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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58) 순교, 순교자 ②

우리 마누라가 순교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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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어르신들 앞에서 순교와 관련하여 강의를 하던 날, 시작에 앞서 분위기를 살린다며 평소 알고 있는 순교자 이름을 여쭈었는데,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의 입에서 나온 이름이 ‘이끝순!’ 분위기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고,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뭐라하요, 이끝순이가 누군교?”

“아따, 시방, 그 사람은 뭔(뭐하는) 사람이요?”

나는 다시 마이크를 잡고 억지로 방그레 웃으며 그 어르신에게 여쭈었습니다.

“어르신! 이끝순은 어떤 분이시기에 순교자라 생각하시나요?”

그러자 할아버지 말씀이,

“끝순이요? 작년에 죽은 우리 마누라 이름이요. 이그, 그 사람, 한평생 살면서 이 못난 사람 만나 정말 고생 많이 했지. 살면서 아이들은 다섯이나 낳았는데 자식새끼들 먹을 거 제대로 먹이고 입힐 거 제대로 입힌다고 자기 얼굴에는 화장 한 번 안 하고! 화장이 뭐여, 시방 옷도 한 번 제대로 사 입은 적이 없는디. 휴, 거시기 아파도 약도 한 번 안 먹고 그렇게 살더만 끝내 나보다 이렇게 먼저 하늘나라로 갔구만요. 그러다 보니 어쩌면 우리 마누라, 그 예편네가 정말 순교자지, 뭐!”

주변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런 일이 있었구먼!’ 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보편적으로 어르신들의 특징은 무표정하시지만 상황 이해나 공감 능력은 탁월합니다. 또 다시 웅성웅성. ‘그려, 그려! 우리 마누라가 순교자지, 뭐!’

아무튼 그 날 강의는 ‘이끝순’ 할머니 이야기를 통해서 반전의 물꼬를 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일상 안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있도록, 아니 자신을 살리고자 희생한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이야기로 끝맺었습니다. 암튼 강의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게 끝났습니다. 이 땅의 모든 ‘이끝순’ 할머니들 덕분에 말입니다.

자식들을 잘 키우기 위해 자신의 인생길, 험난한 시간들을 묵묵히 견디어 내신 우리 시대의 부모님들이 순교자였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꿈을 보듬고, 훌륭히 성장하도록 이끌어 준 선생님들 안에 순교자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웃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온 많은 봉사자들의 삶이 순교를 닮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순교자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그분들이 순교를 통해 보여준 탁월함과 용맹함, 그리고 거룩하고 장엄하게 맞이한 죽음의 순간을 기억하는 것만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살면서 평소 무엇을 귀하게 생각했고, 소중하게 받아들였는지를 알아가고, 그 마음들을 찾아가는 것이 더 귀중한 묵상거리입니다.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등대지기 노래 가사에 나오는 등대지기 닮은 삶을 사시는 분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또한 등대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생각에 정녕 소중함과 감사함을 나누지 못한 분들 또한 많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저 존경합니다. 돌아오는 길! 유난히 어두운 밤길을 환하게 비추는 달빛을 보면서, 저 달빛도 순교의 마음을 가졌나, 혼자 이상스러운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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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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