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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회장 부부의 ‘빈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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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회장이 “신부님! 나 지금부터 성당 안 다니쿠다!” 하고 선전포고를 한다. 다른 간부들이 회장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고 마음이 상했던 모양이다. 마음이 다치면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진다. 이전의 그 사람은 간데없고 다른 사람이 돼 버린다.

이런 일은 질질 끌면 예후가 좋지 않음을 그동안의 사목을 통해서 터득한지라 진상 조사에 나섰다. 그랬더니 별것 아닌 일 때문에 회장 마음이 틀어졌다. 전화해도 안 받고, 부인도 연락이 닿질 않는다.

위기다. 오늘 밤을 넘기면 안 된다. 술을 좋아했던 회장이었던지라 몇 병 있던 위스키 중에서 제일 잘 생긴(?) 녀석을 골라 옆구리에 차고 얼른 회장 집으로 향했다. 밤 11시가 넘어가는 늦은 시각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예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선 집에 들어섰다. 갑작스러운 본당 신부의 방문을 거절했던 사례는 한 번도 없다.

위스키를 들이대니 회장의 눈이 반짝인다. “아이고, 신부님! 영 좋은 술을 무사 가져 와수가” 하는데 싫은 기색은 하나도 안 보인다. 한 잔, 두 잔 마시면서 회장 속을 풀어 주니, 옆에서 부인이 더 말이 많고 더 좋아한다.

빈 둥지 증후군이 있다. 기러기 아빠나 자녀를 출가시킨 주부들이 보이는 우울증 증세를 일컫는데, 신앙생활에도 이 증후군이 있는 듯하다. 본인은 열심히 돈 써가며 희생하고 봉사한다고 성당에 다니는데, 주위 신자들이나 수녀, 신부로 인해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때 소외감과 허탈함을 느끼며 빈 둥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빈 둥지가 된 처지를 우울해 하며 심지어는 하느님을 떠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날 밤, 회장 부부의 빈 둥지를 치워야 하는데 “예수님, 힘을 좀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뿐이다. 동쪽 창문 너머로 오늘따라 샛별이 유난히도 밝게 빛나는데 감이 매우 좋다.





이시우 신부

제주교구 애월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7-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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