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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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63) 14세기 ④ - 잉글랜드 영성가들과 신비신학

대륙과 섬을 오가며 발전 거듭한 신비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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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차드 롤.



13~14세기 라인랜드(Rheinland)와 로우랜드(Lowland)에서 활동한 신비 체험가들과 신비 신학자들은 자신의 체험을 증언하거나 자신만의 학문적인 이론을 정립했습니다. 그런데 14세기 바다 건너 잉글랜드(England)에서도 신비 체험가들이 자신의 체험을 저술 작업을 통해 증언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은수생활을 통해 하느님과 일치한 리차드 롤

잉글랜드 북요크셔(North Yorkshire)에 있는 피커링(Pickering) 근처 손튼(Thornton) 출신이었던 햄폴의 리차드 롤(Richard Rolle de Hampole, 1300~1349)은 더럼(Durham)의 대부제 토마스 드 네빌(Thomas de Neville)의 지원을 받아 옥스퍼드(Oxford)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학창 시절 롤은 철학이나 세속 학문보다 신학과 성경 공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18세쯤에 롤은 은수자가 되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석사학위 취득을 포기하고, 고향을 떠나 피커링의 존 돌튼(John Dalton)의 소유지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롤은 3년가량 은수생활을 하던 시점에 신비체험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결국 세속과 관련된 모든 일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1322년쯤 존이 불행을 겪으면서 더 이상 그와 함께할 수 없게 되자, 롤은 여러 곳을 떠돌면서 기도생활과 집필 활동, 영적 지도를 하며 은수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1320년대 전반 롤은 프랑스 소르본(Sorbonne)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롤은 북요크셔에 계속 머물면서 가족과 함께 생활했거나 그 지역에서 발생했던 알 수 없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방랑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롤은 1348년쯤 북요크셔의 레이븐스워스(Ravensworth)에서 여성 은수자 마가렛 커크비(Margaret Kirkby, 1322쯤~1391/94)를 알게 됐고, 그녀에게 은수생활을 지도했습니다. 롤은 말년에 햄폴의 시토회 수녀원에서 머물렀는데, 수녀원에서 그의 역할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며 교회의 허가를 얻었는지도 불분명합니다.

롤은 1330년대에 라틴어로 저술하기 시작했으며, 1340년대에 영어로도 저술 작업을 했습니다. 롤은 잘 알려진 저서 「사랑의 불길(Incendium Amoris)」에서 자신의 신비체험을 육신의 물질적인 온기, 경이로운 다정한 감각, 그리고 시편을 부르는 것 같은 천상 음악이라는 세 가지 종류로 설명했습니다. 또한 롤은 하느님께 더 가깝게 다가가는 것을 완성하는 4가지 정화 단계도 묘사했는데 문을 열고, 뜨거워지며, 노래를 부르고, 다정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롤은 영어로 저술한 마지막 저서 「생활 양식(The Form of Living)」에서 은수자로서의 마가렛의 삶을 지도했습니다. 결국 14~15세기 넓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외에도 수많은 롤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다만 롤의 작품에 논란의 여지가 담겨 있어서 몇몇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비판했습니다.

애덕 실천으로 완덕에 다다르는 것을 강조한 월터 힐튼

잉글랜드 출신으로 생애에 대해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월터 힐튼(Walter Hilton, 1340/45~1396)은 교회법을 공부했으며, 교구 참사위원으로 일하려고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1380년대에 힐튼은 세상을 등지고 홀로 은수자가 됐으며, 기회가 되면 수도 공동체에 참여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1386년쯤 힐튼은 노팅엄셔(Nottinghamshire)의 아우구스티누스 의전 수도회인 서가튼(Thurgarton) 수도원에 입회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했습니다.

힐튼은 저서 「완덕의 계단(Scala Perfectionis)」을 통해 신비신학에 정통한 신학자 및 영적 지도자로서 명성을 널리 알렸습니다. 특히 이 저서는 중세에 저술된 내적 생활에 관한 작품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명쾌하며 균형이 잡혔는데, 두 개의 논문으로 구성됐습니다.

첫째 논문에서 힐튼은 여성 은수자들에게 14세기에 유행했던 범신론적인 위험 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영성을 연설했습니다. 둘째 논문에서 힐튼은 수도원 안에서만 영성생활을 완성할 수 있다는 중세의 전통에 반대했습니다. 즉 힐튼은 중세 서방 교회에서 그리스도교 완덕의 삶이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 혹은 환경에 제한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힐튼에 따르면 하느님과 일치하는 완덕의 삶은 오히려 애덕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정의 길을 통해 하느님과 일치하는 관상 생활

중세 잉글랜드 신비신학을 대표하며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작품은 14세기 후반에 익명의 저자가 저술한 「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이었습니다. 제목을 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위(僞)-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 †500쯤)의 신비신학과 유사한 방식인 부정의 길을 통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부정 신비신학’의 특징을 보였습니다.

일찍이 위-디오니시우스의 작품을 서방 교회에 확산시킨 요한 스코투스 에리우게나(Ioannes Scotus Eriugena, 810쯤~877/80)가 아일랜드 출신이었기 때문에, 잉글랜드 신비신학을 대표하는 「무지의 구름」이 위-디오니시우스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었을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작품의 저자에 대해서 몇몇 학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 의전 수도회 소속이었던 월터 힐튼으로 추정하지만 의심스러운 주장일 뿐이며, 또 다른 학자들은 카르투지오회 소속의 사제였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역시 분명하지 않습니다.

익명의 저자는 「무지의 구름」에서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과정을 4가지 형태로 설명했습니다. 즉, 활동의 낮은 단계인 평범한 삶과 활동의 높은 단계이며 관상의 낮은 단계인 특별한 삶, 그리고 관상의 높은 단계인 고독한 삶과 완전한 삶을 언급했습니다. 완전한 삶은 이승에서 출발해 천상까지 연결돼 있습니다. 특히 수덕적인 측면인 활동과 신비적인 측면인 관상이 조화를 이뤄야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지성적인 측면에서 신비적인 지식은 인간 이성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기에 인간이 무지의 구름 속에서 정화되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과 아무 데도 아닌 곳에서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것을 깨달을 때 새로운 지식을 얻어 하느님과 일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지적인 측면에서 인간은 하느님 은총으로 하느님을 열렬하게 사랑한다면 하느님 은총을 통해 하느님과 일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지리적으로 유럽 대륙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던 잉글랜드였지만, 고립되지 않은 가운데 중세 유럽 신비신학의 흐름을 받아들이면서도 독자적인 연구를 첨가했던 잉글랜드 신비신학은 근세 유럽 신비신학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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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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