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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기사’에서 ‘하느님의 기사’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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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냐시오는 1521년 나바라의 수도 팜플로나에서 부상을 입는다. 전투 중 동료들에게 치료받는 이냐시오를 표현한 유리화.

▲ 1525년 성인의 삶을 담은 자서전의 한 페이지.



이냐시오는 카스티야 왕국의 재상인 후안 벨라케스가 1517년 선종한 후 나헤라의 공작인 돈 안토니오 만리케 데 라라의 집으로 옮겼는데 이 사람은 나바라의 총독이었다. 그 후 1521년 프랑스 군대는 페르디난드 왕이 1515년 정복했던 나바라를 침공했고, 이 전투로 이냐시오는 나바라의 수도인 팜플로나에서 부상을 입었다. 이냐시오의 자서전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때까지 이냐시오의 삶은 헛된 영광에 사로잡혀 이를 쫓던 인물이었다. 비록 이냐시오가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성모 마리아나 베드로 성인에 대한 신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러한 신심은 자신의 헛된 영광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냐시오의 회심 이후의 삶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것마저도 이냐시오에게 이웃을 섬기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살아가는 삶이 되도록 사용하신다.

이냐시오가 팜플로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수술한 후에 건강을 회복하던 중 예전에 즐겨 읽곤 했던 무협소설을 찾았다. 그런데 그야말로 섭리인지 그때에 다른 책은 아무것도 없었고 「금빛 전설(Legenda Aurea)」과 「그리스도의 생애(Vita Christi)」만 있었다. 이 두 권의 책과 만레사에서 이냐시오가 읽은 다른 책들은 이냐시오가 영적 사정(邪正)에 눈을 뜨고 회심하는 데에 매우 커다란 역할을 했고 그 이후 이냐시오의 영적 여정에 심대한 영향을 줬다. 이냐시오는 이 책들에 흥미를 느꼈고 책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의 말씀은 붉은색 잉크로, 성모 마리아의 말씀은 푸른색 잉크로 옮겨 적었다. 이렇게 옮겨 적은 분량은 4절지 크기의 종이로 약 300쪽 분량이었다. 옮겨 적은 분량이 이만큼이니 두 권의 책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냐시오가 옮겨 적은 종이는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이냐시오가 어떤 부분을 옮겨 적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들은 이냐시오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고 지금까지 살아온 지평을 더욱더 넓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도대체 이 책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이냐시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는지 앞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냐시오 영성의 원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좀 더 확장해 보도록 할 것이다.

「금빛 전설(Legenda Aurea)」

이 책의 본래 제목은 「성인들의 꽃(Flos Sanctorum)」으로 이탈리아 출신이자 도미니코 회원인 제노아의 야고부스 데 보라진(1230~1298) 대주교가 라틴어로 저술한 책이다. 이냐시오는 이 책의 스페인어 번역판인 「금빛 전설(Legenda Aurea)」을 읽었다. 이 번역판은 1493년 사라고사에서 출판됐고, 1511년 톨레도에서 재인쇄됐다. 번역판의 서문은 시토회 회원 가우베르토 마리아 바가드가 적었는데, 이 서문에서 저자는 ‘성인’을 ‘하느님의 기사’로 묘사했다. 서문에 묘사된 성인들의 영웅적인 삶은 이냐시오의 가슴을 타오르게 했고, 이냐시오가 지녀왔던 ‘세속의 기사’로서의 삶을 ‘하느님의 기사’로의 삶으로 대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책에는 많은 성인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여기에서는 네 분의 성인만 다루겠다. 네 분은 성 오누프리우스, 성 프란치스코, 성 도미니코,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노다. 이냐시오는 「자서전」에서 성 프란치스코와 성 도미니코만 명시적으로 언급했지만, 나달의 증언에 따르면 성 오누프리우스는 이냐시오의 실제 상황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데 보라진 대주교에 따르면 성 오누프리우스는 4세기 이집트 은수자로 세속적인 생활을 버리고 사막으로 들어가서 약 70년간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살았다. 오누프리우스는 이 생활에 큰 행복을 느꼈다. 이냐시오는 이러한 오누프리우스의 삶에 큰 영향을 받아서 로욜라에서 회심한 후 만레사에서 생활할 때 오누프리우스의 금욕적 삶을 모방하며 살아갔다. 그 결과로 이냐시오는 깊은 ‘영적 실망(spiritual desolation)’에 빠지기도 했는데, 이것은 심지어 이냐시오를 극심한 자살 충동으로까지 몰고 갔다.

이냐시오는 이렇게 술회한다. “그는 돌연 자기의 생활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를 깨우쳐주는 듯한 고약한 생각이 떠올라 어쩔 줄 모르게 되었다. 마음속에서 ‘앞으로 남은 칠십 평생을 어떻게 이 고된 생활을 해나가겠느냐?’하고 누군가가 질문을 던져오는 듯했다. 그 생각이 원수에게서 오는 것이라 믿으며….”

건강까지 해치며 성 오누프리우스의 금욕적 삶을 살았던 이때의 체험은 이냐시오가 훗날 세상 안에서 사도적 삶을 통해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극단에 흐르지 않고 절도를 지키며 사는 삶의 방식이 더욱 알맞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다. 이냐시오의 경험에서 나온 이러한 사고는 이냐시오가 쓴 편지에서도 발견된다. “많은 경우에 하느님께 꾸준히 봉사하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쉬는 것이 쉬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도움이 됩니다.” 이 밖에도, 「영신수련」에 나오는 “인간 본성의 원수”라는 표현 (「영신수련」 7번, 314번)이 나오는데, 오누프리우스는 이것을 “악마”라고 칭하기도 했다.



[예수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 이냐시오 로욜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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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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