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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 영성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예수회 제2의 설립자’

조인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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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4월 23일자 타임지(TIME) 표지에 “예수회, 가톨릭 교회의 최전선에서”라는 제목과 함께 한 예수회원의 얼굴이 소개되었다. 그 주인공은 예수회 제28대 총장을 역임한 페드로 아루페(Pedro Arrupe,1907~1983) 신부다. 교회 안팎으로 큰 변혁의 시기에 아루페 신부는 예수회 영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예수회를 이끌었으며, 특별히 신앙의 증진과 정의 구현의 통합을 새로운 차원의 현대적 영성으로 정립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아들’ 혹은 ‘예수회 제2의 설립자’로 불리는 페드로 아루페 신부의 생애와 그의 가르침에 대해서 알아보자.



생애

페드로 아루페는 1907년 스페인 빌바오에서 다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11살에 되던 해, 그는 예수회원이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했다. 이 시기에 그는 인도와 일본에서 선교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예수회 선교사로서 성소를 발견한다. 이후, 그는 마드리드에서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기간 아루페는 동료들과 함께 마드리드 빈민가를 찾아 자원 활동하며 도시의 어두운 현실을 직접 체험했다. 의학도 아루페는 19살이 되던 해, 그의 누이와 함께 프랑스 루르드 성지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의학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치유 기적들을 눈으로 목격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성소에 대해서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1925년 의학 공부를 중단하고 예수회에 입회한다. 1931년 스페인에서는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고, 예수회가 스페인에서 추방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직 신학생이었던 아루페는 벨기에로 가서 남은 연학과정을 마치고 그곳에서 1936년 7월 30일 사제품을 받았다. 1937년 미국에서 제3수련을 마친 아루페 신부는 마침내 어렸을 때부터 열망하던 대로 선교사로 일본에 파견된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과 함께, 그는 스파이로 오해를 받아 고초를 당하기도 했으며, 수련장으로 활동하던 때에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잔혹한 결과 앞에서는 공동체 경당을 임시 병원으로 만들어 원폭 피해자들을 위한 구호활동을 했다. 이후 아루페 신부는 1959년 예수회 일본관구 첫 관구장이 됐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가 진행 중이던 1965년 예수회 제28대 총장으로 선출됐다. 1983년 9월 3일 총장 직무를 마쳤으며, 계속된 투병 생활 끝에 1991년 2월 5일 선종했다.



활동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신분이나 계층에 상관없이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을 살아가라는 부르심, 즉 “보편적 성화 소명”을 받았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그 성덕으로 지상 사회에서도 더욱 인간다운 생활양식이 증대된다”고 봤다.(「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40) 또한, 불공정한 현실을 이겨내며 생활 조건을 개선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하느님의 뜻에 부합된다고 밝혔다.(「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34) 다시 말해 공의회는 성덕의 삶과 더불어 불공정한 생활 조건을 위한 활동을 신앙인의 소명으로 새롭게 제시한 것이다.

공의회가 폐막하자, 아루페 신부는 중단했던 예수회 제31차 총회를 속개하여 공의회의 가르침인 신앙의 증진과 정의 구현의 주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도록 했다. 총회는 사회정의를 위한 활동을 복음화의 “한 방법”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아루페 총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정의가 단지 추상적인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회정의를 도덕적 의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는 먼저 예수회원들의 사회 참여를 증진하기 위해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 담긴 두 개의 중요한 개념을 제시한다. 첫째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고, 둘째는 영의 식별이다. 아루페 신부는 하느님 사랑(수직적)과 이웃 사랑(수평적)이 신학적으로 동일하다고 정의하며, 두 사랑 사이에는 어떠한 우선순위가 있을 수 없고, 두 사랑이 분리될 수도 없다고 가르쳤다. 또 영성 생활을 개인주의적이며 내면적 활동으로만 이해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강하게 경고하였다. 신심이라는 것은 투신을 의미하며, 순수한 영적 투신만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 대한 실질적 참여로 드러나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페드로 아루페 신부는 정의 구현의 증인이 되는 것을 강력한 복음 선포의 방법으로 봤으며, 이는 교회에 대한 신뢰감을 증진시킬 것이라 믿었다. 더욱이 정의 구현의 증거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떠한 특별한 행위를 하는 단계를 넘어서, 영의 식별에 바탕을 둔 회심(metanoia)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아루페 신부는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에 맞서 그것을 복음적으로 개선하려는 행위에 참여하는 것을 그리스도교적 회심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 정의 구현은 새로운 방식의 영성 생활이며, 전통적으로 이해되어온 수덕적 영성을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한 것이다. 아루페는 예수회원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정의 구현을 실천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웃을 위한 사람들”(men and women for others)을 양성하는 것이 바로 예수회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이웃을 위한 사람들”로 사는 것이 이냐시오 영신수련의 현대적 실천이며, 동시에 성령으로 가득 찬 참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고 다양한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새로운 영성을 전파한 아루페 신부는 베트남 전쟁을 피해 목숨을 건 여정을 하는 베트남 선상난민의 참상을 보고 앞으로도 발생할지 모를 난민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1980년 말 ‘예수회 난민 봉사기구’(Jesuit Refugee Service)를 창설한다. 지난 37년 동안 세상 속 가장 긴박한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아루페 신부의 영성을 실천해 온 예수회 난민 봉사 기구는 국제적인 기구로 성장했으며, 2015년 말 현재 51개국에서 72만 4550명의 난민에게 교육 및 의료 등 다양한 활동을 계속 펼치고 있다.



이웃을 위한 사람

페드로 아루페 신부를 따르고 싶은 모범이라 밝힌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10월 24일 로마에 모인 예수회 총회 대의원들에게 아루페 신부의 정신을 상기시키며, 오늘날 예수회원들은 세상 속에서 상처 입은 이들과 함께해야 하며, 예언자적 담대함으로 고통받은 이들의 삶으로 들어가 하느님의 위로를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페드로 아루페 신부의 비전과 가르침은 오늘날 예수회가 어떻게 교회와 세상에 봉사해야 할지를 제시하고 있으며, 세상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많은 비인간적인 현실을 마주 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이웃을 위한 사람’이 되어 복음을 삶으로 증거하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길 초대하고 있다.

예수회 수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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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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