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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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뉴에이지 문헌 해설 - 뉴에이지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성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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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뉴에이지 사상을 표현한 그림(왼쪽). 인간 안네 우주의 에너지가 집약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차크라(오른쪽). 교황청 문화평의회와 종교간대화평의회는 최근 현대 세계와 문화 안에 깊숙하게 확산돼 있는 뉴에이지 현상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담은 문헌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물을 가진 분 「뉴에이지(New Age)」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성찰』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가톨릭신문은 이 문헌에 대한 해설과 요약을 5회에 걸쳐 게재한다. “신앙에 대한 긴급한 도전” 현대문화 이끌 사목 프로그램 시급 교황 “고대 영지주의로의 회귀” 경고 한국 주교회의는 지난 2000년 3월 27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뉴에이지 운동 특히 선과 명상 등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앞서 1997년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는 「건강한 신앙 생활을 해치는 운동과 흐름」을 발표해 「뉴에이지 운동과 건강이나 치병과 관련된 비술과 영술 운동」에 대해 지적했고 2001년 1월에는 서울대교구에서 「기 수련 문화에 대한 주의 환기」 공문을 발송했다. 이처럼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뉴에이지 운동은 여러 가지 형태로 확산돼 있다. 하지만 막상 신자들은 이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상태이다. 교황청에서 발표한 이번 문헌은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뉴에이지 운동을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식별하고 평가할 수 있는 종합적인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문헌은 93쪽 분량에 상당히 깊이 있고 구체적인 분석과 평가를 싣고 있다. 뉴에이지가 발생하게 된 역사적 사회문화적 배경 그 특성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도교 영성과 비교분석하고 있으며 말미에는 관련 문헌과 연구서 목록 그리고 뉴에이지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문헌은 특히 하나의 영성운동으로서 뉴에이지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및 영성과 어떻게 차이를 보이며 어떤 영향을 그리스도교에 미칠 수 있는지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신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교황청 문화평의회 의장 폴 푸파드 추기경은 2월 3일 기자회견에서 『뉴에이지 현상은 다른 신흥종교운동들과 함께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가장 긴급한 도전 중 하나』라며 『깊은 위기에 빠진 문화 그리고 그 위기에 대한 잘못된 응답』이라고 말했다. 추기경은 특히 이런 상황에 대해 무엇보다도 『명백하고 지혜롭게 그리스도교 교리를 제시해야 한다』며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뉴에이지를 탄생시킨 현대 문화를 지도할 사목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인 마이클 피츠제랄드 대주교는 뉴에이지 현상에 긍정적인 요소도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볼 때 분명히 그리스도교 신앙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이번 문헌은 뉴에이지와 그리스도교 신앙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헌의 반포 배경 문헌은 간단한 전문에 이어 크게 9개 부분으로 나눠진다. 제1장에서는 성찰의 취지와 문헌 반포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이 연구는 교황청 문화평의회 종교간대화평의회를 비롯해 인류복음화성 일치평의회 등 교황청 여러 부서의 실무 연구진들이 함께 작업을 한 결과이다. 이 성찰은 우선 뉴에이지 운동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어떻게 다른지를 일선 사목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문헌은 가톨릭 신자들이 뉴에이지를 올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 가톨릭 교리와 영성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며 하나의 문화적 조류로서 뉴에이지를 알고 이해하도록 촉구한다. 물론 문헌은 뉴에이지에 관련된 모든 문제들에 해답을 주지는 않으며 그것을 이해하고 참된 대화를 나누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점성가들은 제삼천년기의 시작은 예수 탄생 2000년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시대인 물고기자리의 시대에서 물병자리 시대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뉴에이지」란 현대 문화에 충격을 준 이 시점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것 중의 하나이며 어떤 것이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와 일치하는지 안하는지를 식별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제 뉴에이지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평가가 있어야 할 때임을 지적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확실성과 불확실성 사이를 헤매고 있다. 기존 종교나 정치 체제들은 더 이상 현대인들의 깊은 내적 열망에 해답을 주지 못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뉴에이지는 이처럼 기존의 제도로부터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이다.
문헌은 뉴에이지의 종교성이 어떤 면에서는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영적 갈망과 일치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계시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안적」 접근이 자주 시도되고 피정센터 신학교 수도회 등에서조차 이러한 움직임이 발견된다. 고대나 동방 종교에 대한 책이나 수련 등이 붐을 이루기도 한다.
뉴에이지는 2~3세기의 영지주의와 자주 연관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뉴에이지를 가장한 고대 영지주의로의 회귀』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뉴에이지의 발흥은 교회에 도전이다. 사람들은 종종 그리스도교가 더 이상 사람들의 깊은 내적 갈망에 대답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만약 교회가 이러한 갈망에 귀를 막고 있을 때 사람들이 취할 태도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더욱 깊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곳을 찾아 나설 것이다.
뉴에이지의 영성 문헌은 뉴에이지의 모든 요소를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그리스도교 교리와 영성에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뉴에이지는 이른바 「신흥 종교 운동」이 지칭하는 일반적 의미에서 「운동」이라고 할 수는 없고 사교(cult)나 종파(sect)로 분류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화들 안에 퍼져있고 음악 영화 세미나 워크샵 피정 치유 등등의 여러 활동과 사건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더 혼란스럽고 비공식적인 것이다.
뉴에이지는 단일한 운동이 아니라 유사한 접근을 하는 참여자들의 느슨한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서로 알 필요도 없고 만나는 일도 드물다. 하지만 이들은 상당히 일관성 있는 사고방식을 가진 것은 지적할 만하다. 뉴에이지적 요소를 지닌 많은 경향 관행 태도들은 현대의 주류 문화에 대한 어떤 유사한 반응을 한다는 점에서 「운동」이라는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뉴에이지 종교」라는 표현은 더 논란이 많으므로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그들 자신들도 조심스럽게 「종교」와 「영성」을 구분한다. 그들은 제도화된 종교가 자신들의 필요에 응답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부하며 그 때문에 「영성」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뉴에이지의 핵심 중 하나는 특정 종교의 시대가 끝났다는 믿음이다. 따라서 종교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들의 자기 이해와도 어긋나는 것이다. 하지만 비교(秘敎 esoteric)적인 종교성의 맥락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틀리지 않다.
박영호 기자 young@catholicti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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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3-02-1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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