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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사이야기] (2) 구본석 신부 (서울 서초동본당 보좌, 2017년 수품

사제 생활의 시작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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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생활의 시작과 끝




찬미 예수님!

새 사제로서 지낸 석 달 남짓한 시간은, 사제가 아닌 모습으로 살아온 지난 삼십 년의 세월만큼의 값진 체험들로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매일 미사성제를 집전하는 순간이 사제로서 살아가는 데 가장 큰 은총의 시간으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석 달 동안 매일같이 맞이할 수 있었던 그 은총의 시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나누어볼까 합니다.

지난 3월 21일, 서울대교구의 원로신부님이신 김영일(발타사르) 신부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통상 교구의 모든 새 사제들이 선종하신 선배 신부님 장례의 상주를 맡게 됩니다.

신부님께서 선종하신 당일 늦은 밤, 사제가 된 이후 처음으로 선종하신 선배 신부님의 시신을 동기들과 함께 명동 성당 지하성전에 안치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상주 역할을 시작하였습니다.

57년 전에 사제품을 받으신 원로신부님의 시신 앞에서 여러 신부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면서 한 달 남짓 사제로 살아온 제가 느낀 세월의 무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리고 선배 신부님의 차갑게 식은 육신을 바라보며, 신부님께서 이제껏 걸어오셨을 사제 삶의 여정을 감히 떠올려보기도 하였습니다. 수품 때 맞췄을 그 제의를 수의 대신 입고 계신 신부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신부님께서 사제품을 받으셨던 그 순간 또한 감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젊은 새 사제에게 선배 원로신부님의 선종은 우리 삶의 무게와 죽음이 지닌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습니다. 더불어 초라한 몰골의 시신으로 남은 선배 신부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사제직의 고귀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제로서 충실히 살아오셨을 신부님의 지난 삶을 감히 가늠해보며 후배 사제로서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함께 미사를 집전하신 어느 선배 신부님의 말씀이 제 가슴을 뛰게 하였습니다. 선배 신부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는 새 사제들의 모습을 통해서, 사제 생활의 시작과 끝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새 사제로서 수품 이후의 첫 미사를 시작으로, 수도원에서의 첫 미사, 부임한 본당에서 첫 미사, 신학교에서의 첫 미사처럼 ‘첫 미사’라는 이름으로 미사를 봉헌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많은 첫 미사 중에서도 유독 선종하신 선배 신부님의 상주 역할을 처음으로 시작하며 봉헌하였던 미사가 이처럼 마음에 가장 깊이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음을 숙명으로 여기는 우리에게, 일분일초 후의 상황도 예측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시작이 주는 설렘과 찬란할 것만 같은 앞날에 대한 기대감에만 머무는 것은 우리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가오지 않을 것만 같은 우리 생의 마지막을 굳이 되짚어보는 그 마음은 안주하는 데 급급한 우리의 일상을 환기시켜 주며, 마주하는 삶의 매 순간을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주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사제로서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보는 것 역시, 평생을 사제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저를 담금질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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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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