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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앞에 선 복사의 고뇌

김태우 가누도 서울대교구 길음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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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를 마치고 우연히 어느 신부님의 미사 이야기 글을 읽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저의 30년 전 복사 시절의 미사가 생각났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30년 전 초등학생 시절 첫영성체 후 복사단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입니다.

그 시절 복사는 경력에 따라 오른쪽 복사와 왼쪽 복사가 있었습니다. 오른쪽 복사는 경력 복사, 왼쪽 복사는 신입 복사였습니다. 말 그대로 경력 있는 복사는 미사 중 복사가 해야 할 일 중 중요한 것을 모두 스스로 알아서 착착 해내고 왼쪽 복사는 그저 오른쪽 복사가 하는 것만 따라하면 되는 신입 복사였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성찬의 전례 중에 종을 치는 일이었습니다. 종을 치는 일은 오른쪽 복사가 된 후에도 몇 개월 이상의 경험을 쌓고 스스로 미사 전례를 익힐 때에만 할 수 있는 나름 고난도의 스킬(?)이었지요. 때로는 경력 있는 복사가 왼쪽 복사를 맡아 종을 칠 때 신호를 줘 ‘오른쪽 복사 키우기 트레이닝’(?)을 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전 아직 혼자서 제때 종을 칠만큼 경력이 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날 평일 새벽 미사 복사를 맡았는데, 저와 함께 복사를 서기로 했던 고참이 나오지 않은 겁니다. 저는 떨리는 마음으로 혼자서 신부님과 함께 입당했고 미사가 시작됐습니다.

다른 것들은 그런대로 혼자 할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께 성작을 제대로 가져다 드리는 일, 포도주와 물병 그리고 신부님이 물에 손을 닦는 수건 챙기는 일 등은 혼자 해낼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문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언제 종을 치는지도 모르는데 종을 가져다 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야 했죠.

종을 쳐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고 전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종을 한 번 쳤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때가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한 번 더 쳤습니다. 그리고 앞을 보니 본당 수녀님은 아니지만 우리 본당 옆에 있던 수녀원에서 오신 수녀님이 저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지금이다’라는 신호를 보내시는 듯 고개를 앞으로 끄덕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종을 쳤고 몇 번을 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수녀님 덕분에 무사히 미사를 마치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수녀님께 인사를 드리려 했더니 미사 후에 수녀님은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서둘러 귀가하신 듯 보였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 정도 새벽 미사 중에 수녀님을 뵐 수 있었고 눈인사 정도를 드렸지요. 제대로 인사를 못 드린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다 다행히 수년이 흐른 후 그 수녀님을 뵐 수 있었고 당시 정말 감사했다는 인사를 드릴 수 있었지요.

지금도 정규 미사가 아닌 야외 미사라든가 단체 기념 미사 때에는 항상 그때를 생각하며 제가 나서서 복사를 서고 종을 치곤 합니다. 그때의 수녀님은 지금쯤은 정말 노(老)수녀님이 되셨을 텐데요,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빕니다.

※‘나의 미사 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 글을 연락처, 얼굴 사진과 함께 pbc21@cpbc.co.kr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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