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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33.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요한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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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드 브라운 작 ‘성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는 예수’, 1852~1856, 영국 런던 테이트 갤러리. 가톨릭 굿뉴스 제공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한 최후의 만찬은 성찬을 제정하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이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성찬례를 세우셨다는 것 대신 다른 이야기 하나를 전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제자들의 발을 씻긴 예수님에 대한 것입니다. 이미 보았던 것처럼 요한 6장의 ‘생명의 빵’에 관한 담화는 성찬례와 관련된 신학을 담고 있는 장이기에 요한은 다시 그 내용을, 예수님께서 성찬례를 세우셨다는 것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마지막 시간을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이라고 밝힙니다. 요한이 언급하는 세 번째 파스카입니다(요한 2,13; 6,4).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에서 “때”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 시간에 대한 표현은 요한의 전체적인 신학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때”가 지시하는 것이 언제인지 복음서에서 사용된 용어를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때”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사용됩니다. 복음서의 초반부에는 ‘때가 되지 않았다’는 표현으로(요한 2,4; 7,30; 8,20) 그리고 후반부에는 ‘때가 되었다’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이런 차이를 보이는 첫 구절은 요한 12장 23절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이 표현의 시점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후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요한이 말하는 ‘때’가 그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들, 곧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지시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요한복음에서 ‘때’와 ‘영광’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아버지께로 건너간다’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요한복음의 가장 큰 주제인 ‘파견’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세상에 파견되었고 세상에 파견된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활동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의 사명이 끝나면 다시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요한이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이 ‘파견’은 예수님의 신원을 암시하는 것이면서 하느님과의 단일성을 말하는 근거가 됩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제자들과 함께하던 마지막 만찬의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다음 수건으로 그들의 발을 닦습니다. 이것을 거부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발을 씻기신 것은 전형적인 종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을 향한 종의 모습을 자처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이 행위는 지극한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모든 일이 끝나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이 질문은 단지 제자들을 향한 것만은 아닙니다. 복음서를 읽는 모든 독자를 향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제자들에게 보여준 모범은 단지 발을 씻기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으로서, 자신을 낮추어 보여주신 이 행동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우선 하느님 앞에서 보인, 하느님께 순명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하느님의 뜻을 따른 것이었고 이제 앞으로 다가올 수난과 죽음 역시 그렇습니다. 자신을 낮춘 파견된 자로서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순명하는 모습을 통해 그 모범을 제자들에게 보여줍니다. 또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모습은 형제와 이웃들 안에서 실천해야 하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행동은 제자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전해지게 됩니다.

하느님과 형제들을 향한 예수님의 삶은 우리에게 본이고 모범입니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요한복음이 전하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은 순명과 사랑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 전체를 통해, 그리고 제자들에게 보여준 발을 씻기는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삶을, 그 사랑의 행위를 그대로 따르라는 것입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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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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