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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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수원교구 하우현성당

바닥에 앉아 기도하는...자연 속 조용한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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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우현성당 회중석에는 장의자 대신 1인용 좌식 등받이 의자와 좌탁이 놓여 있다. 성당을 찾은 신자들이 성경 통독과 묵주기도를 하고 있다.


조선 교회 신자들은 거듭된 박해의 칼바람을 피해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에 자리한 하우현도 박해 시기 형성된 교우촌 중 하나다. 신자들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우며 보리와 열매로 연명했다. 이후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자 신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일부는 하우현에 정착했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신앙을 지켜가던 하우현 교우촌은 1900년 본당 설립의 기쁨을 누렸다. 수원교구 하우현본당을 소개한다.



박해를 피해 형성된 교우촌

차들이 굉음을 내며 달리는 안양판교로 청계 지역을 지나다 보면 ‘하우현성당’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을 따라 좁은 길로 들어서면 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당 주변은 사방이 산이다. 청계산과 광교산 등 높은 산들과 계곡, 울창한 수목이 박해를 피해 살길을 찾던 천주교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피난처였으리라.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땅을 파 토굴에서 살기도 하여 하우현을 ‘토굴리’라고도 부른다.

성당 마당에 들어서자 본당 수호성인인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의 성상이 반겨준다. 볼리외 신부는 1840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사제품을 받은 후 1865년 5월 충남 내포에 도착해 약 3주에 걸친 여정 끝에 ‘묘루니’, 지금의 판교 운중동에 도착했다. 조정의 눈을 피해 묘루니 산골 교우 집에서 조선말을 익히며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고 교리도 가르쳤다. 하지만 전교지 파견을 기다리던 중 1866년 병인박해가 터졌다. 행여 교우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걱정한 볼리외 신부는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며 인근의 자연 굴에서 홀로 생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한 교우의 밀고로 체포돼 그해 3월에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서 조선에 들어온 지 9개월, 그의 나이 26세였다.

▲ 성당 마당에 자리한 본당 수호성인인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 성상.



성인상 뒤로는 석조 벽면에 골기와 지붕의 사제관이 보인다. 1906년에 지은 건축물로 20세기 초반 한ㆍ프랑스 절충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궁실의 법전이나 절의 금당 등 중요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팔작지붕(까치박공이 달린 삼각형의 벽이 있는 지붕)이 인상적이다.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가 기증한 종이 사제관 처마에 아직도 달려 있다. 사제관은 2005년 보수 작업을 거쳐 경기도 지정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됐다. 지금은 본당 신자들의 면담실로 사용 중이다.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초대 수석 아빠스를 지낸 노르베르토 베버 총아빠스가 1911년 3월 하우현을 방문해 남긴 기록에서 2대 주임 샤를르 조셉 르각 신부와 신자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르각 신부는 황폐한 주거 환경과 가난의 고통을 신앙 안에서 신자들과 함께 나누고 있었다.… 신자들이 천진난만하고 친근한 태도로 그들의 영적 목자를 의지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사제관은 신자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그는 신자들의 아버지였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중에서)


▲ 하우현성당 사제관은 20세기 초반 한국과 프랑스 절충 건축양식으로 건립됐다.



친정엄마 같은 성당

사제관 왼쪽에는 1965년 지은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사제관과 달리 외관이 평범하다. 가운데 종탑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 벽돌 구조의 성당은 하얀 벽면에 코발트색 양철 지붕으로 마감돼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의 정교회 성당을 보는 듯 단순하고 깔끔한 인상을 준다.

성전 입구에 들어서면 여느 성당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회중석은 장의자 대신 1인용 좌식 등받이 의자와 좌탁이 짝을 이뤄 놓여 있다. 그 수가 40여 개. 평일 오후지만 띄엄띄엄 앉아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는 이들, 묵주를 든 손을 위로 올려 양팔 묵주기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성전 내부는 소박하고 깔끔해 군더더기가 없다. 성전 벽은 하얀색, 천장은 짙은 갈색의 목재로 마감돼 조화를 이룬다. 제대와 독서대, 제대 뒤 십자가 모두 나무로 제작해 따뜻함을 준다. 성화로 장식한 십자가의 길 14처는 성전 건립 당시의 것으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가파른 나무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가면 성가대석이 나온다. 10여 명이 앉으면 꽉 찰 정도로 작은 공간이다. 성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돼 누구라도 찾아와 성체 조배와 묵상을 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성당을 찾는 본당 신자가 거의 없다. 신자 총수가 186명에 불과하니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대신 서울이나 경기도 일원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제법 많다. 성당 앞을 우연히 지나다 들어오는 이들, 하우현성당이 아름답다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도 있다. 자연 속 성당이 좋아 자주 온다는 이들이 많았다.

이혜자(아녜스, 서울 동작동본당)씨는 “자연 속에서 묵상과 기도를 할 수 있어 자주 이곳을 찾는다”며 “하우현성당은 신앙의 선물 같은 소중한 곳”이라고 말했다. 한 신자는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할 때 매달려 하소연할 수 있는 친정엄마 같은 성당”이라며 이곳을 찾아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고 했다.


▲ 하얀 벽면에 코발트색 양철 지붕으로 마감된 하우현성당.



모든 신자에게 열린 성당

성당 곳곳은 기도와 묵상을 하며 하우현본당의 역사를 알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성당 마당 성모상 앞에는 무릎틀이 놓여 있고, 성당 왼편에는 야외 십자가의 길이 설치돼 있다. 본당 사무실에는 역대 주임 사제의 사진과 초가로 된 옛성당의 사진도 볼 수 있다. 옛성당은 1894년 5월 하우현의 모본당인 왕림본당 사제와 하우현 교우들이 모금한 1500냥으로 건축한 10칸짜리 초가 목조 강당 겸 성당이다.

그중에서도 성당 옆 소나무밭에 자리한 야외 십자가의 길이 인상적이다. 조각상들로 꾸며진 십자가 길에서 기도하다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속으로 들어간 듯하다.

성당을 나서는 길, 신자들이 삼삼오오 성당으로 들어오고 성당에서 기도와 묵상을 마친 신자들이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하우현성당은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 같은 성당, 언제나 찾는 이들을 반겨주는 친정엄마 같은 성당이 아닐까 싶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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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7-2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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