내시며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는 등 여러 능력을 주시면서(마태 10,5-15; 마르 6,7-13; 루카 9,1-6)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을 모두 알려줍니다.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6,14-16)

루카 복음서 저자가 알려준 대로 열두 사도 가운데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도가 둘 있습니다.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의 형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둘을 구별하기 위해 요한의 형을 ‘큰(大) 야고보’, 다른 야고보를 ‘작은(小) 야고보’라 부릅니다.(마르 3,17-18 참조) 7월 25일 축일을 맞는 사도는 큰 야고보입니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순례길의 주인공이죠.



성경 속 야고보

앞서 밝힌 대로 복음서는 큰 야고보 가족에 관해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큰 야고보의 아버지는 제베대오이고 어머니는 살로메입니다. 그의 동생은 주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제자인 요한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을 지닌 제베대오 이름처럼 이 집안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가문이라 할 수 있죠.

야고보와 요한은 시몬 베드로의 동업자(루카 5,10)로 어부였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을 부르실 때 야고보는 아버지 제베대오와 동생 요한, 삯꾼들과 함께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지요.(마태 4,18-22; 마르 1,16-20)

아버지 제베대오는 삯꾼을 부릴 정도이고, 또 두 아들을 떠나보내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을 만큼 어느 정도 재력이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머니 살로메가 주님께서 제자들과 갈릴래아에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부터 함께 따라다니며 뒷바라지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마태 27,55-56)

살로메는 어느 정도 세상의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식견이 있는 여인일 뿐 아니라 믿음도 강한 여인이었습니다. 주님의 권위를 깨달은 그녀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마태 20,21) 하고 청을 드리는 모습에서, 또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그 자리를 지키며 성모 마리아를 위로하는 모습(마르 15,40)에서 그녀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도들입니다. 요즘 말로 주님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뽑으실 때에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것처럼,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마르 3,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은 야고보와 요한의 성격이 다혈질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실제로 형제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자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루카 9,54) 하고 말할 정도로 불같은 성격을 드러냅니다. 야고보 사도가 사도들 가운데 제일 먼저 순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시몬 베드로와 동생 요한과 함께 열두 제자 가운데서도 주님의 최측근이었다는 사실을 또 다른 장면에서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타보르 산에서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시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실 때 야고보와 베드로, 요한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마르 9,2) 또 주님께서 수난하시기 전날 밤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이 세 사도만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마르 14,33)

야고보 형제는 예수님의 각별한 사랑에 어머니 살로메처럼 같은 청을 드립니다.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르 10,38)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했다고 마르코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청을 하는 그들에게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마태 20,2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열두 사도에게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르 10,43-44)

야고보 사도는 예루살렘 교회가 스테파노의 순교와 함께 박해를 받기 시작할 때에도 야고보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야고보 사도는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사도 5,17-41). 그러다가 서기 42년 또는 44년께 파스카 축제 때 헤로데 아그리파 1세 임금에 의해 순교합니다.(사도 12,2) 이로써 야고보는 열두 사도 중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전승에서의 야고보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러 사방으로 흩어졌을 때에 유다와 사마리아에서 활동하다가 스페인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채 다시 유다 지방으로 돌아왔다가 순교했다고 합니다.

3세기 교부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야고보 사도의 순교 장면을 전합니다. 그에 따르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야고보 사도에게 그를 고발한 자가 쫓아오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야고보는 그 고발자를 끌어안고 “평화가 너와 함께”라며 축복해 주고 용서한 다음 순교의 칼을 담대하게 받았다고 합니다. 야고보 사도의 시신은 예루살렘 성전 옆에 방치되었다고 합니다.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라는 말처럼 야고보 사도의 순교는 복음 선포의 신호탄이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약 12년간 팔레스티나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서기 49년 제1차 사도 회의 이전에 순교하였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 사도가 스페인에서 돌아온 다음 서기 42년(또는 44년) 예루살렘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옆에 방치돼 있던 그의 시신은 제자들에 의해 수습된 후 야포를 거쳐 스페인 북부 지방 ‘이리아’에 매장되었답니다. 이후 많은 순례자가 야고보 사도의 무덤을 찾았는데 이슬람교도들의 침입 후 사도의 유해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9세기께 우연히 별빛이 쏟아지는 들판의 한 동굴에서 그 유해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 성당을 세우고 이름을 ‘야고보 사도의 별의 들판’ 곧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입니다.

갈리스도 2세(재위 1119~1124) 교황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대교구로 승격하고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이 주일에 오면 그해를 야고보 성년(희년)으로 지내도록 제정하였습니다. 또 알렉산데르 3세(재위 1159~1181) 교황은 야고보 사도 성년 때마다 전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칙서를 통해 허락했습니다. 야고보 사도 성년 전대사를 받기 위해서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주교좌 대성당 야고보 사도 무덤을 참배하고, 교황의 지향에 따라 몇 가지 기도문(적어도 주님의 기도, 신경)을 바치고, 고해성사를 하고, 미사에 참여해 성체를 영해야 합니다. 문헌상 확인한 야고보 사도의 첫 성년은 1434년입니다.

중세 때 야고보 사도에 관한 또 다른 전승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이슬람교도들이 스페인 중북부 지역을 침공했을 때 백마를 탄 투사가 돼 이들을 앞장서서 무찔렀다는 것입니다. 스페인에서는 야고보 사도를 말을 탄 기사의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이유로 스페인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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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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