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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5)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

당시 수도회의 삶, 죄로 물든 세속 떠나 하느님과의 일치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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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수도회의 삶, 죄로 물든 세속 떠나 하느님과의 일치 추구

▲ 한센병 환자와 함께했던 시간은 프란치스코에게 복음의 가치와 권고를 더욱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깨닫게 해주었고,이를 통해 프란치스코는 마침내 세속을 떠났다. 사진은 가난한 기사에게 옷을 벗어 주는 프란치스코. 아시시 프란치스코 대성당 벽화.



한센병 환자와 함께 머물렀던 시간은 프란치스코에게 혹독한 수련기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 기간에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인간적 한계에 부딪혔고, 이를 하나씩 극복해 나아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역겨웠던 그것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바뀌는 체험”, 즉 삶의 모든 체험이 점점 복음적으로 변화해 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서 한센병 환자와의 체험을 통해 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천하시고 권고하셨던 모든 가치와 가르침들이 더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들이 너무도 분명하게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본격적으로 회개의 여정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보속의 삶이 수도회의 삶으로

그는 유언에서 바로 이 순간을 기억하며 “나는 세속을 떠났다”고 이야기한다. 프란치스코에게 ‘세속을 떠난다’는 것은 곧 ‘회개 생활의 본격적인 시작’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가 살던 시대에 말하는 ‘회개 생활’은 곧 ‘보속의 삶’을 사는 것이었고, 보속의 삶은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사는 수도회의 삶을 의미했다.

이른바 ‘전통적인 수도생활의 양식’은 다분히 ‘세상으로부터의 도피(fuga mundi)’의 의도로 형성되고 발전했다.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서 그리스도교가 긴 박해의 시대를 끝내고 신앙의 자유를 얻은 이후 교회는 밖으로 급격한 발전을 이뤘지만, 신앙인들은 오히려 그 자유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이 자유와 발전은 동시에 과거 박해시대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의 생생함과 교회 공동체의 끈끈한 결속을 약화시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받았던 박해는 혹독했지만, 그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예고된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인내롭게 받아들이고 극복한다면 영원한 생명과 썩지 않는 상급을 받게 되리라고 약속하셨기에 그 모든 고난은 곧 주님의 대전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교회가 자유를 얻으면서 그 지름길은 모두 차단됐고 고통의 수용은 현실 삶에서 멀어졌다. 또한 교회가 로마 지배층의 권력과 결탁하면서 세속의 권력과 부유함을 누리게 되고, 거기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작용으로 고난 시대의 공동체에 있었던 위로와 연대의 분위기는 점차 사라지게 됐다.



카타콤바에 대한 향수 깊어져

이런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과거 박해시대에 누렸던 영적 삶의 풍요와 카타콤바에 대한 향수가 점점 깊어갔다. 이러한 갈증은 그들로 하여금 죄짓게 하는 세상을 떠나서 사막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40년간 방황했고 예수님께서 40일간 단식하셨던 그 사막에서 머무르면서, 동굴을 감옥으로 삼고 스스로 형리가 돼 단식과 고행으로 자신을 박해하며 오로지 죄와의 단절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한 단절과 독수의 삶은 점차로 전통적인 수도생활의 양식으로 발전했다.



세상 속에서 하느님과 일치 추구

죄와의 단절과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근본적 이상에서는 프란치스코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이 이상 실현을 위해 세상으로부터 도피를 선택하지는 않았다. 물론 아버지와의 결별 이후 자신을 사회적으로 보호해 주던 가정을 떠나 아시시의 성 밖으로 나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누구도 살지 않는 사막으로 가지 않았다. 그는 늘 주변에 머무르며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자신의 삶을 나누었다. 때론 성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했고 일을 하고 필요한 것을 얻기도 했다. 때에 따라 구걸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분명 과거 자신이 살던 곳을 지나기도 했을 것이고 알던 사람들과 마주치기도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유언에서 자신이 세속을 떠났다고 추억했지만 실제로 그는 다른 어느 곳에도 가지 않고 늘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에게 세속을 떠나지 않은 삶은, 공간을 떠나지 않은 삶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삶이었다. 그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속을 떠나지 않은 죄 중의 삶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회개 중에 있지 않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지 않으며 악습과 죄악을 일삼고 욕정과 자기 육신의 나쁜 욕망을 쫓아다니며, 하느님께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고 육적인 욕망을 가지고 세속의 걱정과 살아갈 근심에 쌓여 세상을 육적으로 섬기는 사람들, 악마의 짓을 그대로 하고 악마의 자식이 된 이들.”

죄는 환경이나 조건의 문제 이전에 영혼의 문제다. 따라서 인간이 비록 깊은 은둔소에서 사람들과 단절돼 홀로 머무르고 있더라도 만일 그가 회개 중에 있지 않다면, 그의 영혼과 마음속이 세상에 관한 온갖 것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에게 죄의 가능성은 언제나 남아 있는 것이며 그의 삶은 결코 세속을 떠난 것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내가 사는 이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머무르면서도 늘 자신의 약함을 인식하고 경계하는 가운데에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을 향해 나아갈 때, 그것이야말로 ‘세속을 떠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과 함께 머문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는 우리에게 참된 삶의 자리를 가르쳐 준다. 하느님의 아드님은 인간과 함께 머무르시기 위해 기꺼이 신적 위치를 버리고 종의 신분을 취하신다. 그리고 말 구유부터 십자가에 이르는 지상의 삶을 독수자가 아닌 가난한 순례자로서 사람과 사람-특히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사이를 오가며 사셨다. 그렇기에 당연히 그분의 발자취는 사람들 속에 있다.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이들이 어디로 가야 하겠는가. 프란치스코는 늘 그곳에 있었지만 참으로 그렇게 세속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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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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