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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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울던 상인들, 노숙인 도시락 만들며 희망 찾고 ‘활짝’

회현동 남촌상인회 골목식당 명동밥집 도시락 준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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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촌상인회 윤남순 회장이 6일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 ‘진달래’에서 서울대교구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에 보낼 도시락을 싸고 있다. 오른쪽은 서울 회현동에 위치한 남촌 상인회 골목식당 지도다.

 

 

 

 
▲ 1. ‘그냥밥집’에서 만든 오리고기 김치볶음 도시락 2. 김지영 ‘그냥밥집’ 사장(오른쪽)이 일을 도우러 온 대학생 딸을 안아주고 있다. 3. 도시락 포장을 마친 황승원 ‘유가’ 사장(가운데)이 어머니, 장모와 함께 서있다. 4. 도시락 포장을 마친 윤기종 ‘바른돈까스’ 사장.

 

 


한강 물까지 얼어붙는 북극 한파가 시작된 6일 오후, 명동대성당에는 그 어느 때보다 훈훈한 온기가 돌았다. 서울대교구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이 가난하고 배고픈 이웃에게 온정이 담긴 도시락을 제공한 덕이다. 노숙인들이 품에 안고 간 그 도시락 안에는 사랑과 함께 ‘상생’의 가치도 담겼다. 도시락을 준비한 이들은 코로나19로 치명타를 입은 또 다른 약자, 영세상인인 까닭이다. 서울 남산자락 회현동에 위치한 ‘남촌상인회’ 골목식당 사장들이다.


코로나19로 타격 입은 골목식당, 활로 찾다
 

 

 

 

점심식사가 한창일 오후 12시 30분이었지만, 회현동 식당 골목은 한산했다. 본래 우리은행 본점 등 인근 직장인에 의존해온 상권이다. 낮에는 식사하러, 밤에는 회식하러 오는 직장인으로 늘 거리가 붐볐다. 하지만 직장인들이 코로나19 감염을 피해 도시락ㆍ배달음식ㆍ구내식당 등을 선호하면서 매출이 크게 줄었다. 재택근무가 늘고, 사회적 거리 두기도 강화되면서 피해는 커졌다. 현재 남촌상인회 식당들은 전년대비 매출이 30~ 90까지 감소한 상태다. 어머니와 함께 ‘바른돈까스’를 운영하는 윤기종 사장도 매출이 반으로 줄어 마음고생을 했다. 그는 “동네가 유령도시처럼 변했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남촌상인회는 최근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SK와 소셜벤쳐 ‘요리인류’가 진행하는 ‘소상공인 온기 배달 프로젝트’다. 남촌상인회에서 만든 도시락을 SK가 구매해 명동밥집에 기부하는 방식이다. SK는 “3개월 동안 약 1만 6000인분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도시락값은 1인분에 6000원으로 정했다. 이러한 소식에 특히 기뻐한 이들은 소규모 식당 업주였다. 매출 감소가 유독 컸던 까닭이다. 윤남순 남촌상인회장이 홀로 운영하는 10평짜리 식당 ‘진달래’가 그 예다. 하루 100명에 달하던 손님이 이젠 10명이 채 안 된다.

 

도시락에 맛과 영양, 사랑까지 듬뿍  
 

이날 그래서 윤 회장은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도시락을 준비했다. 12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각, 윤 회장은 반찬 조리를 시작했다. 영양 부족에 치아가 약한 노숙인을 배려해 육질이 부드러운 국내산 돼지고기로 제육볶음을 했다. 강한 불에 올린 냄비에서 갓 볶아낸 제육볶음 냄새를 맡은 기자의 입안에 군침이 돈다. 윤 회장이 푸근한 미소와 함께 한 접시 덜어주며 “맛이나 보시라”고 권한다. “맛있다”고 하자 기뻐하며 동태찌개까지 내 와 한 상 차려준다. 도시락에 들어가는 나머지 반찬은 집에서 손수 만든 김치와 감자조림ㆍ김무침이다. 여기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까지 더하면 진달래표 집밥 도시락 완성이다. 어느덧 시곗바늘이 1시 50분을 가리켰다. 10분 뒤면 도시락을 실은 트럭이 명동밥집으로 떠난다. 윤 회장이 부랴부랴 큰 상자 안에 도시락과 핫팩을 넣은 뒤 들고 나갔다. 그는 이날 도시락 28인분을 혼자 만들었다.
 

비슷한 시각, 중식당 ‘유가’도 도시락 40인분을 싸느라 분주하다. 황승원 사장과 어머니ㆍ아내ㆍ장인ㆍ장모 그리고 아내의 외삼촌까지 온 식구가 동원됐다. 모두 한국에 대를 이어 살아온 화교다. 이날 유가가 준비한 도시락은 유산슬밥과 양송이덮밥. 다른 식당에서 육류 위주로 반찬을 하길래 특별히 해산물과 채소 요리를 했다. 부드러워 씹기 편한 데다 식어도 맛이 좋다는 장점도 있다. 유산슬은 고급 요리 축에 든다. 메뉴판 가격도 도시락 단가 갑절인 1만 2000원이다. 황 사장은 “다 같이 사는 세상인데 가격이 뭐가 중요하냐”며 “별미로 잘 즐겨주시면 그만”이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넉넉한 마음씨는 유전인가보다. 연거푸 “밥 먹고 가시라”고 권하는 황 사장의 어머니와 유산슬 시식으로 겨우 타협을 봤다.
 

오후 2시가 되자 남촌상인회 골목식당 7곳에서 만든 도시락이 다 모였다. 모두 200인분이다. 제육볶음과 유산슬에 이어 소 불고기ㆍ오리고기 김치볶음ㆍ계란말이ㆍ장조림 등 식당마다 다양한 반찬을 준비했다. 각 식당 도시락 상자에는 알록달록 스티커가 붙었다. 노숙인들이 원하는 대로 골라 먹게끔 하기 위해서다. 도시락을 다 실은 트럭은 1㎞ 남짓 떨어진 옛 계성여고 자리, 명동밥집으로 향했다.
 

웃음과 희망을 주는 도시락

트럭을 배웅한 뒤 한숨 돌리는 윤 회장에게 “힘드시죠?”라고 묻자 손사래가 돌아왔다. “이런 걸로 힘들다고 하면 안 돼요. 장사가 안돼서 힘든 게 훨씬 더 크죠. 도시락 덕분에 숨통이 트였어요. 웃음을 주는 도시락이라고 할까요.” 단골 봉제공장이 문을 닫아 매출이 반 토막 난 ‘대박물갈비’ 주정민 사장은 “하루 도시락으로 버는 돈이 점심 매출 2배”라며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 맛있는 도시락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봉돈분식’ 김봉순 사장도 “덕분에 가게세라도 낼 수 있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도시락 사업은 골목식당들에 경제적 도움과 함께 용기와 활력을 선사했다. 홀로 암 투병 남편과 대학생 자녀를 부양하는 ‘그냥밥집’ 김지영 사장도, 경영난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아들을 가슴에 묻은 ‘유포차’ 김춘자 사장도 도시락으로 희망을 얻었다. 이들은 더 양 많고, 맛있는 도시락으로 보답하고 있다. 노숙인과 영세상인 모두를 살리는 도시락, 그 안에는 사랑과 치유의 마음이 담겼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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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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